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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 Policy] 이젠 대선… 경제 살릴 묘수를 짜내라
입력 : 2012.05.04 13: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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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책 압박 수위 높아진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를 함으로써 대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른바 ‘경제 민주화’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오히려 연말 대선까지는 대기업 압박의 강도를 더해갈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대 국회에서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변수가 등장했다. 야권연대를 계기로 ‘재벌 해체’ 등 극단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아 왔던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여야 간 온도차가 있지만 야당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규제, 지주회사 행위규제, 대기업 사업영역 제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등의 대기업 정책을 공언해 놓은 상태다. 특히 의석수를 대폭 늘린 민주통합당은 19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순환출자 금지 등을 입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실효성 논란을 빚기도 했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에 대해서는 ‘상징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드러내는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대기업 입장에서 더 큰 골칫거리는 순환출자 규제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롯데 등 대부분의 대그룹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는 상호주식 취득 및 소유가 금지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3개 이상의 계열사를 연결해 순환 투자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사실상의 상호출자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새누리당이 대기업 편에 서줄지의 여부다. ‘재벌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양극화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새누리당으로서는 대기업 편들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기업 압박에 힘을 보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친족회사 내부거래 정기 직권조사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사업영역 진출 방지 △대기업 임원 및 지배주주 일가의 사면권 억제를 공약해 놓은 상태다. 새누리당도 방향성만큼은 ‘대기업 보호’ 보다 ‘대기업 견제’ 쪽에 있는 것이다.
세금 부자증세, 꺼지지 않은 이슈
민주통합당은 법인세 중간·최고 세율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과표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는 20%, 200억원 초과는 22%의 법인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이를 각각 22%, 25%로 높여 세수를 늘리겠다는 주장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장내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증권거래세를 새로 부과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현행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내린다는 방침이다.
이에 비해 새누리당은 소득세, 법인세의 증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4·11 총선 승리를 이끌어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박근혜노믹스’도 ‘복지는 확대하되 증세를 최소화한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 하향조정은 새누리당의 공약사항이다. 따라서 금융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는 불가피해 보인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을 2015년까지 현행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또 대주주에 대한 주식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하는 공약도 내놨다.
세금제도와 관련해서는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 입장은 미묘하다. 일단 정부는 증세 기조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복지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한 수준의 증세는 정부로서도 싫지 않은 카드다. 증세 문제와 관련한 여당-야당-정부 간 격돌은 오는 8월 초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세제개편안에서부터 본격화 될 전망이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 마련될 듯 대선을 치러야 하는 집권여당으로서 부동산 경기 부양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경기를 띄워 민심을 빨아들이는 효과도 높지만, 자칫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투기열풍으로 이어지면 정권을 뿌리부터 흔드는 악재가 된다. 그래서 여야 모두 4·11 총선 전까지는 부동산 경기 부양보다는 서민들의 주거복지 확대에 집중했다.
하지만 조금씩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주택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시장은 ‘거래 부진’을 넘어서 ‘거래 실종’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 부동산 거래 부진은 중개, 이사, 도배 장판, 인테리어 시장을 고사시켜 내수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부동산 세수가 심각한 수준으로 감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정부가 거래 활성화 쪽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극도로 위축된 부동산 시장이 민생문제로 번지고 있는 만큼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는 논리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 거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며 총선 전부터 불을 지펴놓은 상태다.
정부는 우선 지난해 말 12·7 부동산 대책을 통해 발표했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재건축 부담금 부과 중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시행 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는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새누리당이 천군만마(千軍萬馬)와도 같다. 국회에 묶여있던 각종 부동산 대책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 등의 경우에는 정치권의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려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상태였다.
또 서울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도 적극 검토될 전망이다. 그러나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됐던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DTI의 경우 가계부채 문제와 직결돼 있는 만큼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총선 전에 여야가 한목소리로 도입 방침을 밝혔던 전월세 상한제는 이르면 올해 안에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전월세 상한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공통적으로 내세웠던 공약이었다.
한편 4·11 총선의 영향으로 새누리당이 싹쓸이한 서울 강남권에선 재건축 이슈가, 민주통합당이 극명한 우세를 보인 서울 강북지역에선 뉴타운 출구전략이 지역 현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복지 연말 대선을 향한 진검승부
따라서 당장 내년 예산을 정하는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양육비 지원 확대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은 이와 별도로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20대 표심을 잡기 위한 ‘반값 등록금’은 여야 간 치열한 각축을 예고하는 이슈다.
민주통합당은 대학 구조조정과 내국세의 4%를 재원으로 하는 고등교육 재정교부금을 통해 소요 예산 5조7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새누리당은 단계적인 등록금 인하가 바람직하다며 ‘반값 등록금’에 회의적이지만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도권 20대로부터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한 새누리당이 대선 국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 밖에 노인 표심을 겨냥한 기초노령연금제 확대 방안도 구체화 될 전망이다. 여야가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육 이슈가 정리되면 정치권의 관심은 노인들의 표심잡기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민주통합당은 연간 예산 2조9000억원을 추가 투입해 현재 월 9만원 수준인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을 20만원까지 올리고, 수혜 대상을 전체 노인인구의 70%에서 80%까지 높이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후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고, 연간 최대 70만원 한도 내에서 노인근로장려세제(EITC)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물가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승부수 이명박 정부에 4·11 총선은 아찔한 기사회생(起死回生·죽을 뻔하다 살아남)의 기억이었다. 올해 초만 해도 100석도 어려울 것으로 봤던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선거에 이겼다고 민심이반의 원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바짝 긴장하자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일관된 주문이다. 민심안정의 열쇠는 물가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민심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물가 급등이 핵심적인 이유”라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만큼은 잡겠다는 정책의지가 충만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산서민층의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 치는데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생활고가 가중됐다”며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경제 살리기’를 모토로 삼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정부는 4·11 총선이 끝나자마자 물가 고삐를 다잡기 시작했다. 총선 직후 가격 인상 러시를 미리 차단하고 나선 셈이다.
이 대통령은 총선 이틀 만인 4월 13일 청와대에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기름값, 약값, 통신비, 배추를 포함한 농축산물 가격, 공공요금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물가 불안 요인을 점검해서 물가 오름세 심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서민 물가의 구조적 안정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물가 안정 = 정부 지지율 유지’라는 판단 아래 임기 마지막까지 물가안정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독과점 상품에 대한 담합 조사를 강화해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독과점 상품의 경우 시장에서 비정형적인 담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 대통령이 4월 13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유가가 너무 많이 올라 있는 상황이다. 혹시 공급이 과점형태여서 이런 일이 계속되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진우 매일경제 경제부 차장 사진 이충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0호(2012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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