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untry Report] 이란, 중동의 맹주? 중동전 화약고?
입력 : 2012.03.23 13:21:49
-
환율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면서 이란은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국가로 오명을 날리고 있는 짐바브웨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발표되는 숫자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높은 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이란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지난 2008년 25.6%, 2009년 13.5%라고 밝힌 바 있다. 코트라는 이란중앙은행이 지난해 물가상승률을 11.8%로 예상했다고 전했으나 이런 수치는 이미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최근 테헤란 시민들이 직접 느끼는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란 게 현지 소식통의 전언이다. 미국 등 서방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수입물가가 폭등해 최근 몇 달 새 쌀이나 빵, 식용유, 고기 등 식료품 가격이 2배 이상 뛰었다는 것.
이미 세계의 팜유 공장 격인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가 같은 이슬람국가인 이란에 대한 팜유 수출을 중단해 가격 폭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 거래 상대국이 이란의 석유 판매 수입 감소와 미국의 제재를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어 갈수록 이란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전부터 이란산 석유를 대량으로 수입하던 중국은 올해 들어 유가 인하를 요구하며 수입량을 절반 정도로 축소했고 인도는 미국의 압력에 따라 대이란 무역 지불 시스템을 정지시킨 바 있다. 이 때문에 인도에선 석유 수입 대금의 절반가량을 루피화로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외화 유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관련국들은 점점 대이란 수출을 기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 경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제재로 GDP가 10%가량 감소하더라도 이란으로선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만큼 경제 체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이란이 석유나 수출 의존도를 상당히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석유·가스 수출은 1030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78%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석유·가스 수출이 이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 내외인데다 이란 석유 수출의 34%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가 서방의 금수조치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기에 타격이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의 개리 허프바우어 연구원은 금수조치가 진행되는 동안 이란의 전체 석유·가스 판매가 10% 정도 감소하고 또 판매 단가가 10% 정도 할인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란의 전체 수출 감소는 24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00년대 들어선 원유를 싸게 수출하는 데서 탈피하려고 석유화학 투자를 늘림에 따라 현재 매년 85억 달러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해 이 가운데 55억 달러 정도를 수출한다는 게 코트라의 분석이다. 이런 노력으로 매년 꾸준히 무역 흑자를 내온 덕분에 이란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2010년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밝힌 바 있다. 이란 상공회의소는 이와 별도로 이란의 금보유량이 907t에 달한다고 밝혔는데 한국이 겨우 14t의 금을 보유하다 최근 각계의 비난이 빗발치자 억지로 물량을 늘리기로 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무역금융조차 원활하지 않자 최근엔 대규모 금을 내세워 물물교환 형태로 곡물을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이란이 계속 서방의 압력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직접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건전한 재정과 대규모 외환 보유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신용도는 B등급에 머물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잠수함.
이란이 중동의 맹주를 지향하는 데는 정치나 종교 역사상의 특성도 깔려있다. 이란의 정치체제는 최고지도부 밑에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있는 독특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대선에서 선거의 공정성 문제로 정국이 불안해졌으나 최고지도자의 한마디에 잠잠해진 바 있다. 그 같은 권위를 가진 최고지도부가 국가의 큰 틀을 결정하는 체제라 국민적 단합을 유도하기 위해 힘을 과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이란은 종교적으로 사우디나 이라크와 경쟁 관계에 있어 이슬람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적극 지지해왔다. 이는 자연히 반 이스라엘 정책으로 나타났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종종 이스라엘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을 해왔다.
이런 이란의 자세는 외교정책 1번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꼽고 있는 미국 정치권을 자극했고 결국 핵무기 개발 억제를 명목으로 대이란 경제 제재를 단행하는 데에 이르렀다. 이란 과학자들에 대한 테러가 이스라엘측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정치관계는 이란으로 하여금 과학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데서 나타났듯이 이란은 이미 과학기술 부문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무인 스파이 정찰기를 유도해 강제 착륙시켰던 이란은 2월 초엔 정찰용 위성을 지구 궤도에 쏘아올린 바 있다.
이란이 강제 착륙시킨 미국 무인정찰기 드론.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때 사우디가 핵무기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답을 듣기 전에 먼저 이란-이라크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지난 1980년 9월22일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군에 이란 공격을 명령했다. 당시 이란은 팔레비 국왕이 권좌에서 쫓겨나고 혁명 정부가 들어서 어수선할 때였다. 이라크 정예군은 단시일 내에 이란을 제압할 것으로 생각해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채 진군했다. 1차 목표는 샤트알아랍 강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다음 목표는 이란의 혁명정권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이 전쟁의 발발은 사실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나라는 후세인과 팔레비 이란 국왕이 만나 양국 사이를 가로질러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드는 샤트알아랍 수로의 지배권과 호르무즈 해협 3개 도서의 지배권을 이라크가 갖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새로 정권을 잡은 이란 혁명정부가 3개 도서의 지배권을 환수하고 샤트알아랍 수로의 중간선을 국경으로 한다고 선언하자 이라크가 공격에 나선 것이다.
후세인은 전쟁을 조기에 승리로 종결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란 혁명정부는 재빨리 정국을 안정시키고 반격에 나서 오히려 이라크군을 패퇴시켰다. 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인식한 후세인은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으나 이란은 공세를 늦추지 않아 전쟁은 1988년까지 이어져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500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 전쟁의 명분은 국경싸움이지만 사실 그 이면엔 인종과 종교 갈등이 내재돼 있다. 같은 이슬람교 국가라고는 하지만 사우디나 이라크 등은 아랍인이 지배하는 나라인 반면, 이란은 페르시아인이 지배하고 있다. 페르시아인은 카스피해 연안에서 이주해온 아리안족에 속하는데 반해 아랍인은 셈족이므로 종족이 다른 것이다.
종교 또한 같은 이슬람교라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다르다. 두 종파는 아주 오랜 역사적 원한을 이어오고 있다. 이슬람의 교조 무함마드는 후손 없이 서거했는데 이후 칼리프가 선출돼 법통을 이어온 게 수니파의 계보이다. 반면 무함마드의 혈족만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며 사위 알리가 갈라져 나와 새로 형성한 게 시아파다. 이후 알리의 손자인 후세인이 이슬람 패권 전쟁의 와중에 무참하게 살해되면서 두 종파는 영원히 척을 지게 됐다.
현재 수니파는 사우디의 지배 세력이며 이라크에선 수니파와 시아파가 혼재돼 있고 이란은 시아파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칼리프는 이슬람 신앙의 수호자를 칭하는데 이 계보는 현재 사우디 왕가로 이어진다. 이런 종교적 대립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우디가 이란 전투기를 격추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한편 아랍연맹(Arab League)엔 현재 이라크나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예멘,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이집트나 튀니지, 알제리, 수단, 소말리아까지 들어가 있지만 이란은 들어가지 않았다.
[정진건 기자 boran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8호(2012년 0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