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아키모토 히사오 헤이세이건설 대표…하도급 없이 20년 그것이 흑자경영 이끌어

    입력 : 2012.12.28 14:18:51

  • 사진설명
    건축업은 ‘분업화’의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다. 각각의 기술과 장비를 보유한 다양한 업체들이 시행사의 관리, 조율에 따라 각기 바쁘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에는 통상적인 건설 시스템과 반대로 흘러가는 회사가 있다. 아키모토 히사오 대표가 지난 1989년 세운 헤이세이건설.

    ‘절대 아웃소싱하지 않는다’와 ‘인건비를 내리지 않는다’가 이 회사의 기본 지침이다. 수주가 없다면 인건비 지급이 불가해 문을 닫을 위험성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 회사는 신기하게도 일본 장기불황 20년 동안 쭉 흑자경영을 이어왔다.

    아키모토 히사오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헤이세이건설의 승승장구 비결을 털어놨다.

    “하도급 없는 내제화(內製化·일괄시공)를 내세운 건 분업에 대한 회의감 때문입니다. 업무의 효과적인 수행을 위해 생겨난 시스템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서 분업화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파견 사원과 같은 노동의 단순화만 양산해왔죠. 이런 직원들이 과연 자신이 짓는 집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요? 또 자신이 지닌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키모토 대표는 젊은 시절, 건설사 영업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건축을 의뢰한 고객이 현장에 찾아와 ‘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외주를 받아온 사람들만 현장에서 일하는 상황이다 보니 고객에게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고 하더군요. 일을 맡긴 사람인줄 모르고 함부로 대한 것이지요. ‘분업화’가 과연 좋은 것인지 고민하게 된 단초였죠.”

    아키모토 대표에 따르면 분업화의 폐해는 금전적인 문제도 야기한다. 하도급 업체에 설계나 기획을 따로 맡기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생기고 이에 따른 쓸데없는 인건비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 아키모토 대표는 외주로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여 자사 기술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아키모토 사장은 ‘돈을 남기면 하수, 업적을 남기면 중수, 사람을 남기면 고수다’라는 경영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대기업과 견주어 뒤처지지 않는 임금을 지급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키모토 대표는 사내 직원들에 대해 건축업에 연관되는 거의 모든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하도록 장려한다. 헤이세이건설 사원들은 12개 부서 중 절반 이상을 거쳐 간다. 그에 따르면 한 사람이 여러 기술을 보유할수록 내제화로 인한 업무 완성도도 높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설계서 사후관리까지 일괄책임 일반 건설회사들은 아직도 하도급 회사에 외주를 줘 건물을 짓는다. 집을 지으려는 고객은 보통 건설업체나 토목업체, 설계사에 건축을 의뢰한다. 의뢰를 받은 업체는 설계도가 완성되는 즉시 기초공사, 비계(공사를 돕기 위한 임시 가건물), 형틀, 철근, 목공 등 각각 업무를 담당 업체에 발주한다.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아키모토 대표에 따르면 이는 ‘모두가 탄 배’다.

    “모두가 탄 배는 결국 가라앉고 말아요. 남들이 타지 않은 배에 타야 더 멀리,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헤이세이건설은 내제화를 통해 영업에서 설계, 디자인, 시공관리, 기초공사, 비계, 형틀, 철근, 목공,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회사 내에서 실행한다. 한 개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고용된 전문가가 있으니 고객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헤이세이건설은 건물을 의뢰한 고객의 사진을 현장에 걸어놓습니다. 어떤 고객이 우리 회사에게 일거리를 주는지 정확하게 알고 일을 하자는 취지죠.”

    내제화 모델은 아파트 단지나 거대 플랜트, 복합단지, 비즈니스센터 등에는 적용이 어려울 것 같다는 지적을 하자 아키모토 대표는 수긍했다.

    “헤이세이건설의 내제화란 거대 사업에 적용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업의 기본 방침을 수정할 생각은 없어요. 대규모 프로젝트는 대기업이 담당하면 되니까요.”

    아키모토 대표에 따르면 헤이세이건설과 같이 규모가 작은 회사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건설 트렌드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일을 하다 정체성이 모호해졌을 것이란 게 아키모토 대표의 생각이다.

    “헤이세이건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본의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건축물 짓기’입니다. 작아도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집을 짓는 것이지요. 재표부터 시공까지 헤이세이건설은 전부 일본산, 일본인의 기술을 씁니다. 외국에서 저렴한 재료를 들여와 건물을 뚝딱뚝딱 짓는 건 우리 회사 가치와 어울리지 않아요. 비싸더라도 일본산 소나무를 쓰고 인건비가 더 들어도 일본인 장인을 목수로 둡니다.” 헤이세이건설이 짓는 건물은 철저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인 것이다.

    헤이세이건설은 해외진출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한다. 아직 해외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진출하게 된다면 지금의 내제화 모델을 그대로 가져갈 생각이다. “10년 후 해외 시장에 뛰어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국가에 진출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해외 시장 공략도 일본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할 생각이에요. 일본의 전통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집을 지어주면 고객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일반적인 해외 진출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키모토 대표는 회사 경영에서 원칙과 철학을 버리면 회사는 그 길로 끝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해외에 진출을 하더라도 헤이세이건설의 뼈대는 꼭 유지할 생각이다. 다만 시대에 맞게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회사의 번영만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아키모토 대표는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도 기술로써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헤이세이건설이 창립한 지 20여년이 흘렀는데, 당시 청년 장인(목수)들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사회 한 구석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워낙 수많은 경험과 기술을 갖춰왔으니까요.”

    목수들이 지은 집은 예술품 아키모토 대표가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직원은 ‘목수’다. 그는 목수라는 표현 대신 ‘장인’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목수들이 만드는 집을 ‘예술품’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키모토 대표에게 인건비를 줄이는 회사는 가장 나쁜 회사다. 업무에 대한 동기, 책임 의식을 앗아가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많은 기업들이 최근 인건비를 줄이고 설비투자를 늘리는 점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는 이에 대해 “인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기계에 맡기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헤이세이건설의 인재 교육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학교처럼 바로 윗선배에게 후배가 배우는 식의 교육법을 진행하고 있다. 학년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선후배 사이가 돈독한 것처럼 회사에 그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나(아키모토 대표)같이 너무 윗사람이 신입사원을 가르치려 들면 자리만 불편해지고 업무를 익히는데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연차가 비슷한 선후배끼리 함께 하다보면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고 사회생활 노하우도 금방 익히게 됩니다. 나는 그런 환경만 만들어주면 돼요. 12개 부서를 직무별로 나눠놨지만 이건 학교의 학급(반)처럼 운영됩니다. 재밌지 않은가요?”

    아키모토 대표는 사원들을 상대로 ‘경영자 세미나’도 열고 있다. 인재 개발 프로그램의 하나로, 경영자의 자질에 대해 사원들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다. 자연스레 사원들의 애사심과 업무 숙련도를 점검해볼 수 있다.

    “이들 중에 헤이세이건설을 맡기고 싶은 사람도 몇몇 있어요. 무르익지 않았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훌륭한 인재들이지요.” 그런데 아키모토 대표에겐 이미 아들이 세명이나 있다.

    하지만 그는 아들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창립한 회사라 하더라도 이것이 ‘개인의 소유’라고 할 수 없다고 믿어서다. “회사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과 사회의 도움 덕분입니다. 회사가 내 것이라고 한다면 창립 초기 자본 정도겠죠. 이만큼 덩치를 키운 상태에서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에요. 아들들에게도 평소 이런 제 생각을 말하곤 합니다. 아들들도 회사를 공짜로 물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아요.”

    아키모토 대표는 자신이 은퇴하면 기업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생각이다. 한국의 재벌 제도에 대해서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가족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대해 다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창립자가 기업을 일구긴 했지만 그 기업이 영속한다는 보장이 없고, 그것을 자손이기에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경영은 경영이고 가족은 가족입니다. 분리해서 생각해야 회사가 더 발전적으로 큽니다.”

    회사의 오너가 이러한 생각을 고수해오자 직원들도 그를 믿고 따른다. 지난 20년간 단 한 건의 사표도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건설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는 전형적인 생각은 내겐 고쳐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집’을 장인이 만드는 예술품으로 생각하는 그날까지, 제가 할 일은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아키모토 히사오 헤이세이건설 대표는
    사진설명
    아키모토 히사오는 1948년생으로 17년간 건설업계 최고 영업사원으로 활동하다 1989년 헤이세이건설을 설립했다. 회사는 지난 23년간 단 한 번의 적자 없이 성장해왔고, 대졸자 대상 ‘취직 인기 순위’ 조사에서 굴지의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항상 10위권 내에 꼽히고 있다.

    일본 전체 도산 기업의 30%가 건설회사인 장기 불황 시대에도 매년 신규 채용을 계속하면서 꾸준히 매출액과 이익을 높여가고 있다.

    대졸 엘리트들을 정규직 목수로 채용한 발상의 전환과 외주 관행을 깨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으로 다른 업계에서조차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한편 헤이세이건설은 일본 중부 시즈오카에 본사가 있다.

    [황시영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8호(2013년 0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