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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디자인과 혁신이 만나니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다
입력 : 2012.01.26 15: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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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영국에서 새로운 아이패드 TV광고를 통해 들려주는 메시지이다. 2010년 한국 지식경제부에서 주최하는 굿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삼성전자의 새로 나온 LCD TV 였다. 두께가 1cm도 되지 않는 얇은 스크린과 멋진 디자인은 기술, 심미성과 같은 주요 평가 요소들에 높은 점수를 주기에 나무람이 없었다.
글로벌 제약회사 로슈(Roche Diagnostics)는 아큐첵(ACCU-CHEK)과 같은 브랜드의 당뇨 측정기 등을 통해 당뇨 솔루션을 제공하는 시장 점유율 세계1위의 기업이다. 그 로슈가 개발하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 한번은 새로운 혈당 측정기의 디자인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당뇨병 환자들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시작 전에 한 환자가 “그래서 오늘 획기적인 당뇨병 치료제를 보여주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우리가 보여줄 것은 고작 새로운 혈당 측정기라는 생각에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환자는 테스트가 시작되자 새로운 혈당 측정기를 보고 “이건 혈당 측정기지만 휴대폰같이 멋진걸. 식당에서 그냥 꺼내 사용해도 환자처럼 보이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만성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부드럽고 감성적인 디자인이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기주전자의 찻물을 끓기를 기다릴 때처럼 2~3분이 길게 느껴질 때가 있을까.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물을 빠르게 끓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트릭스(STRIX)는 필립스와 테팔 같은 글로벌 소비자 주방기기 브랜드에 전기 주전자의 핵심 부품인 전기 컨트롤러를 공급하는 B2B 기업이다.
스트릭스는 이 기술을 통해서 소비자의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KD에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우리는 티타임 문화가 강한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된 리서치를 통해 사용자들이 대부분 필요한 양 이상의 물을 끓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루에 5~6번씩 차를 마신다고 가정할 때, 낭비되는 전기와 물에 대한 금전적인 계산은 뒤로 하고라도, 사람들이 지루해 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필요 없는 물을 끓이는데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KD의 디자이너들은 기존 전기포트에 딱 한 컵 분량의 물을 30초 안에 끓여낼 수 있는 기능을 더한 ‘더블액션(Double Action)’이라는 컨셉트를 개발하고 작동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스트릭스는 이 컨셉트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시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증명했다. 고급 주방기구 브랜드 러셀 홉스(Russell Hobbs)는 ‘더블액션’ 컨셉트를 바탕으로 한 ‘퀵투보일(Quick 2 Boil)’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갈수록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경험을 만들어 내는데 디자인 프로젝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리서치이다. 리서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이 된다. 프로젝트 초기단계에서는 간단하게 KD에 있는 리서치 시설에서 사용자를 관찰하거나 인터뷰를 한다.
개발도상국을 위한 핸드폰을 개발할 때는 인도에서 소비자의 일상을 경험한 적도 있다. 새로운 주방용 기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전체 프로젝트 팀이 쿠킹 스쿨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러운 브레인 스토밍을 하기도 했다. 디자인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가 제공하려는 경험을 소비자도 공감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테스트 하기도 한다.
스니커즈 같은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를 가진 스낵 제조업체 마스(MARS)는 몇 년 전 ‘초콜릿 경험 디자인 (Chocolate Experience Design)’ 이라는 부서를 신설했다. 이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는 부드러운 식감으로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갤럭시’ (한국에서는 ‘도브’) 라는 초콜릿 리뉴얼이었다.
소비자 경험의 가치를 알아보고 경험을 만들어내는데 일찍 투자를 시작한 곳으로 자동차 분야를 꼽을 수 있다. 2007년 폭스바겐은 새로운 뉴비틀을 출시하면서 핸들 옆에 꽃병을 선보였는데, 사람들의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지나치게 여성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나는 실제로 사용자들이 그 꽃병을 이용할지 궁금해져 그 뒤로 길에서 뉴비틀을 볼 때마다 핸들 주위를 유심히 보게 됐다. 놀랍게도 나는 한 번도 이 꽃병에 꽃이 꽂혀있지 않은 것을 본적이 없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차를 위해서 항상 꽃을 준비한다는 얘기인데 비싼 오디오나 마감 재질에 비해 훨씬 싸고 단순한 이 아이디어가 자동차와 사용자 사이에 놀라운 유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뉴비틀의 구매자는 60% 이상이 여성이다. 최근 폭스바겐은 여성용차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남자들의 장난감(Boy Toy)으로 새롭게 뉴비틀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기존의 둥글둥글하고 높은 차체를 넓고 낮게 변화한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다. 물론 꽃병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사용자와 브랜드 사이에 유대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해 볼 때 폭스바겐의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DESIGN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듀포트의 이미지들 인도 현장 리서치 / 코펜하겐 덴마크 디자인 센터에 걸린 배너 /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위한 사용자 리서치
KD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아 브리스톨대학과 함께 개발도상국의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솔루션인 ‘아쿠아테스트(Aquatest)’라는 휴대용 수질 테스트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정확한 수질상태를 파악해야 적절한 대책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 시설이나 인력이 없는 시골에서는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채취해 멀리 떨어진 연구소에 보내게 되는데 인도같이 습하고 더운 환경에서는 이동 도중 물이 변질될 수밖에 없고, 테스트 결과가 정확할 리가 없다. 그래서 아쿠아테스트 프로젝트팀은 전문 기술, 시설, 전기 없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수질 테스트 기기를 개발했다.
현재 1차 생산이 이루어져 조만간 개발도상국의 얼리어답터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테스트 당 가격을 2달러 밑으로 낮춘다는 최종 목표는 아마 실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개발도상국의 극히 제한된 환경과 리소스를 활용해서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경우는 ‘달성하기 어려운 야심찬 목표를 세우는 게 최대한 생산 단가를 낮추는데 중요한 모티베이션이 될 수 있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디자인을 이용해 문제들을 풀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최근 몇 년 간 영국 정부기관인 디자인진흥원과 영국 보건국은 2차 감염, 치매, 응급실에서 폭력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활발하게 함께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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