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ina]부동산·호텔·영화관… 연매출 18조 지칠 줄 모르는 영역 확장 “세계가 좁다”

    입력 : 2012.11.12 11:21:07

  • 중국의 스타 CEO ⑤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그룹 회장
    사진설명
    중국에서는 대규모 복합쇼핑몰에 ‘꽝창(廣場)’이라는 이름을 많이 붙인다. 한자어만 놓고 보면 여의도 광장에 쓰이는 광장과 같은 말이지만 뜻은 전혀 다르게 사용된다. 굳이 번역하자면 영어의 ‘플라자(쇼핑센터)’에 가깝다. 중국의 수없이 많은 꽝창 중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바로 ‘완다꽝창(萬達廣場)’이다. 완다꽝창에 가면 백화점과 쇼핑몰, 호텔, 오피스텔, 고급아파트 등이 한 곳에 몰려 있다. 쇼핑과 식사를 한 후 문화와 오락까지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이런 완다꽝창이 현재 중국 내 49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부동산 면적이 총 903만㎡(약 273만평)인 점을 감안하면 한 곳당 면적이 평균 18만4000여㎡(약 5만6000평)에 달한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몰보다도 큰 규모다.

    완다꽝창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상업용 부동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꽝창 내에 들어선 시설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작은 신도시가 하나 새로 생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려들면서 신규 일자리가 어마어마하게 창출되는 것은 기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이 많이 걷히는 장점이 있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에서 완다꽝창은 중국식 경제 발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3대 부동산 기업 바로 이 완다꽝창을 성공시킨 사람이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그룹 회장(58)이다. 완다그룹은 완커, 헝다그룹과 함께 중국 3대 부동산 기업으로 꼽힌다.

    왕 회장의 보유자산 규모는 지난해 71억달러에서 올해 103억달러로 늘어나 중국 내 부호 2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6위에서 급상승한 것이다. 올 들어 중국 부동산 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자산이 급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그의 부동산 사업이 탄탄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왕 회장의 사업이 이처럼 탄탄한 것은 그가 단순히 부동산 개발 사업에만 매달리지 않은 덕분이다.

    완다그룹은 끊임없는 사업 확장으로 현재 완다꽝창 이외에 백화점 40개, 5성급 호텔 26개, 영화 상영관(스크린) 730개, 가라오케(K-TV) 45개를 보유하고 있다. 총자산 규모가 2200억위안(약 39조원), 연간 매출액이 1051억위안(약 18조6000억원)에 달한다. 연간 내는 세금만 163억위안(약 2조9000억원)에 달할 정도다.

    그는 지금도 변신 중이다. 지난 2008년에 뛰어든 레저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건설사에서 종합레저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4조원을 들여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에 대규모 복합 레저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기업도 바로 완다그룹이다. 완다그룹은 지난 7월 중국 최대 여행사인 셰청과 첨단 레저휴양시설 공동 개발을 위한 전략적 합작 계약을 체결했다. ‘지린성 창바이산 국제레저단지 프로젝트’가 바로 그 대상이다. 총 230억위안(약 4조원)이 투입되는 이 단지에는 하얏트와 힐튼, 웨스틴 등 고급 호텔과 함께 아시아 최대 규모 스키장이 들어선다. 완다그룹은 또한 베이징 동쪽의 퉁저우에 위치한 1㎢ 용지에 문화레저단지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200억위안이 투자될 이 단지는 문화와 레저, 쇼핑, 호텔 등 4개 테마로 구성될 예정이다. 호텔만 15개가 들어서는 이곳은 오는 2016년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나아가 왕 회장의 눈은 이미 나라 바깥을 향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진검승부를 벌여 글로벌 기업을 일구는 것이 그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해외시장 개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완다의 미래는 해외시장 개척에 있으며 건설업보다는 레저, 여행, 문화, 쇼핑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내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전부 희생해서라도 사업의 글로벌화에 매진하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그 작은 결실이 지난 5월에 이뤄졌다. 북미지역 양대 영화관 체인 중 하나인 AMC의 주식을 26억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어 추가로 5억달러 운영기금을 투입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설비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영화 체인 보유
    지난해 착공한 안후이성 우후시 징후 완다꽝창 조감도
    지난해 착공한 안후이성 우후시 징후 완다꽝창 조감도
    완다그룹은 이미 중국에 영화관 120개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북미지역 극장 346개가 더해짐으로써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을 보유한 체인으로 부상했다. 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영화시장의 20%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왕 회장의 원대한 목표다. 그는 러시아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완다그룹은 올 들어 러시아 카프카스 콘도그룹과 함께 총 투자액 25억~3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의향 협약서를 체결했다. 왕 회장은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를 방문해 투자지역을 직접 물색했다. 관광지와 레저단지, 쇼핑몰 등 개발 후보지를 찾기 위해서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캅카스 등도 주요 투자 대상지역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바이칼 호 인근을 먼저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왕 회장이 과거 바이칼 호에 대해 자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년 여름과 가을에 중국에서 바이칼 호가 있는 이르쿠츠크로 가는 비행기 좌석이 만원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호텔과 콘도 등 시설은 낙후돼 있어 문제”라고 말하곤 했다.

    세계적 부동산, 레저 사업가로 성장한 그는 사실 군인 출신이다.

    1954년 10월 쓰촨성에서 태어난 왕 회장은 15세 때 군에 입대해 선양군구에서 복무했다. 그가 일찍이 입대한 것은 중국공산당 대장정과 항일전쟁 때 군인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7년 17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다롄시 시강구 정부 판공실 주임으로 부임했다. 공무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때 장차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업무가 그에게 맡겨진다. 파산위기로 내몰린 시강구 산하 주택개발공사를 회생시키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1년 만에 공직을 박차고 나와 1988년 주택개발공사 경영을 직접 떠맡기로 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골칫거리 파산기업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걸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완다그룹은 그가 주택개발공사를 떠맡았던 이때를 창립일로 친다. 이후 1992년 회사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이름을 다롄완다그룹으로 바꿨다. 중국 최고의 부동산 기업가 탄생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어 1993년 3월 그는 다롄완다그룹지분유한공사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그가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밑거름 중 하나는 어려서부터 중국의 고전을 즐겨본 것이다. 군에 있을 때는 서예와 회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7언 절구’ 시를 좋아해 직접 짓기도 한다. 창의적 부동산 사업을 하는데 그의 문화적 소양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왕 회장이 사업 초기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초기 랴오닝성 선양에서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가 무려 222차례나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초기 실패를 딛고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직접적 배경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냈다는 데 있다.

    직원 중시 행복지수 높은 기업 그는 중국의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소득이 늘어날 경우 중국인들이 무엇을 선호할 것인지 제대로 파악했다. 일반 부동산 기업이 상업용 건물을 지은 뒤 팔아먹거나 아니면 임대 수익을 올리는 데 급급해 했지만 왕 회장은 생각이 달랐다.

    과거 상업용 부동산과 차별화되는 기능과 구조를 가진 새로운 부동산 상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완다그룹의 이런 전략은 지방정부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지역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 지방정부 입장에서 완다그룹의 전략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완다그룹은 기존 도심지에 진출하는 방식을 지양하는 대신 앞으로 발전할 지역을 미리 탐색해 선점해 들어가는 방법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왕 회장은 “기업은 반드시 추세를 정확히 따라가야 하며 역행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필요할 경우 다국적 기업의 문도 서슴없이 두드렸다. 지난 2002년 완다그룹은 새로운 상업용 건물을 지으면서 글로벌 기업과 합작을 추진했다. 미국의 월마트 문을 수없이 두드렸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줄기차게 매달려 결국 합작을 성사시켰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

    왕 회장은 국영기업은 하지 않으려 하고, 민영기업은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영기업은 능력과 인재가 없어서 못하고, 민영기업은 투자 규모가 커서 엄두를 못내는 사업에 뛰어들어 좋은 결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사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정부 협조를 최대한 끌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왕 회장은 직원 중시 경영으로도 존경을 받는다. 그는 “일할 맛이 나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완다그룹 직원 연봉이 세계 500대 기업 평균과 맞먹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완다는 행복지수가 높은 기업으로도 꼽힌다. 중국 기업 최초로 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직원 전용 헬스클럽은 기본에 속한다.

    그러나 회사 업무에 관해선 누구보다도 철저하다. 부동산 기업이면서도 건설과 투자보다 관리를 더 중시할 정도다. 영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해결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얼마 전 랴오닝성 선양시의 새 완다꽝창이 개점 반년 만에 상가의 20%가 문을 닫는 일이 발생했다. 왕 회장은 이에 비상을 걸어 설계팀과 관리팀, 영업팀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총동원해 10여 차례 이상 회의를 갖도록 했다. 자신은 물론 부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들도 3~4차례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결국 상가 배치가 잘못됐다는 원인을 파악하고 곧바로 보완조치를 취했고 1년 만에 상가 영업은 완전히 정상 회복했다.

    그가 업무 표준화와 정보화를 중시하는 것도 철저한 성격에서 나왔다. 완다그룹은 임대와 안전, 재무, 사업 관리 등 모든 업무를 표준화하고 있다. 정보화 수준도 최첨단을 달린다. 새로 입사한 직원도 곧바로 업무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방침이다. 왕 회장은 마음이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자선가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0년에는 12억8000만위안을 기부해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중국 내 기부 기업인 1위에 올랐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으로 중화자선상을 받기도 했다.

    (왼쪽) 산둥성 칭다오 완다꽝창, (오른쪽)최근 인수한 북미지역 영화 체인 AMC
    (왼쪽) 산둥성 칭다오 완다꽝창, (오른쪽)최근 인수한 북미지역 영화 체인 AMC
    업계 이익 발 벗고 나서 그는 정치인으로서도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중국공산당을 대표하는 17기 대표 2200여명 중 한 명이자 정협(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서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중국기업연합회와 중국부동산업협회 부회장으로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3월 개최된 양회(전인대·정협) 때는 정부 부동산 규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 호응을 얻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보장성 주택을 건설하면서 저소득층 주거 문제는 다소 해소됐지만 도시인구 중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은 상대적으로 외면 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합리적인 주택 구매 수요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서 해외로 빠져 나가는 부자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중국 부유층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는 현상은 옳지 않으며 국가 발전에도 큰 손실”이라고 꼬집었다.

    왕 회장은 실제로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일부 부자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취미생활조차 없다. 골프도 치지 않는다. 일상생활도 규칙적이어서 오전 7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관련 스캔들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보시라이가 다롄시장을 역임했던 것과 연계돼 그도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왕 회장이 보시라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회사 측에서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완다그룹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뇌물을 금지한다는 경영원칙을 시종일관 지켜왔다”며 “중국 전역에서 업무상 관계를 맺은 1000여명의 관료들 중 많은 사람이 부정부패로 조사를 받았지만 완다그룹은 단 한 번도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6호(201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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