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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힐링 전도사 이시형 박사 "더 벌려고 아등바등 마세요 이젠 우아한 하산을 준비할 때죠"
입력 : 2012.08.06 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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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365일 연중무휴로 하루 열다섯 시간을 일해도 40년간 몸살 한 번 앓아본 적 없다는 청년 이시형에게 만남을 청했다.
자신을 ‘58년 개띠’라고 소개한 이 박사는 “지금 이 시기에는 모든 이들이 힐링할 수밖에 없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의 답변엔 대한민국이 목도한 문제점이 하나 둘 불거져 나왔다.
힐링할 수밖에 없는 시기?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격정의 시대를 살아왔다. 힐링은 그에 대한 당연한 반향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빠른 변화가 있던 곳이 있었나. 지금이야말로 힐링하며 다듬어야 한다. 안 그러면 폭발하거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한계점이다. 힐링을 논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어떤 세대가 가장 심각한가. 아니지. 세대마다 고민이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경쟁이 시작되지 않나. 늙었다고 그 경쟁이 없어지나. 이젠 100세 시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서지. 그 많은 고민을 해결하고 풀어나가려니 대한민국 사회의 앞이 불투명하다. 우리만 그런가. 전 세계가 업보다 다운이고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우린 이제부터라도 하산을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 힐링의 기본은 하산이다.
지금은 하산할 준비를 해야 할 시기다 하산? 어디로부터의 하산인가.이시형 박사가 새로 출간될 책 <이시형 박사의 트리밍 노트>를 탈고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저성장하는 시대에 그 저성장마저 마감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하고 있다. 올라갈 땐 아등바등 올라가지만 내려올 땐 우아하게 내려와야 한다. 내려올 때 서두르면 다치거든. 그렇게 다치면 다시 서기 어렵다.
힐링의 첫 단계가 하산의 첫걸음이다? 생각해보자고. 대한민국의 경제가 전 세계 10위권이다. 폐허에서 출발해 10위권이라니. 이미 정상 아닌가. 정상에 섰으면 그 여유를 즐길 자격도 있고 권리도 있다. 그런데 더 올라가야 한다고 부추겨. 올라가는 걸 반대하진 않지만 숨 가쁘게 아웅다웅하면서 싸우고 부정을 저지르고 발버둥 쳐야 하나. 정상권에 들어선 순간 내려갈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마음이 차분해야지. 그래야 제대로 즐기며 내려올 수 있다. 지금까지 뛰고 생각했다면 이젠 생각하고 뛰어야 한다.
하산 채비의 걸림돌은 무엇인가. 인식의 문제다. 지금 우린 중산층이 사라졌다. 난 제발 경제주체들이 양극화라는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중산층이 있긴 있거든. 그런데 그들이 자신을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생각에 상층에 몇 사람 있지. 몇몇 재벌과 비교한다. 그리고 자긴 바닥이라니 이건 잘못됐다.
우리가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할 때 GNP가 4400달러였다. 그때는 국민의 70%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GNP가 다섯 배나 뛰었거든. 그런데 국민의 70%가 바닥이란다. 경제규모가 5배나 불었는데 바닥이라니. 이건 정치, 경제, 사회권 모두의 책임이다.
해결책이 있다면. 우선 마음을 다스려야지. 경제주체나 사회리더가 외적인 성장만 강조해선 안 된다. 이젠 지도자가 현 실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만큼 올라섰고 이젠 하산할지도 모른다는 걸 솔직히 얘기할 수 있어야지. 무조건 달리는 시대가 끝났다는 걸 진솔하게 얘기해야지.
일반 대중이 가져야 할 덕목도 있을 텐데.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제각각이거든. 그 능력이 분수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래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성공이지. 그게 자기 분수다.
그런데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실력은 안 되는데 대접을 받아야겠다니. 그건 욕심이지. 그럼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분수가 모자람을 알고 마음을 다듬어야 사회가 편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국격도 말이 아니다.
국격에 대해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100원이면 미국산과 일본산이 149원, 독일산이 156원을 받는단다. 이게 코트라가 발표한 한국산의 국제시장 가격이다. 이걸 보고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프랑스산 화장품은 아무리 비싸도 손이 가는데 국산이 비슷한 가격이면 비싸다는 생각이 앞선다니. 그 마음으로 TV를 보는데 국회가 아수라장이더라고. 국회는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곳이 아닌가. 다수결로 표결해서 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당장 엉키고 다투고 왜 그리 막말들은 많이 하는지. TV만 켜면 싸우는 나라의 물건을 누가 사겠나. 또 하나 민족적인 열등감이나 패배감이 심각하다. 일본의 한세대에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일본만큼 악랄한 정책을 편 나라가 없다. 너희들은 게으르고 형편없고 무식하다고 주입했다. 우리가 철도라도 놔준 것 아니냐고 지금도 망발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다. 우린 이미 강국이고 세계 리더인데 누가 도와주겠지 한다. 이런 게 남아있으면 자존감이 생길 수 없다.
안철수는 영웅, 대통령 안철수도 영웅일까? 어느 분야의 변화가 가장 시급한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치인, 국회의원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막말을 삼가야 한다. 우리 국회는 너무 감정적이고 격하다. 그들부터 힐링해야 한다. 여기 좀 불러서 훈련 좀 시켰으면 좋겠다.(웃음)
올해는 특히 정치권이 시끄러울 텐데. 눈 여겨 보는 인물이 있나. 요즘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은 말을 상당히 자제하더라고. 하지만 아쉽지. 과거에 흠이 있다면 스스로 나오지 말아야지. 도덕이 무너졌다. 죄가 있거나 의심스럽다면 대놓고 물어볼 수 있어야지. 여러 인물들이 많은 이야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난 공개적으로 안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는 지금의 안철수로 남아 있는 게 가장 영웅적이다.
잘할 수 있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노력하는 게 애국 아닌가. 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게 비례대표더라고. 한 번 하면 좀처럼 정치를 이어가는 분들이 없다.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아 비례대표가 된 것인데 정작 그 기간에 전문분야를 소홀히 하게 되니 마이너스 아닌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나. 일면식은 있지. 존경하고 아낀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에겐 영웅이 필요하다. 지금의 위치에서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만은 정치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똑똑한 김동길 교수도 정치판에서 어떻게 됐나.
정치계의 제의도 많았을 것 같은데. 선거 때마다 캠프가 차려지면 비례대표나 장관을 제의하면서 연락들이 왔는데 내가 그 판에 들어갔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라도 하고 있겠나. 한 번도 흔들려 본 적 없다. 본분을 다하고 의사에 충실하는 것, 그게 애국이지.
장관직 제의? 선거 때면 연설 한 번 해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저곳에서 강연도 하고 방송에도 나가는데 뚜렷한 정치적 욕심이 없으니 이 사람이다 싶었겠지.(웃음) 캠프만 차려지면 슬쩍 한자리 제안하면서 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부탁한다. 안철수, 너는 영웅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재벌은 풀 수 없는 딜레마 기업문화도 요즘 화두 중 하나인데.
당신의 힐링 비결이 궁금하다. 난 드라마를 못 본다. 신경질 버럭 내고 다니는 주인공들이 허다하거든. 사람이 성을 내면 본디 점점 화가 더 올라간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아침부터 보고 있으니.(웃음) 난 요즘 트리밍, ‘다듬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 세대는 오직 생존을 위해서 돌격 앞으로 외통수였다. 나도 40대 후반에 무릎과 허리 등에 문제가 왔다. 너무 아파서 서 있을 수도 없었지. 그때 동(動)에서 정(靜)으로 생활로 옮겨왔다. 마음도 다듬고 생활도 다듬고 몸도 다듬었다.그것만 다듬으면 120세까지 튼튼하게 살 수 있다. 아팠던 무릎은 날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내 몸을 건강하게 해야지. 난 지금도 어디 가서 58년 개띠라고 사기치고 다닌다.(웃음)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3호(2012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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