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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비블리오필리] 눈물이 가려야 보이는 슬픈 이름, 아버지
입력 : 2011.12.29 15: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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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장성한 자식들은 아버지의 차고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차고에 남겨져 있는 합판조각과 손때 묻은 망치. 끌. 대패. 줄자. 톱 등이 아버지의 인생이자 자신들을 키운 행복이었음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변호사 케니 캠프가 쓴 '목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만 이름을 남긴 평범하면서도 가슴 아픈 우리 아버지들에 대한 책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당연히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필자뿐만 아니라 누구라 하더라도 아마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시 '목수 아버지' 책으로 돌아가자. 이 책 속의 아버지는 평범한 우리들의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폭격기 조종사였다. 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기회를 가졌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가 불평과 불만의 나날을 보냈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를 환하고 따스한 얼굴로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는 않으셨다.
책 속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늘 자랑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장난감 자동차 하나에서 조립한 라디오까지 동네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이었다. 아버지가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숨죽여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이제 됐다”라고 말하며 땀을 닦는 아버지의 모습은 신(神)과 같았다.
케니 캠프는 10대를 문제아로 보냈다. 교회를 나가지 않았고 집을 나와 살면서 술과 담배, 마리화나를 배웠다. 어느 날 유행이 지난 갈색 양복을 입은 초라한 아버지가 찾아온다. 왜 오셨느냐고 묻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교회에 가는 길인데 함께 가지 않겠니?” 저자는 떨리는 아버지의 음성과 눈빛을 보고 깨닫는다. 그날 자신을 찾아온 일이 아버지에겐 평생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다그침이 아닌 기다림과 눈빛으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루게릭병에 걸린다. 7남매를 번쩍 안아주고 10파운드짜리 썰매를 들어 차고에서 걸어 나오고 일요일 아침마다 침대를 흔들어 자식들을 깨우던 아버지가 온몸이 마비되는 병에 걸린 것이다.
가족들의 기도와 본인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점점 악화됐고 결국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를 땅에 묻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차고를 청소하기로 한다. 각종 공구들과 자투리 나무. 금속조각. 고장 난 모터. 온갖 크기의 못과 전기선. 페인트 깡통을 하나씩 치우며 가족들은 아버지의 일생을 유추해낸다 .
아버지가 남긴 합판 한 조각에서 저자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아버지의 합판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 상자였고 침대였고 꿈이 들어있는 비밀 서랍이었다. 이 합판으로 만든 침대에 오르면서 케니 캠프는 아이에서 어른이 됐고 이 합판 위에서 기차놀이를 했다. 이 합판으로 만든 수납장은 케니 캠프의 꿈과 미래를 보관하는 창고였다.
그렇다. 아버지는 위대한 목수였던 것이다. 무엇이든 만들고 생명을 부여해내고 가족들의 꿈을 이어주던 목수였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교훈을 떠올린다.
‘목수가 되어라. 그리하여 스스로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라.’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추억도 떠올랐다.
신문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 한 치과의사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 허름한 이 병원의 의사는 70을 훨씬 넘긴 노인이었다. 유물에 비견될만한 손때 묻은 치료 기구들과 산더미처럼 쌓인 책 속에서 그는 환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벽에 걸린 액자에 들어있는 아주 낡은 편지였다. 한문과 한글을 혼용해 쓴 편지는 어림잡아 수십 년은 된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식민지 시절 동경으로 유학 간 아들에게 아버지가 보낸 편지였다. 농사가 잘 안 되어서 이번 달 학비를 못 보낸다는 사연과 그래도 꿈을 잃지 말고 참고 인내하라는 아버지의 준엄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어렵던 식민지 시절 유학 간 아들에게 가슴 아픈 편지를 보낸 아버지나 60년 동안 그 편지를 액자에 넣어 보관한 아들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 노의사가 한국의학사(史) 저술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유명한 분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허연 / 매일경제 문화부 부장대우·시인·문학박사 praha@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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