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er] 수입맥주에 속다

    입력 : 2012.12.07 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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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르기 참 힘드네.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대형할인마트 한편 진열장을 가득 채운 수입맥주들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종류를 세기도 벅찰 정도로 국내에 모습을 비춘 수입맥주가 늘어났다. 해외여행객이 늘어나며 세계 각지 맥주 맛을 보고 돌아온 ‘경험’과 다양하고 새로운 맛을 찾는 ‘기호’가 결합된 결과 수입맥주시장은 크게 팽창했다.

    정의현 오비맥주 프리미엄마케팅팀 부장은 “현재 국내에 유통된 수입맥주의 종류는 대략 230여종에 이른다”며 “호프와 맥아가 들어 있지 않은 무알콜 맥주와 알콜성 소다류 등을 더하면 440~450여종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선풍적인 수입맥주의 인기는 일명 ‘맥주창고’라 불리는 셀프 판매형 수입맥주 판매점의 증가세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이러한 맥주창고는 200여종의 다양한 수입맥주를 손님이 직접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내 마시는 형태의 주점이다. 서울시내에만 약 1500개가 들어선 맥주창고는 수입맥주 상인들의 전략적 유통경로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듯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수입맥주들에는 몇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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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산 아사히와 국산 버드와이저 늘어난 경쟁자를 제치고 지난해 국내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수입맥주는 ‘버드와이저’로 점유율은 23.6%에 이른다.

    올해 역시 버드와이저가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후발주자가 바로 아사히다. 올해 8월까지 이마트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아사히는 전 소매채널을 통틀어서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수입맥주로 알려졌다.

    주류업계와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맥주 수입량을 기록한 나라는 일본으로 20.9%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맥주는 현재 ‘아사히’ ‘기린’ ‘산토리’ ‘삿포로’ 등이다.

    정 부장은 “최근 2~3년새 일본식 주점(이자카야)의 인기와 더불어 젊은 층의 수요가 커진 것이 일본맥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판매량 선두권을 보이는 이러한 수입맥주들의 원산지는 브랜드 기원국과 다른 경우가 많다. 국내에 유통되는 수입맥주는 대부분 병째 수입되지만 예외적으로 국산제품도 존재한다. 버드와이저와 호가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버드와이저는 오비맥주가 국내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며 광주공장에서 국내산 물, 맥아, 호프 등을 사용해 만들어진다. 호가든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생산된다.

    국내에 유통되는 일본 병맥주들 가운데 일본현지에서 생산되는 것은 ‘산토리’가 유일하다. 롯데주류가 유통을 담당하는 아사히와 하이트진로가 국내에 들여오는 기린 병맥주는 ‘중국산’이며 삿포로캔의 경우 캐나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국내에 유통된다.

    수입맥주를 통해 그 나라 특유의 토속적인 정취를 즐기려는 소비자에게 이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정 매니저는 “호가든은 러시아에서도 생산하며 기네스는 아일랜드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밀러는 브라질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만들어진다. OEM으로 생산된다고 해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은 고정관념이다. 소비자들도 브랜드보다 맛과 품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생산국이 어디인가는 그리 중요치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 한 업계 전문가는 “OEM 방식의 생산은 현지화를 통한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유리할 수 있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생산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부각될 경우 브랜드 이미지까지 실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덴마크 맥주인 칼스버그의 경우 몇 해 전까지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국내에 유통시켰으나 이러한 사실이 부각되자 브랜드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지금은 전량 덴마크산을 수입하고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아사히 역시 현재 중국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는 것을 계획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얼마 전 아사히는 갑작스런 가격 인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롯데아사히는 지난 9월 편의점과 유흥주점을 대상으로 아사히 맥주 값을 인상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아사히는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이 3배나 늘어나는 등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엔고(高)를 이유로 제품 가격을 높였다”며 “OEM 생산원가에 비해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아사히의 가격인상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듣보잡’ 맥주 등장 유해성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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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수입맥주가 좋은 반응을 보이자 병행수입을 통해 개인업자들이 홍콩이나 벨기에 등지에서 소량씩 가지고 들어와 저가로 수도권 지역 마트나 셀프 맥주바를 통해 퍼뜨렸다. 수입맥주의 종류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유통구조에 있다.” 정 부장은 수입맥주 종류의 증가 원인 중 하나로 병행수입을 꼽았다. 중소상인들이 소량씩 들여와 유통시키는 형태이다 보니 안정성이나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맥주가 섞여 들여오기도 한다.

    작년 3월 식약청은 독일산 헤페바이젠 및 슈바츠비어 맥주 1628통에 대해 유통 및 판매금지 처분 및 회수 조치를 한 바 있다.

    이유는 맥주에 혼입되거나 잔류해서는 안 되는 가성소다가 첨가돼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부분 회수됐지만 이미 소비자의 뱃속으로 들어간 후에는 대책이 없다.

    수입맥주의 종류가 많아지고 소량의 병행수입 업체가 늘어나면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 부장은 “전문가들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맥주들이 국내에 등장하고 있다”며 “검증이 안 된 제품이 판매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만큼 하이퍼마켓 등에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맥주는 품질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생맥주 맛있는 집은 이유가 있다 ‘이 집 맥주 맛은 왠지 다르네!’

    맥주 맛은 분위기나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좌우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선함과 온도다. 맥주가 갈색병이 많은 이유는 열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보통 병맥주의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1년이다. 수입맥주가 국내에 유통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개월. 따라서 국내에 들어온 후 9개월 정도가 유통기한이 된다.

    다른 제품에 비해 유통기한이 긴 맥주의 경우 소비자들의 경각심은 둔감한 것이 사실이다. 우유를 살 때와 마찬가지로 맥주역시 유통기한을 꼼꼼히 따지는 것은 기본이다.

    한 주류 전문가는 “맥주는 보관상태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제조 후 6개월 이상이 지나면 신선한 상태였을 때보다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라며 “맥주 마니아들이 생산된 지 1~2개월 안쪽의 맥주 파는 곳 정보를 교환하고 찾아다니는 이유가 있다”라고 밝혔다.

    대형할인마트에 냉장고가 아닌 일반진열장에 맥주를 전시하는 것 역시 맛을 떨어뜨리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조명을 비춰 열을 가하는 방식의 전시는 맥주의 변질 가능성을 높인다.

    정 부장은 “외국 바이어들이 국내 할인마트에서 맥주를 진열해 놓은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며 “맥주를 냉장고가 아닌 일반진열장에 놓고 판매하는 것에 놀라고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란다”고 설명했다.

    생맥주의 유통기한은 6개월 정도로 병맥주에 비해 짧다. 효모가 살아 움직이는 생맥주의 경우 유통기한이 다가올수록 맛의 변질은 더욱 심하다.

    정 부장은 “생맥주의 경우 유통기한이 다가오고 지나면 효모가 알을 까고 살아 움직이며 열을 발생시켜 부영양화가 일어난다”며 “생맥주 맛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100%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보통 수입생맥주는 커다란 케그(Keg)통을 통해 밀폐돼 수입된다. 개별업소에선 별도의 냉각 및 배관 설비를 이용해 케그에서 맥주를 꺼내는데, 이 같은 설비가 청결하지 않으면 효모나 유산균이 번식해 맥주 맛이 떨어진다.

    특히 맥주가 맛있는 곳은 이러한 설비를 깨끗이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케그가 자주 들어올수록 신선한 생맥주를 공급받을 수 있다. 장사 잘되는 집의 맥주가 맛있는 이유는 바로 케그의 순환이 빠르기 때문이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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