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fessor]정부정책도 ‘넛지’처럼 쉽게 쉽게…`넛지` 저자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입력 : 2012.12.07 16: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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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은 딱딱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넛지(Nudge)’로 깰 수 있다.” 팔꿈치로 살짝, 쿡쿡 찌른다는 의미의 이 단어가 공공정책에 접목된다? 한마디로 파격이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요소를 접목시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무언가를 직접 대고 말하며 요구하기 보다는 넛지 방식으로 쿡쿡 찌르며, 은근히 행동을 유도하게 되는 것. 그것이 선스타인 교수의 ‘넛지 이론’의 핵심이다. 위트 있는 말투와 반짝반짝한 눈동자, 그리고 마치 애니메이션 <심슨스(The Simpsons)>의 심슨을 닮은 듯한 외모의 선스타인 교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멘토’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백악관에서 정보규제국 실장을 지냈던 그가 지난 10월 ‘넛지’를 설파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다른 강연과 달리 시종일관 쉬운 언어로, 재미있는 케이스 위주로 40분 동안 쉴 새 없이 ‘넛지’를 설파한 선스타인 교수는 이제 정책은 그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재미있는 넛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선스타인 교수는 인간의 뇌 구조가 두 가지로 나눠진다고 말했다. 인기 있는 한 TV 광고에서도 나와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한쪽 뇌는 자동적으로, 빠르게, 노력 없이, 감정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 뇌는 신중하고, 계산적이며, 느리고, 이성적이다. 그런데 뇌의 이 두 가지 구조가 넛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선스타인 교수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여러분, 농구 선수 중 래리 버드라는 선수를 아시나요? 굉장히 뛰어난 미국의 농구스타입니다. 이 선수가 말이죠, 다른 선수들에게 장거리 슈팅 경기를 하자고 제안했답니다. 그런데 경기장에 딱 도착해서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이 농구공이 너무 미끄럽지 않냐’ ‘공 잡기가 힘든데…’라고 슬쩍 던졌다고 하네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래리 버드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농구를 잘하기도 했겠지만 그가 슬쩍 던진 두 마디가 경쟁자들의 뇌 시스템을 혼동시킨 겁니다. 슈팅이라는 건 자동적으로 학습한 행동과 동작이 나와야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게임인데, 그의 두 마디가 다른 선수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뇌 시스템을 교란시킨 것이죠.”

    이것이 정책에 어떻게 연결될까. 선스타인 교수는 일단 일상에서의 예를 먼저 들었다.

    “제가 20년 전쯤에 잡지 하나를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기구독이죠. 이걸 해지하려면 두 번째 시스템이 작용해야 합니다. 이걸 왜 구독해야 하는지, 이것이 과연 나에게 필요한지 등이죠. 하지만 자동적으로 작용하는 첫 번째 뇌 구조 시스템이 더 강력합니다. 굳이 제가 해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이 잡지는 저에게 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이 잡지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데도 20년째 구독하고 있습니다. ‘자동화’의 힘을 아시겠죠?” 이제 정책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줄 차례다. “정부 정책도 이렇게 쉽고 자동적이어야 효과가 큽니다. 이성적이고,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생각이 들어가는 두 번째 뇌 구조가 작용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그 정책에 대해 아는 것을 포기해버립니다. 간단하고, 자동적이고, 직관적이어야 합니다. 뇌 시스템 넘버2가 무리하게 작용하면 안 됩니다.”

    그는 정부가 어떻게 비만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 사례를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은 큰 문제입니다. 왜 최근 들어 비만인 사람이 늘어났을까요? 한 끼에 먹는 양이 늘어난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뚱뚱해지면 건강에 좋지 않고 성인병에 걸리기 쉬우니 적게 먹어라’라고 하는 게 효과적일까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사람들의 접시 크기를 줄여 자기도 모르게 적은 양의 한 끼’를 먹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일까요? 접시 크기를 줄이는 것, 이게 바로 넛지입니다. 굳이 뇌의 복잡하고 이성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죠.”

    흡연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정부의 정책도 이런 넛지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흡연으로 인해 요즘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죠. 그리고 요즘 이런 끔찍한 사진을 담뱃갑에 보여주는 게 의무화 돼 있습니다. 한국도 앞으로 이렇게 한다고 들었는데요. 이 사진은 인간의 뇌 시스템 1번에 적용돼 자기도 모르게 흡연이 나쁘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고 효과적인 정책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오바마 정부에서 일할 때의 실사례도 제시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수십만명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학교급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건 보통 자동적으로 아이들이 신청하지 않아도 지급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사소해보이지만 대단한 ‘넛지’입니다. 만약 아이들로 하여금 신청을 해야만 무료급식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아이들만이 무료급식의 혜택을 누렸을 겁니다. 자동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되게 하는 넛지의 힘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저소득층 학생들의 대학등록금 지원정책을 펴면서 딱 한 가지 변화로 몇 배는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게 됐다는 사례도 선스타인 교수는 소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저소득층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돕고자 했는데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니 혜택을 받으려면 너무나 복잡한 이런저런 서류와 양식을 작성해야 하더라고요. 너무 복잡해서 아이들이 아예 신청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나타난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 양식을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바꿨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그저 신청서 양식 하나 바꿨을 뿐인데 혜택을 입는 학생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거죠. 우리가 지원 금액을 늘린 게 아니었습니다.”

    선스타인 교수에 따르면 전기요금 절감도 캠페인이 아닌 간단한 절차 변경 하나만으로도 가능했다. 역시 어떤 강요도, 강압도, 요구도 없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전기를 아껴 달라’고 호소하곤 하죠. 하지만 이렇게 호소하는 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국과 미국에선 딱 한 가지 프로세스를 바꿔 꽤나 큰 효과를 봤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내 옆집 사람의 에너지 사용량을 알려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내 옆집 사람이 우리보다 훨씬 전기요금을 덜 냈다는 걸 알면, ‘나도 전기를 덜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영부인인 미쉘 오바마가 시도했던 운동 및 칼로리 저감 캠페인도 넛지가 정책에 적용된 좋은 사례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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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쉘 오바마가 ‘렛츠무브’라는 운동 장려 및 칼로리 저감 캠페인을 추진했는데요. 사람들에게 뭘 하자고 한 게 아닙니다. 월마트와 코카콜라와 일단 만남을 가졌습니다. 최대 스토어 체인인 월마트에 들어가는 수천개의 음식 품목을 정한 후 트랜스지방을 없애고, 염분과 당을 2015년까지 줄이기로 합의했죠. 코카콜라도 자사 전 제품에 칼로리 혁신을 해 1조5000억 칼로리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제품을, 똑같은 양으로 먹어도 살을 뺄 수 있고 섭취 칼로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좋은 정책이죠.” 정부의 정책만이 아니다. 기업의 비즈니스에도 이런 넛지 방식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분이 휴대폰 통신 서비스에 가입할 때 무조건 가입해서 유지해야 하는 서비스가 있고 옵션으로 선택해야 하는 서비스가 있죠? 과연 어떤 서비스를 소비자가 더 많이 선택하게 될까요? 당연히 기본 가입되는 서비스입니다. 기업에서도 이런 ‘옵트인’ 방식을 잘 응용할 수 있겠습니다.”

    선스타인 교수는 아래와 같은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 위기도 찾아오지만 우리는 우리의 심리, 우리의 두뇌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두뇌와 심리를 이용해 조그마한 넛지를 줘봅시다. 그래서 좀 더 건강하게 오랜 시간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아봅시다. 민간 부문에서나 공적 부문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당장 넛징을 시작합시다.”

    [박인혜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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