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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의 향기] 가족의 정을 맛보는 음식 ‘뇨키 ’
입력 : 2011.12.29 15: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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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솥 한가득 감자를 찌거나 삶는다. 그걸 껍질 벗기고 으깬 다음 밀가루와 치즈 따위를 곁들여서 두루 둘러앉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멋지게 뇨키를 빚는다. 모양이 무엇이 됐든 상관없다. 번데기 모양을 한 것도 있고, 실 잣는 방추처럼 빚기도 한다. 보통은 약간 타원형으로 빚어 포크로 자국을 내는 것이 많다. 그 자국에 소스가 더 많이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이탈리아에 머물던 때도 뇨키를 많이 빚었다. 식당에서 팔기 위해 만들었는데 식당 주인의 가족들이 나와서 함께 빚으면서 나눠 먹은 적도 많았다. 할머니들이 빚는 모습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내가 열 개를 만들 동안 두 배는 더 빨리, 잘 만든다. 퉁퉁한 손가락으로 어찌 그리 빨리 빚는지! 게다가 모양도 예뻐서 소스를 쪽쪽 빨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소스는 별 게 없다. 토마토소스를 곁들이거나 아니면 치즈를 녹여 묻혀 먹는다.
뇨키는 사실, 스파게티와 같은 국수류와 상반되는 음식이다. 스파게티 먹는 지방에서 뇨키도 먹진 않았다. 이탈리아는 한 나라이지만 과거에는 서로 다른 나라였다. 통일된 지 150여 년밖에 안된 나라다. 그런데 스파게티는 원래 북부 지방의 음식이 아니었다. 스파게티는 말려서 먹어야 하므로 비가 안 오고 건조한 땅에서 만든다. 기억하시는지. 한국에는 한때 소도시나 변두리에는 어디나 자그마한 국수가게가 있어서 가게 앞에 막 뽑은 국수를 널어 말렸다. 그걸 부러뜨려 먹는 개구쟁이들이 치도곤을 당하는 장면도 많았다. 나폴리와 시칠리아가 스파게티의 원조다. 이쪽은 여름에도 비 한 방울 안 오고 태양이 작열한다. 금세 국수가 바짝 말라 보관하기도 좋고, 맛도 좋은 스파게티가 만들어졌다. 반면 북부는 여름에도 비가 오며 항상 습하고 우중충하다. 국수를 말릴 형편이 아닌 것이다. 대신 추운 곳이니 감자가 잘 됐다. 그걸로 식량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스파게티만 먹고 사는 줄 아는 것은 이 나라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그런데 뇨키라고 다 같은 뇨키가 아니다. 남부에서도 뇨키를 먹는다. 남부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북부독립당이 따로 있어서 자그마치 총선을 하면 20% 가까운 표를 얻는다. 북부에서 몰표를 얻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도 연정으로 집권에 참여할 정도다. 툭하면 시위를 하면서 “남부 녀석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 외친다. 그도 고를 것이 이 나라가 통일이 되긴 했지만 인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어떤 연대감이 적기 때문이다. 로마시대 이후에는 함께 살아본 적이 없다가 한 나라가 되긴 했는데, 경제적 격차가 너무 크니 통합이 안 되는 거다. 알려진 것으로는 북부만 떼어 놓으면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고, 남부는 그 반도 안 된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형편이니 남부는 가난한 곳이다. 그래서 남부의 뇨키는 감자보다 싼 밀가루를 많이 넣어서 쫄깃하다. 치즈 소스보다는 토마토를 슬쩍 묻혀 먹는다. 북부는 반면 감자를 많이 넣어 부드럽다. 입에 넣으면 스르륵 녹는다. 남부의 뇨키는 쫄깃한 데 비해 더 사치스러운 느낌이 든다. 뇨키라는 요리 자체가 지극히 서민적인 것인데도 이런 격차가 생긴다.
그렇다고 뇨키가 이 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요리도 아니다. 바로 감자는 지리적 발견 이후에 안데스 산맥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기 때문이다. 감자는 수많은 유럽, 아니 세계의 사람들을 살린 고마운 존재다. 감자는 재배도 쉽고 칼로리도 꽤 높으며 저장도 잘 됐다. 아마 유럽이 빵만으로 살았다면 지금의 유럽이 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고호의 그 어두운 그림 한 점이 생각나기도 한다. <감자 먹는 사람들>. 감자로 끼니를 때우던 유럽의 가난한 농민들을 묘사한 그 그림이 상징하듯, 감자는 뇨키로 변해 수많은 인류의 생존에 기여했으니….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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