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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t] 내년 가장 큰 위험요인은 중동…데이비드 고든 유라시아그룹 리서치센터장
입력 : 2012.11.12 1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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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스크를 분석하고 컨설팅을 수행하는 유라시아 그룹의 데이비드 고든 부회장 겸 리서치센터장은 세계지식포럼 ‘다가오는 2013년, 거대한 위기’ 세션에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정치·경제 위협 요소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고든 부회장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시리아와 이란 등 중동 위기가 최대 이슈”라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분쟁으로 확대되고 있고 이란의 핵개발도 또 하나의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2007~2009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아래서 정책국장으로 일하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중동국가를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그는 “2013년 중동 위기는 불행히도 더 악화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배럴당 100달러라는 유가의 심리적 마지노선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1970년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오일쇼크가 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에너지 비용 상승은 곧 아시아의 성장률 둔화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원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도 대비해야 할 위협 요소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정권교체가 위협 요소로 꼽혔다. 그는 “시진핑이 집권하고 첫 6개월 동안 아주 큰 변화가 중국에 있을 전망”이라 말했다. 그는 “변혁기를 맞아 중국은 내부 변혁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국주의를 강조하고 다른 나라와의 갈등을 만들어 내부 불안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어난 아시아 영토분쟁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는 중국의 급부상이 아시아 정세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좋은 이웃나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훨씬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권리를 확고히 하려는 국가가 될 것이다(China was good neighbor over the last 10 years. but it will be more assertive country)”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는 “중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견제(Greater Check)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중일 영토분쟁과 중국-동남아 국가 간 영토분쟁에서 한중일의 갈등 관계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고 봤다. 그는 “중국이 지금 일본과 불장난을 하고 있듯 일본도 한국에 불장난을 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 상황이 상대를 극단까지 밀어붙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국 정치지도자들은 타협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한중일 3국이 역사적으로 볼 때 여러 번 갈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협력을 지속해 온 사례를 봐도 그렇다. 서로가 파멸하는 선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반면 중국과 동남아는 이보다는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봤다. 그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처럼 국력이 강해지는 국가가 나오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하는 발언도 들린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자유는 확산되지 못했다며 중국의 현 경제 모델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는 “중국 군부, 정당, 경제 엘리트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정보가 4억명의 사용자를 둔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Weibo)에 흘러나오고 있다”며 “중국의 계획경제는 현재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그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고든 부회장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부재한 현재는 G제로(0) 상태”라며 중국이 미국의 빈 공간을 메우기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미국과 중국의 투톱 체제인 G2가 아니라 누구도 세계를 리드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하지 않는 G0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될수록 중국 내부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자국주의가 팽배할 것도 염려했다.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고든 부회장은 “어느 정도의 양적완화는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양적완화는 사용하면 할수록 효과가 줄어든다”며 “양적완화(QE)의 E는 영원(Eternal) 즉, 무한대를 의미하는 E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완전히 고꾸라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는 “미국 정치인들은 차 안에서 서로 싸우는 부부다”라며 “차는 낭떠러지로 가고 있지만 브레이크도 있고 100미터 마다 한 번씩 낭떠러지가 있다고 경고하는 사인도 있기 때문에 부부가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여년간 국제 정세를 분석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한에 대해서도 몇 가지 코멘트를 했다. 김정은 체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화됐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심각한 도발이 없다고 북한이 안정화됐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김정일 정권 때도 조짐은 긍정적이었지만 실제는 그러지 않았던 때가 많다”며 개방성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희망에 기대를 거는 것은 좋지만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 정권은 개방된 모습을 보이다가도 다시 폐쇄되는 것을 반복했다. 또 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선후보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정책을 잇달아 내놓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서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벤치마킹 선례로 꼽았다.
데이비드 고든은 지금 몸담고 있는 유라시아그룹에 합류하기 전 10년 이상을 고위급 미국대내안보정책과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참여에 의견을 많이 냈으며 국제금융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략을 짜는 역할도 맡았다. 한때 미국 최고 정보기관인 CIA에서도 근무했던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백악관 내 정보기관에서 국제경제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유진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 사진 박상선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6호(201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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