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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초보 임원의 첫 걸음…운전기사와 비서를 관리하라
입력 : 2012.01.26 15: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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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한 달 길게는 평생 충성 한 언론사 J부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길 건너 국시집에서 해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신선한 재료를 듬뿍 넣고 같은 맛을 유지하는 국시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대체 비결이 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재미있는 답이 돌아왔다. 이 집 국수 맛의 비밀은 손맛이 아니라 사장의 정성 때문이라는 것. 시흥시에 살고 있는 사장은 매일 새벽 하남시로 차를 몰아 그곳에 사는 주방장을 태워 함께 출근하고 있었다. 하남에 사는 주방장이 서울 시내로 출근하는 게 쉽지 않자 사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별다른 말없이 ‘당신이 이만큼이나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행동으로 표현하자 주방장도 스스로 식자재를 철저히 관리하고 맛을 내 손님이 몰린다는 얘기였다. 임원들과 매일 마주하고 그들의 일과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이들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가 담당 운전기사와 비서다. 임원의 업무 진행에 있어 운전기사, 비서와의 관계가 얼마나 긴밀하고 중요한지는 경제사를 놓고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측근 인사 중에는 초대 운전기사 위대식 씨가 있다. 훗날 삼성그룹의 이사급 운전기사가 돼 화제가 된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 회장은 부산 출장 중이었고 가족들은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했다. 그 때 이 회장의 가족을 지금의 송파구 쪽으로 피신시키고 보살핀 이가 운전기사였던 위대식 씨다. 자전거로 서울에서 삼성물산 창고가 있는 인천까지 오갈 만큼 성실했던 위씨는 인민군이 지키고 있던 창고에서 뇌물을 주고 약간의 물건을 빼와 그걸 암시장에서 돈으로 바꿔 이 회장에게 가져왔다. 목숨을 내건 행동이었다. 그 돈은 임직원들이 피난을 떠날 때 요긴하게 사용됐다고 한다.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상담역(전 사장)과 운전기사 김봉열 씨의 인연도 CEO들 사이에선 회자되는 관계다. 1978년 당시 호텔신라 운전기사였던 김씨는 허태학 총무과장의 업무용 차량을 몰기 시작했다. 호텔을 짓기 시작할 무렵인 그 시절엔 업무가 워낙 많아 총무과장에게도 전용차가 나왔다. 호텔신라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중앙개발(삼성에버랜드)를 거쳐 삼성석유화학으로 약 30여 년간 이어졌다. 김씨는 허 사장에 대해 “의리 있는 분, 한번 믿고 맡기면 끝까지 함께하는 성격”이라고 이야기한다. 허 사장은 직원들과의 원만한 리더십을 꼽을 때 주저 없이 ‘관심’, ‘배려’, ‘칭찬’, ‘격려’를 꼽는다. 윗사람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조직의 상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연 외에 한 달이 멀다하고 운전기사와 비서가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 운전기사 전문채용업체 대표는 “기사를 단순히 일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임원을 만나면 시장가는 일부터 아이들 학교 등교, 기타 잡다한 청소나 건물관리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는 단 일주일도 못 버티고 기사가 교체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운전기사 입장에선 일중독인 임원도 달갑지 않다. 운전기사 채용업계에서 요주의 인물은 ‘월화수목금금금’인 임원. 직원의 사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임원은 자신의 사생활도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성공 CEO 가라사대
“수행기사의 혀끝에서 성공은 시작되나니”
“전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입니다. 주말과 휴일도 없이 새벽까지 근무해도 수당은 쥐꼬리만 합니다. 간혹 옷 심부름을 가면 사모님이 수고한다고 금일봉을 주시더군요. 챙겨주시는 분이 묻는 말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1년 여 기간 동안 상무님을 모셨지만 식사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제게 욕하시려고요? 저보다 더한 놈 천집니다. 어디서 어떤 이유로 외박했는지 꼬투리 잡고 협박하는 기사가 한둘인 줄 아세요. 전 그저 사모님 묻는 말에 답했을 뿐입니다.”
Case 2 깐깐하기로 소문난 임원, 약속시간엔 왜? 사내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Y이사는 영업부서를 담당한 탓에 상무급부터 지원되는 차량을 지급받았다. 국내외 바이어와의 약속과 계약이 많아 직접 운전하고 다니기 쉽지 않다는 걸 위에서 알고 배려해준 것이다. Y이사는 회사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에 매진했다. 영업사원에게 지급되는 영업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쓰였는지 100원짜리 하나까지 체크해가며 더 깐깐하게 영업일지를 요구했고 자신도 타당한 근거가 있을 때만 법인카드를 쓰며 단 한 푼도 회사 돈을 축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부원들의 원성이 높았지만 실적 유지에 어느 정도 보탬이 돼 현 상황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는 수행기사에게도 이러한 요구는 마찬가지. 부를 때 왜 즉시 보이지 않았는지 어디 가서 뭘 하다 이제 왔는지, 출근 때는 주유계가 한 칸만 줄었는데 점심 약속 때는 왜 두 칸이나 줄었는지 단 한 가지도 참지 못하고 몰아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무려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Y이사는 수행기사에게 단 한마디도 못하고 약속 장소로 뛰어 올라가야만 했다. 꽉 막힌 교통체증에 이리저리 골목길을 내달린 수행기사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어 달 동안 예닐곱번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나서야 Y이사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 있을 때만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골목길까지 찾아들어가야 하는지 길눈이 어두운 Y이사도 이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늘 지적받던 수행기사가 영업사원들과 짜고 일부러 막히는 길만 골라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한 것. “왜 늦느냐”는 사장의 불호령이 떨어진 후에야 부서원 대다수가 참여한 모의란 걸 알게 된 Y이사는 이후 깐깐함을 버렸다. 모의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기보다 모른 척 넘어가며 슬쩍 풀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은연중에 수행기사에게 ‘당신은 내 사람이니 앞으로 같이 가자’고 에둘러 표현했다. 변화에 대한 효과는 3개월 후부터 나타났다. Y이사는 깐깐함을 버린 대신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고 늘 되뇌고 있다.
Case 3 네 이웃의 수행기사를 탐하라 중견기업 상무로 승진한 B상무는 라이벌사 C이사와 늘 비교되는 인물이다. 다루는 제품도 같고 하는 일도 비슷하다보니 업계는 물론이요 중요한 계약에서도 번번이 부딪치는 인물이다. C이사 얘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B상무. 어느 날 사내에서도 몇 알지 못하는 비즈니스 미팅 현장에서 우연히 C이사와 마주치곤 화들짝 놀랐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바이어와 계약만 성사되면 상반기 매출이 확보되는 중요한 순간에 라이벌사의 능구렁이를 만난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저도 이곳에서 약속이 있는데, 이곳은 갈비찜이 일품이더군요”라며 옆방으로 들어서는 C이사. B상무는 이후 두어번 더 같은 바이어와 약속을 잡으면 어김없이 모습을 보이는 C이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40대 중반을 넘어선 수행기사가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
“그분, 잘 아는 분 아니셨습니까. 늘 제게도 잘해주셔서 친하신 분인 줄 알고 그 쪽 수행기사가 물으면 장소가 어딘지 답해줬는데요. 이거 어쩌죠….”
B상무가 파악한 C이사의 행동은 이랬다. C이사는 조찬모임이나 업계 행사 등이 있을 때마다 B상무의 수행기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끔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때는 자신의 수행기사를 시켜 선물을 챙겨줬다. B상무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C이사를 탐탁치 않아 한 걸 수행기사가 몰랐던 것이다. 자신이 당한 상황을 사내에 적용하자 B상무의 눈에 F전무가 들어왔다. B상무는 그날 이후 늘 부사장과 사장의 수행기사를 챙기는 F전무가 우연히 골프장에서 사장과 마주치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수행비서 가라사대
“성공 CEO는 매무새부터 다르나니”
Case 2 자넨 왜 늘 그 모양인가? 중견기업 영업부서의 정 이사는 요즘 직장생활이 죽을 맛이다. 직속 상사인 김 사장이 보고 때마다 얼마나 꼬투리를 잡는지 작성된 보고서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마다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다. 반면 옆 부서 양 이사는 자신과 정반대의 상황. 아침, 점심, 저녁 가릴 것 없이 사장 방에 들어가 보고만 하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오곤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고민하던 정 이사. 사장 앞에만 서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어느 날 그런 정 이사에게 수행비서가 할 말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얘기가 끝나자 정 이사는 재빨리 전화부터 집어들었다.
“이사님,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올 거예요. 두 달 전 사장님 비서실에 달려가 한바탕하고 오신 적 있잖아요. 왜 사장님 미팅시간을 그렇게 뒤로 잡아 놓느냐고 윽박지르면서. 비서에게 막 대하는 간부 물 먹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장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면담이나 결재시간을 잡아주면 그만이에요. 칭찬보다 꾸지람이 많은 건 당연한 이치겠죠. 비서는 모시는 분 얼굴만 보면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어요.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말씀입니다.”
Case 3 부하 직원 관리는 처음부터 중소기업 CEO인 G사장은 회사 규모가 커지고 매출액이 늘자 수행기사와 비서를 고용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철저히 선을 그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게 G사장의 첫째 조건. 우선 회사 일을 지시할 땐 업무평가를 확실히 했다. 퇴근 후 비즈니스 미팅이 있거나 접대가 있는 날이면 약속 장소까지 업무용 차량으로 가고 수행기사를 들여보냈다. 개인적인 일로 모임에 나설 때면 직접 차를 몰아 약속 장소로 향했다.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철저히 파악시키되 집안관계는 전혀 노출하지 않았다. 업무상 야근을 제외하곤 수행비서의 사생활도 중요시했다. 사장의 사적인 일이 베일에 싸여 있으니 우선 사내에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대소사를 챙긴다며 줄서는 이도 없고 비서실을 통해 전해지는 ‘비서실발 통신’도 없었다. G사장의 경영방침은 아이러니하지만 바로 윗형님의 관리 실패에서 비롯된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G사장은 지금도 귀찮고 힘들어 수행기사나 비서를 부르고 싶은 순간에는 중견기업 CEO로 근무하던 형님의 충고를 곱씹는다.
“CEO로 스카우트 되고선 들뜬 마음에 밤이면 수행기사 대기시키고 유흥주점에서 한없이 지냈다. 비서에겐 집에 둘러대라고 지시하고 나섰지. 그저 허풍만 가득한 마음에 별다른 생각 없이 지시했는데 그게 나중에 부메랑이 되더라. 지금도 가끔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고 전화오곤 한다.
전성희 대성산업 수석비서(이사대우)
서울 인사동 사옥에서 신도림 대성 디큐브시티 11층으로 사옥을 옮기고 나서도 전 이사는 여전히 직접 김 회장의 커피를 타고 하루 일정을 정리한다. 인사동 시절과 달라진 점이라면 하루 종일 커다란 빌딩에 갇혀 있어 걷고 뛰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
“처음엔 빌딩 안에만 있어서 답답했는데 지금은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빌딩에 쉐라톤 호텔 피트니스센터가 있는데 생애 처음으로 거금 들여 제게 투자했어요(웃음).”
칠순을 앞둔 지금도 오전 6시에 출근하는 습관은 여전하다. 일단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 후 7시에 사무실에 내려와 중국어를 공부한다.
전 이사는 CEO와 비서의 관계는 서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와 비서의 관계는 서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CEO는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에 따라 비서를 채용해야 하고 100% 능력을 발휘하도록 업무 지시를 내리고 끌어들어야 합니다. 채용된 비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만족을 찾아야겠지요. 그저 차 심부름만 시킨다면 그 CEO는 그런 비서밖엔 둘 수 없어요. 내 일을 덜어주면서 같이 갈 수 있는 비서, 파트너이자 보좌관으로 바라보고 업무를 지시하면 110% 능력을 발휘하는 비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민홍 대성아트센터 대표는 “전 이사는 회장님이 해외 출장을 가시면 어디에서 어떻게 가셔야 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슨 일을 보셔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몇 번 창구에서 몇 번 차를 타야하는 지, 돌아올 때 편하시라고 입국카드까지 넣어드립니다”라고 했다. 김 대표는 또 최근 에피소드라며
김 회장의 파리 출장 때 생긴 일을 소개했다. “회장님이 최근 파리 출장을 떠났는데 마침 보고할 사안이 있어서 전 이사께 말씀드렸더니 오후 5시에 올라오라고 해요. 왜 그 시간인가 봤더니 전날 파티가 늦게 끝나서 회장님이 좀 늦게 일어나실 것 같다고 예상하고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상이 딱 맞았어요(웃음).”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김 회장의 모습은 콕 짚어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전 이사는 비서의 덕목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신뢰가 갈 수 있게 퍼펙트한 일처리. 책임감이 우선이다.
둘째 재치와 순발력이 필요하다. 하루 동안 사건의 연속인 비서실에서 순발력은 꼭 필요하다.
셋째 비밀 유지.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이 기본이다.
넷째 남에게 감동을 주는 태도. 작은 행동이 CEO를 감동시킬 수 있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사진 =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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