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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lar]박근혜 시대 키워드는 보수와 진보의 통섭…임현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입력 : 2013.03.07 16: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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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최근 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에 선출돼 내년부터 2년간 활동이 예정돼 있는 임 교수는 2013년 희망 사자성어로 ‘원융회통(圓融會通)’을 꼽기도 했다. ‘서로가 소통하고 화합해 새해에는 미래를 위한 출발을 해보자’는 의미다. 새 정부에 대한 바람이냐고 묻자 슬쩍 창가로 다가서더니 “이 건물 저 앞에 지하 2층, 지상 6층의 아시아연구소가 완공됐다”며 “4월경에 이사 갈 예정인데 이젠 아시아연구를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고 동문서답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창 너머 아시아연구소를 확인한 후 돌아왔다. 세심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대담은 지난 2월 5일 임 교수의 서울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대통령 취임식 20일 전이라 당시 박 대통령에 대한 호칭은 당선인으로 통일했다.)
새 정권의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일각에선 대통령 당선 자체가 운명이란 말도 나온다 50년 만에 아버지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으니 운명이지. 묘한 운명이다.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못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이른바 권위주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시대에선 이를 극복하고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까 글쎄. 기대는 하고 있지만 아직은 회의적이다. 5년 단임제의 한계지. 임기 중반에 들어서면 소위 레임덕이 온다. 다음에 당선될 가능성이 없으니 힘을 못 쓰지. 4년 중임제보다 여유가 없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책을 낼 수가 없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을 보면,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의욕적이었지만 성과는 거두지 못했으니…. 박 당선인도 5년 안에다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생각을 해야지. 대통합을 강조하고 있으니 우선 역사 앞에 정제하는 모습이 중요할 것 같다. 나는 이런 것을 잘했고 잘못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 지금까지는 잘한 것만 말했거든. 지난 번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반응을 되짚어보면 나중에야 사과했지만 처음엔 잘 모르는 발언을 했지 않나. 그런 것들이지.
그 문제를 좀 더 짚어보자. 최근 언론에 게재한 칼럼에서 박정희와 장준하, 그들의 딸과 아들인 박근혜와 장호권의 역사적 숙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러한 역사의 하중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50년 전후의 숙명적인 짐을 지고 나타났다. 이젠 그런 과거의 하중을 떨어내야지. 그것이 정제다. 그러나 지금껏 권력을 가진 이들일수록 그러지 못했다는 걸 먼저 얘기하고 싶다. 센 사람이 양보해야지 약한 사람이 양보할 수 있나.
과거 기득권층이 장애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정권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시점인데, 어떤가 아직은 글쎄…. 잘은 모르지만 돌아가는 걸 보면 염려스럽다. 우선 인사를 짚어보면 근처에서 가깝고 편한 사람만 찾는 것 같다. 당선인 얘기로는 혼자 자랐고 정치적으로 신세진 사람도 없고 집안에서도 손 내밀 사람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뒤에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또 무슨 얘기인가 국회 내에서 정치를 하다 동지가 됐다 적이 됐다하는 친박, 비박은 관계없다. 그 보다는 5·16 이후에 우리나라를 50년 가까이 좌지우지했던 사람들, 상당한 기득권이 남아 있는 사람들, 이들이 염려스럽다. 그런 사람들이 당선인의 손발을 묶을 수 있거든.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조금이라도 이득을 본 이들이 당선인에게 “우린 버려도 됩니다”가 아니라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 자체가 장애 내지 구속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대통합을 이루려면 지지층이 우선 만에 하나라도 잡았던 발목을 놔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박 당선인이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과오를 이야기하고 껴안으려했을 때 과연 주변의 모두가 인정했을까의 문제다. 당선인은 앞으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현장에서 미래지향적인 얘기가 아니라 과거구속적인 얘기를 하게 되면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을까.
그래도 후보자 시절의 이야기와 공약집을 보면 대통합과 복지부문이 과거에 비해 훨씬 전향적이다 박 당선인의 고민은 ‘복지’ ‘경제민주화’ ‘남북관계’다. 남북관계는 특히 옛날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북한을 믿을 수가 없으니 냉철하게 볼 수밖에. 그렇다고 냉탕에만 머물 수도 없다. 교류와 협력을 해야 한다. 지난 5년간은 단절 아닌가. 물론 막 퍼주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막아놓고 대화가 안되면 어떤 우려할 만한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정치라는 건 싫은 존재도 실체가 있으면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도 “그런 경제가 어디 있느냐, 성장이 중요하고 대기업, 재벌에게 계속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분명 있겠지. 그런 점들이 과연 정책을 펴 나갈 때 힘이 될 수 있을까. 다만 한 가지, 복지문제에 대한 의지는 분명한 것 같다. 어쨌든 약속을 했고 능력보다 과하게 하려고 한다. 박 당선인이 유럽의 분위기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게 걱정이다.
유럽의 분위기라면? 박 당선인이 성장은 독일식, 복지는 스웨덴 식으로 하겠다고 얘기했다는데, 과연 유럽 경제에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영국, 프랑스의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그쪽 시장과 정부의 차이를 모르고 일방적으로 성장은 독일, 복지는 스웨덴이라고 했다면 그건 큰 착오다. 세금문제만 해도 스칸디나비아는 직접세와 간접세를 포함한 비중이 50%가 넘는다. 독일은 약 30%가 넘고 우리는 25%가 안된다. 또 중견기업이 많은 독일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어려울 때도 합의가 이뤄지는 건 서로 공동책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전혀 그렇지 않은데 성장을 독일식으로 끌고 간다는 게 가능할지. 스웨덴은 국민개세주의에 의해서 없는 사람은 조금 내고 많은 사람은 소득의 80%를 세금으로 낸다. 평균 50%지.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세를 면제 받는 사람이 50% 가까이 된다. 그런 와중에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내라하면 저항이 올 수밖에 없다. 현재 논란인 복지문제가 결국 증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실행에 옮길 시기인데, 과연 앞으로 닥쳐올 저항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세계경제 2위국인 중국이 왼쪽에 있고 3위국인 일본이 오른쪽에 있고 세계경제는 어렵고 분단된 남북관계는 얼어붙어 있다. 참 살기 어렵다. 그래도 헤쳐 가야지.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 지지하는 사람이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나 밀어줘야 한다. 이건 국가적인 차원이지 정권적 차원이 아니다. 대선 당시 100만표 이상으로 지지한 사람들, 계층별로 보면 특히 어려운 사람들이 표를 더 줬다. 기대를 만족시켜줘야 하는데, 먹고 살게 해줘야 하는 문제다. 그건 복지가 아니라 일자리 문제지. 일자리를 1년에 50만개씩 만들어 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본인은 얼마나 괴롭겠나.
국내에선 처음이지만 그동안 많은 글로벌 여성 지도자가 선출됐고 또 활약하고 있다
성공한 여성 지도자를 꼽으면 영국의 대처나 독일의 메르켈이 있겠지. 대처는 보수로서 성공한 여성이다. 메르켈도 보수지만 개혁적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다. 또 한 사람의 예를 들자면 남미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있는데, 남편도 대통령이었다. 페론주의에 빠져 있는데, 표라면 뭐든지 몰고 가겠다는 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있지. 박 당선인이 꼭 돌아봐야 할 남미의 현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의 GDP는 세계 10위권이었지만 페론당에 의해 몰락했다. 공짜 복지에 길들여졌지. 어쨌든 박 당선인은 보수적인 개혁정치로 나라를 지키는 철의 여인이 되고 싶을 것 같은데, 그것이 모법답안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보수적인 개혁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개혁, 그러나 인기영합주의가 돼선 안 되는, 차라리 메르켈식의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 난 메르켈 식으로 간다면 그나마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영미식 제도를 그대로 흡수했다. 참여정부 때는 로스쿨까지 도입했다. 이른바 법과 제도의 미국식 완성이 아닐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사절단이 외국에 나가 자기들이 본받을 만한 나라의 제도를 들여왔거든. 그게 독일식이다. 그 독일식 제도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바닥에 깔리고 그 위에 미국식 제도를 올렸지. 그리고 그 위에 최근 유럽식 지붕을 올리고 있다. 당연히 삐걱대고 안 맞을 수밖에.
유럽은 이해관계자 중심주의이고 미국은 주주중심 주의다. 그래서 더 우리가 나가야 하는 방향이 궁금해지는 시기다. 미국식을 일정부분 수정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앞서 이야기한 유럽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좀 빗나간 얘기일 수 있는데, 스웨덴의 복지를 논한다면 스웨덴의 인구가 1000만명 밖에 안된다. 우린 5000만명 아닌가. 기본적으로 합의가 어렵다. 스웨덴과 우리의 차이다. 다시 질문에 답하면 결국 유럽식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냐, 영미식으로 시장에 역할을 부여하느냐의 차이인데, 박정희 시대의 발전 모델은 유럽식이었다. 정부가 간섭해서 정책을 입안하고 은행을 시켜서 기업에 대출해주고 모자란 돈은 중앙은행에서 갚게 하는 식이었지. 그런데 사실 1997년 외환위기는 그 모델의 한계에 의해서 오게 된 것 아닌가. 그 만큼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많았다. 그런 걸 이해한다면 프랑스나 그리스, 이탈리아와는 다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칸디나비아의 차이를 좀 더 체득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이야기한다면 야단나겠지. 하지만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독일의 노사가 대결하더라도 같이 갈 수 있는 건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영미식에선 노사가 흔들리면 시끄럽다. 그들의 해답은 구조조정이니 시끄러울 수밖에. 문화제도적으로 미국식에 익숙해진 우리가 과연 유럽식으로 갈 수 있느냐. 정치적으로 타협이 가능할까의 문제,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를 인정하는 문제, 노사정 합의 등의 문화를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 롯데관에서 임현진 교수와 조경엽 국장이 얘기를 나눴다.
확실히 더불어 산다는 의미가 희미해졌다. 왜 그렇게 됐을까 난 1인당 국민소득과 정치제도, 생활문화의 관련성에 대해 부정했었는데 돌아보니 관련성이 있더라고. 내가 67학번인데, 대학에 입학하기 전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안됐었다. 졸업할 때 200달러쯤 됐을까. 1979년에 유학을 떠났을 때 1000달러를 넘겼다고 난리가 났었지. 현재 대학생들은 최소한 1만달러 이후에 태어났고 지금은 2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니 현실변화도 인정을 해줘야지. 우리가 매번 아끼라고만 하면 이게 먹히겠나. 인정할 건 해야지. 이럴 때 교육이 같이 가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잘 되지 않아. 그건 젊은 층의 취업과 관련이 있다. 대학 1학년 때는 뭔가 얘기가 되는데, 한 학기만 지나면 진로를 정하고 고시를 준비하거나 스펙 사냥에 나서거든. 사는 여유 없이 그저 각개약진이니 교육이 어찌 뒷받침될 수 있겠나.
기업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른바 기업가 정신이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는데 대한민국이 먹고 살려면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미권에선 국민기업을 ‘National Champion’이라고 한다. 부를 만들어 국가를 수행하는 것이지.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지만 기업가 정신이 없으면 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청년들은 안정된 직장만을 찾는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이 설립됐을 때 사장의 나이가 20대였다는 걸 기억해야지. 그들의 돌파력이 기업가 정신 아닌가. 또 세계화 시대에는 국적 있는 기업이 없어진다. 이런 시기에 특히 대기업은 나쁜 일자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켜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직원들의 참여를 넓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에는 노노갈등도 문제 아닌가 협력업체나 하청업체의 권리도 옹호해줘야지. 그 길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대기업 단위의 생산노조, 이른바 귀족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양보와 기업의 양보가 우선돼야 한다.
재부상이 예상되는 일본, 특히 아베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너무 극우화됐지. 반중, 반한, 국수주의로 가고 있다. 일본 내 서점을 가보면 출간된 서적이 대부분 극우다.
큰 문제다. 유럽은 봉건시대부터 같이 살기도 했고, 기독교 문명에서 살아보기도 하면서 그러한 경험이 유럽연합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아시아는 그랬던 기억이 없다. 한·중·일 중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것도 아쉽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 어떤 일을 선행해야 할까 당정협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국회를 존중해야겠지. MB의 잘못 중 하나가 국회를 무시한 것 아닌가. 현재는 여대야소인데 이런 상황에 야당을 무시하게 되면 국민을 위한 입법이 어려워진다. 안철수 교수? 글쎄… 들려오는 얘기들은 많은데 독자정당을 끌어가야 할 텐데, 결국 봄과 가을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결과가 나오겠지.
박근혜 시대를 역사적으로 규정한다면 노태우 정부 이후 김영삼 정부가 나타났다. 보수정부가 이어졌지. 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어지면서 진보정부로 바뀌고 MB가 나타났다. 크게 봐서 다시 박정희 시대의 구시대 방식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그 모든 걸 털고 세 차례에 걸친 보수와 두 차례에 걸친 진보를 정반합으로 지향해서 갈 것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 정권의 기반이 박정희 시대이기 때문에 과연 그것이 장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뛰어 넘어야겠지. 진보와 보수 정책의 통섭을 했으면 좋겠다.
[대담 조경엽 국장 정리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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