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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lar]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 모르셨나요?
입력 : 2012.12.28 14: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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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무슨 말씀을. 고생 많이 했지. 우리 세대는 전부 자수성가 세대 아닌가. 내가 1946년생인데, 6·25 직후엔 부(富)라는 게 없었다. 박살이 났지. 지금의 50대들은 좀 나은 세대다. 우린 정말 가난했다. 덕분에 7남매의 막내였던 난 막내의 혜택을 전혀 못 누렸다.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막내를 챙기겠어. 각자 알아서 했다.
그 시대 독일 유학은 쉽지 않았을 텐데, 4형제가 독일에서 유학했다. 돈 없고 백 없으면 가방 끈 늘리는 수밖에 없었거든. 그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럭셔리한 유학이 아니고 생존의 방편으로 떠났다. 5형제 중에 넷이 독일로 떠났는데 모두 교수가 됐다.
2013년의 화두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새해가 밝았다. 나라의 국운이 화두다. 한국은 이제 누가 봐도 선진국이다. 어찌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한류가 나올 수 있겠나. 한국이 선진국이란 건 해외만 나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걸 모르는 건 우리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면서 지식인이네 한다. 난 당당히 한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떠들고 다닌다. 누군가는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우리를 왜 모르는 걸까. 무엇이 문제인가. 선진국임에도 아직까지 후진국 마인드다. 지난 대선 때를 돌아보면 곧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지 않았나. 지난 정권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난 MB가 소통은 실패했지만 적어도 국격은 높여놨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미래로 가야지.
마인드가 문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침략에, 해방 후 미국의 영향까지 그래서 자기비하적인 생각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개인적으로 선진국이냐 아니냐는 거짓을 전제하고 얘기하느냐 아니면 상대방의 말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옳은 말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건 국민성과 관계가 있는데, 예컨대 일본은 늘 돌려서 얘기한다. 직설화법이 존재하지 않거든. 날이 더운데 에어컨 틀자는 말을 않고 지구온난화로 돌려서 얘기하지. 그럼 상대방이 알아채고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에어컨을 틀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게 일본식 화법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어려우려고. 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법이 어려운 나라가 한국인 것 같다.
그건 또 어떤 이유인가.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솔직하게 말해서’란 말을 즐겨 쓰거든. 그러곤 거짓을 말하기도하고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상대방이 어떻게 믿겠어. 그 점이 바로 국민성인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국민성이 정반대다. 게르만 계통의 다민족 국가인 스위스는 솔직하다. 그런데 20~30개국의 사람들이 모인 오스트리아는 솔직하면 손해를 보거든. 미국 사람들도 은근히 돌려서 말하지 않나. 예측이 가능한 것도 중요한 선진국의 잣대지만 상대방을 믿는다 안 믿는다는 국민성이나 문화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다. 워낙 외침이 많았고 수없이 당파싸움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지.
그렇다면 선진국 마인드를 갖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잠재의식 속에 세계를 제패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한번쯤 그런 경험이 있거든. 총칼로 빼앗든지 상대방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누려본 경험이 있다. 외침에 시달려왔던 우린, 우리가 선진국이 됐음에도 진정 그런 건지 인정하지 못한다.
이미 세계 제패는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지. 충분히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예전엔 총칼로 누렸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우린 이미 세계 경제 8위의 대국이고 올림픽 5위 국가 아닌가. 이게 현대사회의 세계 제패다. 세계 어딜 가도 현대, 기아차가 돌아다니고 해외 유명 백화점 쇼윈도에 삼성과 LG TV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당당해 마땅하다.
그런 생각을 서로 공유해야 할 텐데, 예컨대 스포츠 스타의 세계 제패를 보곤 ‘저게 얼마나 가겠어’라고 폄하한다. 역사의 그늘이 남긴 패배의식이지. 1900년대가 시작되면서 을사늑약, 한일병합, 일제침략, 해방, 분단, 남북전쟁, 군사독재, 유신이 이어진다. 그런 역사를 겪은 우리가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다음 세대는 당당하다. 젊은 세대와 이야기하면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데 젊은 세대는 좌충우돌이다(웃음).
때로 그들도 불행하다고 한다. 그건 상대적인 입장이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상대빈곤이 존재하거든. 유교사상을 강조하는 우리만 평등이 깨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서구적인 입장인데, 이 서구적이란 말엔 개인주의가 전제돼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 아닌가. 자본주의도 개인의 행복과 부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우린 공동체 의식도 중요하다. 그러니 모순이지. 개인이 중요하지만 공동체도 중요하니 내적인 갈등이 커질 수밖에.
그럼에도 우린 장점이 많은 민족이다. 물론이다. 우리의 가장 큰 다이내미즘은 격렬한 싸움 아닐까. 일본이 갖고 있지 않은 게 그것인데, 그들은 첫째 부부싸움이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가장 큰 죄악이라고 여기거든. 부부간에도 싫은 소리를 안 한다.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남편이 퇴직하면 탁 터뜨려서 황혼이혼을 하지(웃음). 또 하나, 일본에는 리더십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국민이 만든 문제다. 너무 양순해서 시키는 대로 따라간다.
정치지도자가 국민을 우습게 보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럼 국민이 왜 양순할까. 이 사람들은 한 번도 피를 흘리면서 권력을 쟁취해본 역사가 없다. 막부시대엔 사무라이 계급이나 권력투쟁을 했지 농민들의 전쟁은 아니었거든. 우리의 역사를 보자고. 처음부터 끝까지 피로 나라를 지키고 권력을 쟁취했다.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는 부분인데. 그래서 늘 긴장하고 살았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데, 그런 대립관계에서 정신 줄을 놓으면 죽는다는 심정, 악바리 근성을 갖고 살아왔다. 어쩌면 그래서 여기까지 왔지. 엎치락뒤치락 싸웠기 때문에 정치도 여기까지 왔고. 한쪽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민주화나 선진화는 불가능했지. 서로 싸우는 건 정치적인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
올해의 화두를 꼽는다면. 우린 서로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 한국인의 개념에는 모놀로그×2가 다이얼로그인줄 알거든. 대화를 하면 자기 얘기만 하지. 상대방 얘기보다 다음엔 무슨 얘길 할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대화하자 해놓고 “그건 됐고요” 해버린다. 그런 면에서 올해의 화두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닐까. 끝까지 듣고 옳은지 그른지 판단한 후 자기 얘길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100번 얘기해야 100번 부딪친다.
대학도 그런가. 회사 면접에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과연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이곳 저곳에 물었더니 남자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고 여자들은 TV도 보지만 책도 본다더라고. 요즘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원천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PC, 모바일, TV. 그 세 가지 매체에 보도된 것 외에는 아는 것이 깊지 않다. 기업이 여성인력을 보는 시각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던데 반가운 일이다. 가정에서도 우먼파워가 달라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점프하는 시기다.
반면에 여전히 여성시대는 아직 멀었다는 시각도 있다. 공식적으론 여성들이 불이익을 많이 당하는 사회로 비쳐지는데, 사실 이 사회를 주도하는 건 여성들 아닌가. 당장 매거진만 놓고 봐도 남성지는 종이가 얼마나 거칠어. 여성지는 스노 화이트, 아주 깔끔하다. 경제권을 여성이 쥐고 있으니 최고의 종이를 쓰는 것 아닌가.
21세기는 동양적 가치관이 급부상하고 있다 다시 올해의 이슈를 나열해보면 대선 이후에 정치적인 면 또한 비껴갈 수 없는 화두 중 하나다. 그렇겠지. 우려되는 건, 우리 정치의 문제점은 증오거든. 개인적인 이념이 다를 뿐인데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왜 서로 웃으며 풀지 못하는 걸까. 역사적으로 늘 진검승부만 해 와서 그렇겠지. 죽기 아니면 살기였으니. 외신기자들이 한국에 오면 떠나기 싫다지 않나. “Every Morning Surprise!”라고. 바뀌기가 쉽지 않겠지.
세계를 주도해오던 서구식 흐름도 계속 이어지게 될까. 어느 정도 올 데까지 온 것 아닐까. 21세기는 중국의 부상이 거대하다. 이건 경제적인 측면 외에 가치관도 그렇다. 동양적 가치관이지. 지금까지는 서구적인 것이 보편적인 진리인 줄 알았는데, 점차 한계에 부딪히면서 새로운 가치관으로 동양적 가치관이 부상하고 있다.
유럽 경제의 위기도 가치관의 한계와 연관 지을 수 있을까. 그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축적된 것이 터진 것이지.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서유럽의 경제구조는 착취구조 아닌가. 그것이 2차 대전 이후에 교환경제로 바뀌었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가 1960~1970년대 독립했고 동남아시아도 그랬다. 착취할 데가 없으니 착취구조였던 경제가 서서히 붕괴할 수밖에. 우린 늘 공존을 이야기한다. 독단적으로 생존하자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자는 게 아시아적 가치다. 그런 측면에서 서구적 가치관은 이제 한계에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더불어 한·중·일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동감한다. 하지만 일본의 재부상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완전히 서구식으로 바뀌었다. 앞서 말한 유럽의 착취구조까지 똑같았거든. 일본의 침몰은 1990년대 유럽의 침몰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어떤 면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나. 우선 국가 전략적인 측면이 있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자는 서구화 전략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신이 개조됐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통한다. 아시아인이 어떻게 아시아를 벗어날 수 있나. 현 상황을 이끌어갈 가치관과 국가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갈팡질팡하는 것이지.
이른바 정체성의 혼란인데. 그렇지. 일본인들의 취약점 중 하나가 자기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서구식으로 갈아입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시안인지 유러피언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워한다. 명치유신 이후 외국인이 일본을 주제로 쓴 <일본론>이 약 3000종 출간됐다. 그건 밖에서 봐도 불안하다는 방증인데 그것도 백인들이 쓴 책만 팔리고 아시안이 쓴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백인우월주의지. 아시아를 얕잡아보고 있다. 그러니 희망이 없다. 중국의 위기도 수차례 거론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석학들은 20여년 전부터 중국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물론 단 한 번도 예측이 맞진 않았다. 어떤가. 지금까지 보여진 중국의 구조와 공산당의 정치를 보면 내부에 위기가 오더라도 극복해 나갈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존경받는 국가로 성장할 순 없을 것 같다. 중국은 우선 존경받길 바라지 않는다. 만리장성을 쌓아놓고 들어오지 마라, 우리도 나가지 않겠다 했으니. 중국은 아마도 서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를 전개하지 않을까. 유럽 역사를 보면 먹고 먹히는 복잡한 역사가 전개된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는 이미 한국과 베트남을 제외하면 점령하지 못한 곳이 없다.
서울 역삼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대담 중인 이원복 교수와 조경엽 국장
젊은 세대의 마인드는 어떤가. 글로벌화됐지. 외국에 나가면 아주 세련됐다. 패션부터가 다르다. 주눅 들지 않는다는 점에선 아주 좋다. 잘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단적으로 서양인이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게 한국인이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양궁, 사격, 얼마나 잘해(웃음). 아시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서양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다른 아시아 국가는 서양의 지배를 받으면서 반서방의 DNA를 갖고 있는데, 우린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양에 의해 해방됐다. 중요한 건 우리 가치를 잊지 않고 지키면서 서양의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서양의 영향은 일본이 더 절대적인데. 그건 다르다. 그들은 받아들이되 일본화시켰지. 이도저도 아니다. 그래서 일본의 문화에는 호환성이 없다. 중국도 중화사상에 얽매여 변화를 거부하다 보니 호환성이 없다. 그러니 차이니스 웨이브가 안 나온다. 우린 서양의 가치관으로 우리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우리의 가치관으로 서양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싸이나 소녀시대처럼 한류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한류의 원천이 곧 문화적 자존심이다? 그렇지. 한류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 기업이 프런티어가 돼 전 세계인의 인식을 바꿔놨고 둘째, 스포츠가 선전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셋째, 국가 이미지가 달라졌다. 이쯤 되니 세계인이 묻는다. 한국인이 누구냐고.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잘하냐 이거지. 뭔가 모르게 저력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싸이가 나와서 말춤 추고 돌아다니니 재미있잖아. 안심하고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싸이의 등장은 전 세계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 공인증명서다. 본격적인 한류는 이제 시작이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는 1946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독일 뮌스터 대학 디자인학부로 유학, 디플롬 디자이너 학위와 총장상을 수상하며 졸업했다. 이후 같은 대학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당시 10년에 걸친 유학과 유럽체험이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의 근간이 됐다.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1500만권이 판매됐고 중국, 대만, 태국, 미국 등지에서 번역됐다. 최근엔 한류의 영향으로 프랑스에서 한국편을 번역해 출판하겠다는 제의가 오기도 했다. 지난해 덕성여대에서 퇴직하고 석좌교수가 됐다. [대담 조경엽 국장 정리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8호(2013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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