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지금처럼, 처음처럼
입력 : 2012.12.28 14:19:50
-
새해를 맞이하는 여인들의 일손도 바빴다. 식구들을 위해 버선부터 대님까지 일습을 새로 짓기도 하고,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입던 옷을 손질해 다듬었다. 묵은 먼지는 털고 가야 하기에 방안의 삿자리를 걷어내고 집 안의 터진 곳이나 쥐구멍에 진흙매질을 했다. 깔끔하기가 유별스러웠던 조상들은 격에 맞는 멋을 부리기에도 열심이었다. 깨끗하게 청소한 집의 벽장이나 미닫이문에는 십장생이나 범과 닭 등 길조를 그린 그림을 붙여, 일상의 흥취와 감동이 한 해토록 계속되길 바랐다.
새해는 그처럼 기다림과 그리움과 정성스런 준비 속에 왔다. 기다린 만큼 그리워한 만큼 힘차게 왔다. 새해가 열리면 고구려 시절엔 패수(강가)에 모여 돌팔매 놀이나 눈싸움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덕수궁 앞에서 연을 띄워 새해인사를 했던 대감들의 전설을 따라 아이들이 얼어붙은 하늘에 연을 띄워 올렸다. 첨세병(나이를 더 먹는 떡)을 넣은 떡국을 끓여 먹으며 나이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을 다짐하고, 앞으로 다가올 봄에 부지런히 일할 다짐으로 찬술을 마셨다. 그들이 공손히 머리를 조아려 세배를 주고받으며 나누던 덕담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했다.
“새해에는 무고하십시오!”
송구영신하는 옛사람들의 끼끗하고 소박한 자세는 오늘을 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현대의 삶은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앞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하늘 아래 더불어 살기에 감사하며 바치는 예의보다는 이해득실을 따져 인사치레하기 바쁘다. 성찰과 반성도 평소 몸에 익지 않으면 객쩍은 이벤트다. 심지어는 살아온 흔적을 되돌아보는 일이 괴로워 술이나 진탕 퍼마시고 잊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허둥지둥 묵은해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다짜고짜 새해의 계획을 세운다. 좋다는 것은 다 하고 안 좋다는 것은 모두 피하겠노라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작심삼일의 억지다짐을 하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듯한 불안 때문이다. 모두가 목청껏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외치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본성을 고치는 것보다는 습관을 고치는 것이 좀 더 쉬울 따름이다. 그런데 재미있고도 씁쓸한 것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도 그것이 본성을 닮은 탓이라는 사실이다.
마음을 다잡고 세운 계획과 약속이 무너지는 까닭은 특별히 그 사람이 의지박약하거나 실행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해, 새날, 새 출발… 모든 새로운 것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여기까지 끝, 이제부터 시작! 덧짐처럼 지고 온 과거를 벗어던지고 완전히 낯선 무엇이 되어 미래를 향해 달려가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애당초 우리네 삶은 그처럼 마디지어 언제까지가 끝이고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라고 선언할 수 없다. 달력은 2012년과 2013년을 새뜻한 표지로 나누지만 2012년 12월 31일과 2013년 1월 1일은 다만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일 뿐인 것이다. 러시아의 극작가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는 “행복한 사람은 시계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시간에 붙매여 끌려가거나 쫓아가기보다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뜻일 터이다. 실제로 심리학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현재라고 느끼는 시간은 단 5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략 0.25초가 걸린다는 ‘눈 깜박하는 사이’가 스무 번쯤 거듭되면 지나버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조차 온전한 현재로 살지 못한다.
후회는 과거 때문이다. 불안은 미래 때문이다. 그렇게 과거에 꺼둘리고 미래에 저당 잡힌 채로는 단 한 순간도 현재로 살 수가 없다. 바로 지금 여기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순간이 있고 영원이 있다. 계획과 다짐이 따로 필요치 않은 삶 그 자체가 있다. 내가 만난 독자들 중 가장 고령자인 90세의 어르신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에 대해 이렇게 토로하셨다.
“나이 일흔에 은퇴를 하면서 앞으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을 정리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것이 최선인 줄만 알고 아무 것도 새롭게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십 년이 훌쩍 지나 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토록 젊디젊은 일흔 살에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나는 지금쯤 그것의 전문가가 되어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특별히 기념해야 할 끝과 대단히 축하해야 할 시작은 따로 없다. 하루하루가 여일하고도 변화무쌍할지니, 현재를 올곧이 사는 사람에게는 순간순간이 첫 날이다. 그렇다고 무심하고 시큰둥한 신년 인사를 나눌 수는 없을 터, 기꺼이 축하하고 축복할지이다.
새해는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처럼 당연하고도 고맙고, 오래되고도 신비한 것일지니.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