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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스타 CEO]⑤ 레노버 양위안칭 회장…삼성 추월 중국 1위 자신 있어요
입력 : 2012.12.28 14: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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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무기로 삼성·애플 이어 판매량 3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중국시장에서는 저가를 무기로 삼성과 애플에 이어 판매량 3위로 올라섰다. 중국 경쟁사인 화웨이와 ZTE를 넘어선 결과다.
이런 레노버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양위안칭(楊元慶)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다. 중국에서 양위안칭은 가장 성공한 전문경영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지난해 받은 연봉은 무려 135억원에 달했다. 중국 내 최고액이다. 그가 중국에서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불리는 이유다.
레노버의 창업자는 류촨즈 전 회장이지만 그는 회사가 일정 규모로 올라선 뒤 양위안칭에 경영의 전권을 맡겼다. 양위안칭보다 레노버를 더 잘 경영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노버를 만든 것은 류촨즈였지만 지금의 레노버로 키운 것은 양위안칭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레노버는 2012년 3분기 PC 출하량 1377만대를 기록해 세계 시장 점유율 15.7%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 PC업체인 HP(1355만대)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그동안 HP를 추격하던 에이서 등 쟁쟁한 업체들이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지만 레노버는 시장점유율을 오히려 높인 결과다.
레노버는 PC에서 꿈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 모바일 시장에서 새로운 승부에 나섰다. 2012년 3분기 레노버는 중국에서 3850만대 스마트폰을 팔아 아이폰5 출시가 지연된 애플을 깜짝 제쳤다. 지난 2010년 5월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뒤 2년 만에 거둔 쾌거다.
레노버는 삼성을 경쟁상대로 공언하는 것을 이제 숨기지 않는다. 그동안 감추었던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시장에서는 조만간 삼성을 제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트너는 “레노버가 삼성을 추월해 중국 1위 업체로 부상할 날이 멀지 않았다”며 “인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신흥시장에서도 레노버 스마트폰 판매가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1년 11월 류촨즈가 물러나면서 회장 자리까지 물려받은 양위안칭은 얼마 전 직원들과 가진 결의대회에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얼굴에 홍조를 띈 채 그는 “지난 1년은 내 평생 가장 신나는 한 해였다”고 말했다.
그는 고생한 직원들에게 크게 선심도 썼다. 자신이 6월에 받은 상여금 중 2000만위안을 하위직 근로자 1만명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회사 안내직원과 생산직 근로자, 사무보조, 콜센터 근무자 등에게 돌아갔다. 직원 한 명당 평균 2000위안씩을 받았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직원들은 감동했다. 한 외신은 “서구에서는 CEO들이 상여금을 받으면 요트를 새로 구입하는데 양위안칭은 다른 사람들과 부를 공유했다”고 극찬했다.
레노버가 이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한 데는 인수합병(M&A) 전략이 주효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5년 5월 IBM PC사업부문을 인수한 것이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며 단번에 PC부문에서 세계 3위 업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우려가 많았지만 양위안칭 당시 사장은 인수를 밀어붙였다. 이미 레노버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꿈을 가졌던 양위안칭은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당시 HP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미국 델컴퓨터의 윌리엄 아멜리오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를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것. 양위안칭은 주변의 만류에도 “아멜리오의 경영 노하우와 전문성이 레노버의 새로운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합병 전략 통했다 그러나 레노버의 새로운 시도는 분란을 일으켰다. 아멜리오가 레노버 조직에 칼을 대면서 기존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아멜리오는 2006년 8월 공급망 체인 담당 부총재인 류쥔을 포함해 고위 간부 5명을 델컴퓨터 출신으로 교체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양위안칭도 아멜리오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
양위안칭은 아멜리오가 단기적인 시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아멜리오는 개인 소비 시장을 중시하지 않고 IBM이 강세를 보이던 기업고객 시장에만 주력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기업 수요가 급감하면서 레노버는 어려움에 처했다.이런 문제는 레노버가 IBM PC사업부를 처음 인수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문화적인 화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레노버의 한 전직 간부는 아멜리오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레노버 고유의 문화를 파괴했다. 업적만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직원들의 감정이 많이 상했다. 외국기업의 행태만을 그대로 적용하기에 바빴다. 한 번은 긴급한 일이 있어 연락을 취했더니 휴가 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4년간 단 한 차례도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일해 온 사람으로서는 참기 어려웠다.”
영업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IBM은 실제로 달성 가능한 것보다 목표를 높게 잡아 80%만 달성해도 괜찮다고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90%를 달성한다면 아주 훌륭한 성과다. 그러나 레노버에서는 목표를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2009년 2월 레노버가 3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손실을 기록한 사실이 발표된 직후 아멜리오는 취임 3년 2개월 만에 전격 사임했다. 그가 물러나자 류촨즈가 회장으로, 양위안칭이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했다. 뜻하지 않은 역경은 양위안칭에게 보약이었다. 그는 젊고 능력 있는 CEO에서 경험 많고 노련한 CEO로 변신했다. IBM PC사업부를 인수하기 직전까지 양위안칭은 그저 업무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었다. 영업맨 출신인 그는 성을 공격해 땅을 빼앗는(공성약지·攻城略地) 것을 좋아했다. 우뢰와 같이 맹렬하고 바람처럼 신속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자신이 주장하는 일에 대해서는 편집증을 보일 정도로 자신감을 갖는 스타일이었다. 심지어 오너인 류촨즈 회장도 그를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사회 멤버나 다른 경영진들과도 마찰이 잦았다. 레노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멜리오와 마찰을 빚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은 양위안칭은 외국인 간부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농담도 할 줄 아는 유연한 인물로 달라져 있었다. 날씨와 가족에 대해서도 얘기를 주고받는 등 직원들과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해외 CEO들처럼 부하직원들을 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즐기기도 하고 직접 요리를 할 때도 있다. 외국인 동료들은 이제 친근해진 그를 ‘YY’로 부른다.
모바일 기기와 스마트TV 분야 강화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 레노버는 PC 시장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토머스 루니 북미지역 책임자는 “지금 회사 분위기가 너무 좋다. 1960~70년대 미국 IBM처럼 인재를 중시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모든 사람이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양위안칭의 최대 관심은 전 세계에 레노버 브랜드를 알리는 일이다. 그는 “우리 제품이 애플보다 좋아도 애플만큼 잘 팔 수는 없다. 브랜드 영향력이 작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같은 성능의 PC라면 HP보다 50달러 싸야 팔린다. 500달러짜리를 50달러 싸게 팔아야 한다면 이윤 손실이 매우 크다”고 강조한다. 중국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레노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그의 지상 과제다.
2013년부터 PC 본고장인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휘트셋에서 생산공장을 가동하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이미지를 벗고 ‘메이드 인 USA’ 제품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전통적인 PC 강자인 미국 HP를 완전히 따돌리기 위한 광폭 행보다. 물론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발을 줄인다는 의도도 있다. 양위안칭은 “미국 공장에서 기업용 고성능 컴퓨터인 워크스테이션과 서버부터 시작해 데스크톱과 태블릿PC까지 혁신적인 제품을 주로 생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인건비 부담이 중국보다 3배 크지만 미국 내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고부가 제품으로 수익을 내면 된다”고 강조했다.
레노버는 핵심 성장전략인 M&A에도 여전히 적극적이다.
레노버는 2012년 9월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스톤웨어를 인수했다. 스톤웨어는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로 주로 정부와 학교에 제품을 공급한다. 레노버가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한 것은 처음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고객들의 음악과 동영상 등 각종 자료를 데이터에 저장해주면서 PC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마크 코헨 레노버 부사장은 “애플의 아이클라우드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레노버는 같은 달 브라질 가전업체 CCE를 3억헤알(1550억원)에 인수해 브라질 시장 점유율을 기존의 두 배인 7%로 높였다.
레노버는 최근 들어 스마트폰 분야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양위안칭은 “PC판매 의존도를 줄이고 모바일 기기와 스마트TV 개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중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저가의 고사양 제품으로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인 뒤 삼성과 애플을 따라잡아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레노버는 지난해부터 모바일 기기와 스마트TV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모바일 인터넷 디지털 홈’ 부서도 만들었다. 양위안칭은 “레노버의 제품 개발 주기는 경쟁사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며 “레노버는 혁신기업으로서 신흥국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2012년 중국의 스마트폰 판매는 2011년보다 52% 늘어난 1370만대로 추정된다. 이 경우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최대 스마트폰 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판매 천재 IT스타로 유명세레노버 R&D 센터
그는 그래서 지금도 “레노버는 효율과 창조성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1994년 레노버 컴퓨터부문 대표로 승진했다. 그가 주도한 레노버 브랜드 PC는 4만2000대가 팔리면서 중국 시장 톱3 제품이 됐다. 이때부터 그는 이미 중국의 판매 천재 혹은 IT분야 스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겨우 29세 때 일이다.
그는 2000년 레노버 컴퓨터부문 대표로 취임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브랜드로는 판매 1위를 기록했다.
IBM PC사업부문을 17억5000만달러에 인수한 바로 다음해에는 주소지를 미국 뉴욕으로 옮겨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레노버가 인수할 당시 1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던 IBM PC사업부는 곧바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는 레노버가 중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세계 500대 기업에 진입하게 된 배경이 됐다.
양위안칭 1982년 허페이 제1중학교 졸업
1986년 상하이 교통대 졸업
1989년 중국과기대 컴퓨터학과 석사
1989년 레노버 입사
1994년 컴퓨터사업부 총경리
1995년 최고경영자(CEO) 비서실장
1996년 부사장
1998년 컴퓨터부문 사장
2001년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2005년 회장
2011년 회장 겸 CEO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8호(2013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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