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et]`섬진강 이야기` 새롭게 출간한 시인 김용택…뭔 일을 그리 많이 하나 그래서 행복합니까

    입력 : 2013.03.07 16: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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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만큼이나 긴 코트에 두꺼운 목도리를 두른 시인 김용택이 서울 시내 특급호텔 로비에 섰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그가 갑자기 웬 서울, 그것도 온갖 모던한 인테리어가 그득한 호텔로비라니. 생뚱맞은 조합이 영 어색하다 싶었는데, 막상 지하 펍(Pub)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카메라 앵글에 잡힌 모습도 생경하다. 그 장면이 스스로도 우스웠는지 “일주일에 서너 번은 서울에 올라오는데 기업체 강의를 나서다 보니 이젠 어색한 곳이 없다”며 오히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시인은 지난해 등단 30년을 맞았다. ‘창작과 비평’의 <21인 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1’을 발표한 게 1982년. 그때부터 시에 담지 못한 고향 진메 마을 이야기를 산문으로 써내려가 최근 8권의 산문집 세트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를 완성했다. 1권 <내가 살던 집터에서>와 2권 <살구꽃이 피던 마을>만 신작이고 <섬진강 남도 오백 리> <진메 마을 진메 사람들>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았다네>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오너라> <김용택의 교단일기> <꽃이 피는 그 산 아래 나는 서 있네> 등 나머지는 그동안 나왔던 책을 새로 편집했다. 그 안에는 시인이 30여 년간 교사로 근무한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의 풍경이 간간이 묻어 나온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모교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08년 정년퇴임했다. 가난한 살림에 대학교육은 요원했지만 교사로 지낸 38년간의 삶이 더 없이 행복했다며 너털웃음이다. 이제는 전업 작가이자 강사로 ‘활약’ 중인 그는 “그래서 지금 제대로 놀고 있다”며 자신의 일상과 강의 내용을 풀어놨다. 퇴임하고 노는 일이 전부라지만 시인의 하루는 은퇴 전보다 다이내믹하다.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속설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삶이다. 시인 김용택이 전하는 퇴임 후 유쾌한 세컨드 라이프. 늘 봄날 같은 인생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평생 공부해야 변화에 발맞출 수 있는 거 아닌가 (시인은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생과일주스를 골랐다)커피는 영 맞지 않나 보다 원래 못한다.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커피를 모르고 자랐거든. 28세에 처음 마셨는데 어찌나 속이 쓰리고 잠이 안오던지, 영 안 맞더라고.

    요즘 굉장히 바쁘게 지낸다던데 강연 때문에 바쁘네. 내일은 공중파 대담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웃음) 덕분에 자주 서울을 찾는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왔다갔다하네. 기업체 강연이 많고 구청에서 인문학 강연도 많다.

    기업체 강연? 직장인들에겐 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나 공부 얘길 많이 한다. 시대 변화에 앞서가거나 적어도 같이 가려면 공부가 필요하거든. 공부 중에서도 인문학이 중요하단 말을 많이 한다. 내가 시인 아닌가. 그동안 기능적인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창의력, 창조적인 삶의 태도가 고갈됐다.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적응할 수 있다.

    인문학이 화두라지만 직장인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보자고.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한 가지 기술만 갖고 있으면 먹고 산다고 했다. 그런데 2000년대는 그런 생각으론 살아갈 수가 없어. 1970년대에 산업화가 시작되니 모든 물건들이 새로웠다.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도 신기했지. 1990년대엔 같은 바가지도 다르게 만들어지면서 소비자의 공감을 이끌어냈거든. 이른바 공감의 시대다. 그런데 2000년대는 감동의 시대거든. 새로워야 할 이유도,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할 이유도 없어. 사람들이 그냥 그런가 해버린다. 그러니 감동이 필요하다. 감동은 눈에 안 보이지만 느끼고 스며들면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감동했을 때 우리의 삶이 바뀌지. 기술만으론 한계가 있다. 예술적 감성이 가미되고 융합돼야지. 융합은 기술과 예술이 새롭게 창조해낸다는 의미다. 또, 흔히 감동을 주는 것들은 생명력이 있다고들 말하지. 살아 있는 것들은 당연히 자연에 있고 사람들은 물질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을 삶에 가져오고 싶어 한다. 자연친화적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이유지.

    시가 완성되는 원리도 그런 것 아닌가 난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 쓴 것일 뿐이고. 첨단에 서 있을수록 자연에 목마르다. 1990년대의 사고로는 변화된 세계를 극복할 수 없지. 왜냐하면 자연 속에는 인간들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해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거든. 홍수, 가뭄, 추위, 더위, 굉장하지. 자연에서만이 아니라 인간들이 사는 세계에서도 그렇고. 그러니 이젠 한 가지만 잘해선 안 된다. 한 가지만 대책만을 세워서도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통섭이란 말을 자주 쓴다. 두 개의 연못이 물을 주고받는 것인데, 모든 분야가 다 통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제는 통섭을 지나 융합을 논하고 있고 물길을 터놓는 게 아니라 아예 하나가 돼야 한다고. 그 시작이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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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먹지도 못하는 공부를 왜 그리 열심히 하는지 물질과 문명의 발달, 첨단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오랫동안 농촌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그랬지. 오랫동안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그런데 그 분들을 보면 끊임없이 공부하거든. 예를 들어 어느 날 갑자기 모내기를 잘할 순 없다. 오랜 세월 해보고 공부해야 잘 하게 된다. 어머니가 베를 잘 짜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잘 짜게 된 걸까. 교과서도 없이 삶속에서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지. 그게 공부 아닌가. 공부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들에겐 삶이 곧 공부였다. 또 공부란 반드시 어느 순간에 써먹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서 배운 공부는 써먹질 못해. 지식을 통해 내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공부지. 농사짓는 사람들은 평생 공부를 하면서 살아왔다.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 생각과 행동을 바꿔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것인데, 어떻게 우린 서울대만 가면 된다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많이 벌면 된다야. 이거야 원.

    농촌보다 도시의 생활환경이 월등한데도 만족도는 높지 않다? 어마어마하게 잘사는 것 같은데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일은 엄청 많이 하는데, 가족들과 차 한잔 할 시간이 없다니 이거야 원. 어쨌든 그렇게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자기들의 삶으로 가져왔다. 그들이 하는 말은 수천년 동안 일속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또 공동체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니 정확하다. 사실과 진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니는 꾀꼬리가 울면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 듣고 토란이 난단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확하게 꾀꼬리가 울 때 참깨를 심고 보리타작할 때 토란이 난다. 우린 어떤가 하루 종일 뻥치고 있다.(웃음) 어떻게 하면 저 놈 이길까 거짓말하고 속인다.

    그건 가치의 문제 아닌가 산업화 이전에 시골은 마을 단위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어느 정도 자급자족하며 살았지. 같이 먹고 일하고 놀았다. 그러니 절대 거짓말, 막말, 도둑질하면 안 됐다. 이 세 가지가 지켜졌지. 이게 공동체 생활이다. 옛날처럼 살 것이냐. 그건 아니지. 100년도 지나지 않은 우리 공동체의 아름다운 가치는 무시하고 왜 외국에 가서 오래된 것만 찾고 있는지 이거 원.

    최근 8권으로 완성된 진메마을의 섬진강 이야기가 그렇게 완성된 것인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잘 팔리는 것 같진 않은데,(웃음) 우리 진메마을에서의 일과 놀이, 삶의 모든 원형을 보존해 놓고 싶었다. 마을사람들 이야기, 마을이야기, 노는 이야기, 먹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최근 출간된 <…섬진강 이야기>의 진메마을 일상이 도시의 일상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 이곳은 너무 커서 웬만한 나쁜 짓을 해도 되고.(웃음) 예전 우리 마을에선 막말하면 못 살았다. 왜냐하면 그 이튿날 또 봐야 하거든. 거짓말하면 안 돼. 논에서 만나 일해야 하니까. 그런데 어떻게 나쁜 짓을 할 수 있겠나.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삶이었지.

    그 생활의 가장 중요한 축은 무엇인가 여섯 가지인데 같이 먹고, 일하고, 놀고, 거짓말 안 하고, 도둑질 안 하고 막말 안 하고 이게 잘 지켜졌다.

    그건 현재의 사람관계에서도 기본이다 인간관계의 기본 정신이 산업화되고 서구화되면서 막무가내로 깨져버렸지. 정신적인 전통이 사라져버렸다. 서구적인 가치가 한꺼번에 밀려와서 우리의 정신을 깨뜨려 버린 셈이다.

    기업이 사람을 제대로 뽑아야 교육이 제대로 되지 개인적인 얘기 좀 해보자.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나 난 학교를 시골에서 다녔는데, 당시 우리 마을이 많을 때는 35가구였다. 그때도 동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없었다. 아예 책이 없었지. 사촌 형님이 최초로 중학교를 갔으니 말 다했지.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책을 못봤는데, 그러다 선생을 하면서 책을 보게 됐지. 그때가 스물 두 살이었다. 월부 책장사가 학교에 오더라고.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선생님이 됐는데 그땐 선생이 너무 모자라서 양성제도를 뒀거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게 자격을 줬다. 시험에 합격하면 4개월간 교육받고 나갔지.

    책도 안 봤는데 시험에는 합격했다 그러게. 한번도 선생이 되려고 한 적이 없었네.(웃음) 친구들이 시험 보러 가자했는데 난 싫다고 했지. 그랬더니 자기들 증명사진이 필요하다고 놀러가자더라고. 그때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찍었는데, 한 놈이 그 사진으로 내 원서까지 내버렸더라고. 그 친구들은 다 떨어지고 나만 혼자 붙었다. 광주에서 시험을 봤는데 차비도 빌려서 갔네. 지금도 그 친구를 귀하게 생각한다.

    그때부터 시를 쓴 건가 학교에 가보니 학교라고 해서 책이 있나. 월부 책장사한테 처음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샀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지.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져서 일기를 쓰게 됐고. 쓰다 보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더라고. 희한하지.(웃음) 이게 시인지 아닌지 잘 몰라서 책을 본 지 13년 만에 내가 봐도 시 같기에 ‘창작과 비평사’에 보냈더니 엽서가 왔다. 신인으로 싣겠으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일주일 후에 엽서가 또 왔어. 그런 풍경만 나온 사진 말고 얼굴 제대로 나온 사진 좀 보내 달라고. 순창에 가서 생애 처음으로 넥타이 매고 증명사진 찍어서 보냈다.

    그렇게 벌써 30년이 지났다. 시골에서 지내면서 세상의 트렌드는 어떻게 그리 놓치지 않고 접하고 있나 세상이 너무 궁금해서 신문을 본다. 종이신문도 보고 인터넷으로도 꼼꼼히 찾아서 본다. 칼럼과 사설을 놓치지 않고 살피지. 시를 쓰지만 다른 장르의 책도 많이 본다. 1995년까진 책도 외상으로 봤네. 돈이 없으니 해결이 안 되더라고. 1982년에 문단에 나가니 책방 주인이 날 알아보더라고. 당시에 창비로 등단한 시인이 전북에 나밖에 없었거든. 금방 친해져서 그때부터 1995년까지 외상으로 봤다. 아쉽게도 망해서… 아, 그 전에 외상은 다 갚았다.(웃음)

    세상에 관심이 많으면 답답한 점도 많을 텐데 글쎄, 경제적인 면을 보자면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나라 경제가 튼튼한 것 아닌가. 우리 교육과도 연관이 있는데, 우린 지금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대기업은 말 잘 듣는 인재들을 뽑아가지. 창조적이고 인격이 갖춰진,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들, 직장을 자기의 삶으로 가꿀 줄 아는 사람들을 기업에서 뽑아야지. 그래야 학교에서 그런 인재들을 길러낼 것 아닌가. 서서히 희망이 보이긴 한다. 몇몇 CEO들을 만나 보면 예전처럼 시험만 잘 보는 인재들은 피하고 있더라고. 난 그 분들이 물어오면 글쓰기, 에세이로 뽑으라고 이야기한다. 에세이는 거짓말이 없으니까. 자기 인생이 드러난다. 지식이 포털사이트에 담겨 있는 시대엔 인격이 중요할 수밖에.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생각, 삶을 잘 가꿀 줄 아는 사람, 직장이 자기의 삶인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육이 안정되겠지. 기업의 책임이 크다.

    다시 인문학으로 포커스가 돌아온 느낌이다 그렇지. 그래야 이 사람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자기 일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60세까지 스펙을 쌓는 삶을 살다가 직장에서 나오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한다. 좋아하면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된다. 그럼 60세 이후에도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직장에 있을 때 직장이 곧 자기의 삶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직장인이 거의 없지. 일이 너무 많거든. 일을 줄여야지. 밤늦게까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선진국처럼 퇴근시간 이후에는 직장에서 떠나자. 우린 국가 기반시설이 충분히 다 갖춰져 있다. 이젠 내용을 채워야지. 형식은 완성됐으니 삶의 질을 높여야지. 하루라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하기 싫은 일을 20~30년씩이나 한다면 그게 얼마나 불행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직장을 그만둬라? 나이가 마흔이면 어때. 90세까지 살아야 하는데,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은 것 아닌가. 지금껏 안정된 삶을 만들었다고 편한 데로만 가려하며 안되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가야지.

    돌아보면 어떤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난 잘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았으니까. 위에서 시키는 일도 교육부나 교장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었으니까 재미있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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