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 한쪽 끝을 건드렸더니 다른 한쪽 끝이 떨렸다

    입력 : 2012.12.07 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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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후, 벌써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야행성으로 살아오고 있다. 총각 시절에야 밤에 원고를 쓰고 낮에 모자란 잠을 벌충하면 그뿐, 아무 문제없었으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부턴 그것 또한 여의치 않아졌다. 아내 혼자 몸으로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일을 멀뚱멀뚱 바라볼 용기가, 담력이, 차마 없었던 까닭이었다. 별수 있나 잠을 줄이는 수밖에.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작은 작업실 하나를 얻어놓고,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잠들면 살며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 그곳에서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머물다가 돌아오는 일(그 때문인지 우리 아파트 이웃들은 모두 나를 ‘대리운전 기사’로 알고 있다), 그곳 책상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거나 눈을 비벼가면서 밀린 원고를 써나가는 일. 그것이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고 난 뒤 벌써 여러 해째 반복하고 있는 일상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작업실에서 밤새 앉아 있자니 새벽 2~3시가 되면 위장이 출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가끔 작업실에서 5분 정도 떨어진 해장국집을 찾아가곤 했다. 전주식 콩나물해장국을 파는 곳인데 얼마 전엔 그곳에서 색이 바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한 청년을 만났다. 별빛도 차츰차츰 멀어져가는 추운 겨울날 새벽, 와이셔츠만 입은 청년의 모습이 생경스러워 자연 그쪽으로 눈길이 갔다. 청년은 양손에 파인애플과 칼을 든 채 해장국집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단 한번 드셔보시고요, 그때 결정하세요.”

    청년은 해장국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네 명의 취객들에게 파인애플 조각을 썰어주며 말했다. 파인애플 두 개에 만 원. 취객들은 청년과 비싸네 싸네, 잔류농약이 많네 적네, 캘리포니아산이네 중국산이네, 실랑이를 하다가 파인애플을 구입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청년이 내 쪽으로 다가올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콩나물해장국을 퍼먹었다. 나는 추리닝 바람이었고 지갑도 없이 달랑 만원짜리 한 장만 들고 나온 상태였다. 다행히 총각은 그런 나를 곁눈질로 한 번 본 다음 발길을 돌렸다. 다행이다, 안도하고 다시 느긋하게 신문을 읽으면서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이런,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파인애플 장사꾼 한 명이 해장국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40대 중반의 머리가 반쯤 벗겨진 까무잡잡한 남자였다. 남자는 두툼한 패딩 점퍼와 귀마개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는 조금 더 왜소해 보였다.

    한 발 늦은 남자는 취객들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아, 진짜 술맛 떨어지게 오늘 왜 이러냐.”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괜스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해장국집 사장은 그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카운터 위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해장국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번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파인애플 한 조각을 내밀었다.

    깍두기 모양으로 작게 썬 파인애플 조각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남자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허리가 구부정하게 앞으로 휜 작고 여린 등이었다.

    해장국집 사장은 괜스레 여러 번 헛기침을 해댔다. 내 상 위엔 남자가 놓고 간 노란 파인애플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보았다. 달콤했지만 찌르르한 통증이 명치께 남았다.

    그날 밤, 나는 해장국집에서 나와 작업실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들어왔다.

    소리 죽여 안방 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아내가 칭얼대는 막내의 등을 무의식중에 토닥거리는 것이 보였다. 잠든 아내는 피곤해 보였고 아이들은 그런 아내의 곁을 계속 파고들려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잠깐 울컥하고 말았다. 좀 전 해장국집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남자가 왜 취객들의 짜증을 받으면서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지, 그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잠든 아이와 또 잠든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가 쓴 짧은 단편소설 중엔 <대학생>이란 작품이 있다. 가난하고 병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신학대학생 이반이라는 친구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철새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이반은 문득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추위와 굶주림과 어둠이 오래 전부터 계속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란 생각에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는 ‘천년이 지나도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반이 모닥불을 쬐고 있던 두 과부 모녀를 우연히 만나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잠깐 모닥불을 쬐던 이반은 말없이 서 있는 것이 좀 어색해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이야기’를 그녀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거기에서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이반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모녀가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고 격한 감정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한 이야기로 인해 모녀가 깊은 슬픔에 빠지자 이반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 후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잇달아 발생하는 사건들의 끊임없는 사슬로 과거와 현재는 연결된다. 그리고 그는 방금 자신이 이 사슬의 양끝을 본 것처럼 느꼈다. 한쪽 끝을 건드렸더니 다른 한쪽 끝이 떨리는 것 같았다.’

    한쪽 끝이 건드렸더니 다른 한쪽 끝이 떨린다는 말, 아마도 안톤 체호프는 공감에 대해서 말하고자 이 소설을 쓴 것인지도 모른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건드렸더니, 천년도 더 지난 후 모닥불을 쬐고 있던 두 모녀가 떨리는 일. 그 말인즉슨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톤 체호프는 그 소설을 쓴 지 백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나는 콩나물해장국집에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대강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소설 속 이반은 그들 모녀와 헤어진 후 ‘천년이 지나도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에서 벗어나 ‘삶은 매혹적이고 경이로우며 또한 고귀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두 힘든 시절들을 보내느라 애쓰고들 있다. 하지만 또 그렇게 힘들었던 한 해가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이런 말이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란다. ‘우린 모두 보이지 않는 작은 끈으로 이어진 존재들이지요. 그걸 믿습니다.’ 모두 공명하고 공감하면서, 그래서 다시 힘들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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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호 소설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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