• [Opinion]봄봄

    입력 : 2013.03.07 17: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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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던 날 밤이었다. 입춘이 지났지만 봄은 너무 멀리 있었다. 동백이 툭, 떨어지는 이른 봄을, 벚꽃이 바람에 날리며 쏟아지는 늦은 봄을 떠올렸다. 하지만 ‘입춘’과 ‘봄’의 시차는 너무 커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명칭의 불일치 때문에 불편한 기분을 가지는 건 나뿐이 아닌 것이다. 가령 우리가 가진 네 개의 계절이 어쩐지 인과적이며 순차적이지 않다는 느낌. 어색한 배열을 가진 잘못된 문제의 틀린 답 같다는 느낌말이다. 그러니까 어째서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는 걸까. 어째서 모든 것이 말라 있고, 모든 것이 어둡고 쓸쓸한 계절 다음에 이토록 급격한 변화가 찾아드는 걸까. 색깔은 얼마나 다양해지는지, 거리는 얼마나 풍성해지는지, 겨우내 보이지 않았던 커플들은 또 어찌나 그리도 눈에 잘 띄는지. 어째서 새해 첫날, 꽁꽁 언 칼바람에 여자들은 서둘러 전을 부치고 떡국을 끓이다 허리를 다쳐야 하는 걸까. ‘봄바람 난다’란 말은 다름 아닌 춥고 혹독한 겨울의 부작용이 아닐까. 많은 의문들이 가곤 했었다. 정말이지 새해 아침에 봄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분명히 더 행복해질 텐데 말이다. 좋은 책 백 권이 무슨 소용인가. 딱 벚꽃 한 번 피면 될 일인데.

    사소하지만 중요한 결심 한 가지를 했다. 잠시 대구에 살 때, 청도를 여행하며 ‘복사꽃 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어떤 동네를 걷다가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그때 4월의 일주일 정도는 남쪽에서 지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4월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연두빛 그늘 아래에서 산 너머 나무들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일을 쉬고 4월에는 그저 남쪽에 내려가 있겠다고 말이다. 그러면 좋아하는 봄을 조금 더 길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정하자 문득 내 삶이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 4월의 내가 본 것은 벚꽃과 목련과 철쭉 정도였다. 그나마 봄이 너무 짧아 느낄 사이 없이 봄은 언제나 내 마음보다 먼저 지나갔다. 가을이나 봄이 점점 사라지는 세계에선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계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기상청에서 올해 진해 군항제가 3월 말에 벌어진다는 얘길 듣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봄비가 내리고, 그나마 간신히 붙어 있던 벚꽃들이 전부 떨어져 땅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식인 거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내게 ‘너무 짧게 지나가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간신히 붙어 있어 조마조마한 계절 말이다.

    봄에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4월 이야기>를 보다가 주인공 여자아이처럼 카레를 만들어 먹었다. 카레는 하루 지난 것이 더 맛있다는 걸 알려준 건 만화 <심야식당>이었는데, 그때 챕터의 제목이 ‘어제의 카레’였다. 봄에는 하루키의 소설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법 같은 소설을 읽기도 했다. 어쩐지 봄에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내겐 몇 가지 있는데, 벚꽃 잎을 모아 물에 띄워놓고 바라보는 일이나 봄에 피는 꽃들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두는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봄이 되면 김훈의 글을 읽는다. 가령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눈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같은 문장에는 밑줄을 긋는다. 봄이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이다. 봄이 깊어져 발가락이 간질거리면 <자전거 여행>을 읽으며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하기도 했다. 실제 그의 책을 들고 섬진강 주위를 돌아 매실마을로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김훈의 산문을 읽다가 “쑥은, 그야말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고,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라고 말한 부분을 한 번 더 읽는다. 지난봄에는 하유진의 ‘봄’을 자주 들었다. 봄에 봄노래를 듣고, 봄에 피는 꽃을 보고, 봄바람을 맞는 일. 그토록 단단한 땅에서 여린 쑥이 올라올 때 느껴지는 생명력 앞에서 잠시 경건해지며 미소 짓는 일. 4월의 연둣빛이 좋아 개를 키우면 이름을 무조건 ‘연두’라고 지어야겠다고 결심하던 때의 내가 떠올랐다. 영하 18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던 날 “올 겨울이 정말 지긋지긋해!”라고 푸념하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겨울이 추우면 봄은 더 따뜻해지니까.

    올 봄은 정말 그럴 것 같다.

    겨울이 길고 혹독하면 봄은 더 찬란하고 짧게 느껴질 테니까.

    사진설명
    [소설가 백영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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