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유럽은 너무 오랫동안 호의호식했다

    입력 : 2012.07.09 17:28:56

  • 사진설명
    “유럽 국가들은 너무 오랫동안 호의호식해 왔다.” 지난 5월 중순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경제에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던 때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어느 중국 유명인사가 던진 말이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의 진리췬 감독이사회 의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중국 재정부 부부장(차관) 출신인 진 의장은 이날 어느 금융인포럼에서 “지나친 복지가 게으름과 복지 남용을 초래했다”며 유럽인들을 질타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하고 일주일가량이 지난 이즈음 유럽에선 ‘긴축이냐, 성장이냐’를 가장 큰 논쟁거리로 삼고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부터 긴축정책에 비난을 퍼부으며 “성장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장은 프랑스 국민들뿐 아니라 긴축정책으로 고통 받던 유럽 각국의 정치인이나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사실 유럽 재정위기 초기만 하더라도 해법은 비교적 간단해 보였다. 국가 부채가 너무 많아서 생긴 위기이니 국가 부채를 줄이면 위기는 해결되기 마련이다. 즉 정부 씀씀이를 줄이는 긴축정책을 펼치면 된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긴축정책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이유다.

    그런데 막상 긴축정책을 펼쳐보니 그 고통이 만만치 않다. 경기가 더 위축되면서 실업자가 늘어났고 세수도 오히려 줄어드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그러다 보니 “다시 성장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유럽이 우왕좌왕하게 됐다.

    바로 이런 때에 진리췬 의장의 발언은 “당신들이 과연 호의호식할 자격이 있느냐”고 준엄하게 꾸짖는 듯하다.

    유럽 정치인들이 ‘성장이냐, 긴축이냐’를 따지고 있는 그 순간 국채 투자자 즉 채권자들은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 돈을 갚으려면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러려면 남들보다 더 창조적으로 일하거나 더 오랫동안 일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국민들은 나라 빚으로 호의호식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긴축정책이든 성장정책이든 그 어느 것도 통하지 않는다. “돈을 더 풀어 생산을 확대해 보자”며 성장정책을 동원했다가는 빚만 더 늘어날 뿐이다.

    산업혁명 이후 250년 동안 세계를 호령하며 부잣집 행세를 해온 유럽. 배고픔의 고통을 잊고 돈쓰는 재미에만 빠져든 그들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쓰러지고 있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富不三代)’는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최근 2년 동안 생산된 정보의 량이 인류역사 이래 생산된 정보의 량보다 더 많다고 할 정도다.

    이제 불과 몇 십년 동안 먹고 살만해진 한국. 그럼에도 배고픔의 고통을 모르는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등지의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지도 제법 오래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싫다”며 배척한 일들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한국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당신들이 호의호식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오”하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우린 이런 경쟁력을 가졌기 때문이지”라고 당당하게 답변할 수 없게 될 때 위기의 칼끝은 곧바로 한국을 겨냥할 것이다. 유럽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최경선 매일경제 국제부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