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위스(CHRONOSWISS)’는 독일 시계다. 독일차로 대변되는 벤츠가 그렇듯이, 독일 시계라는 의미에는 독일 특유의 엄격함, 단단함 그리고 단순한 미니멀리즘 미학이란 뜻이 담겨있다. 지금은 크로노스위스가 넘쳐나는 스위스 시계들 사이에서 차별성을 간직한 독일시계로 자리 잡았지만 1982년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별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당시는 100년 넘는 전통 스펙을 장착한 스위스 고급시계들조차도 새로운 일본의 디지털시계에 밀려 고전하던 때였다. 하지만 독일 태생의 시계 제조업자 게르트 랑(Gerd R.Lang)은 편리성에만 초점을 맞춘 디지털시계의 열풍은 곧 가라앉고 예술 작품과도 같은 고급시계의 부활을 예견했다. 이에 자신의 직감만으로 크로노스위스를 론칭했다. 지난 29년간 크노로스위스의 발자취는 기계식 시계에 열정을 불사른 게르트 랑의 일생이기도 하다. 크로노스위스가 앞세우는 캐치프레이즈인 ‘Fascination with the Mechanical Movement(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빠짐)’만 봐도 게르트 랑이 얼마나 기계식 시계를 사랑하고 심취했는지 알 수 있다.
게르트 랑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줄곧 평생 동안 시계만을 만들어 온 말 그대로 장인이다. 그는 독일의 작은 시계 제조공장의 견습공으로 시계와 인연을 맺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스위스 비엘비엔에 있는 ‘호이어’(태그호이어의 전신) 생산업체의 품질 책임자로 15년간 근무했다. 호이어를 나와 보다 전문적인 시계 장인이 되고자 독일에서 시계학으로 석사를 마친 그는 꿈에 그리던 자신의 브랜드 크로노스위스를 만들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크로노스위스가 세상 빛을 본 1980년 초반에는 전자식 쿼츠 무브먼트 시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계식 시계 생산 공장들이 거의 문을 닫는 시절이어서 그의 새 사업은 무모하다고 주위의 비웃음을 샀다. 기술이나 디자인 양쪽 면에서 완벽한 기계식 시계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장인의 생각이었지, 하루아침에 브랜드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사업가의 그것은 아니었다. 게르트 랑은 하나하나씩 시계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만한 새롭고 혁신적인, 그래서 매력적인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뛰어난 기술과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이 시계들은 유럽의 각종 워치 평가 단체에서 유망하고 주목할 만한 신생 브랜드로 꼽히는 성과를 낸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박람회인 바젤 페어에 매년 참가하며 세계적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결국 기계식 시계의 미래를 내다본 한 장인의 선견지명이 옮았음을 증명했다.
시기별로 보는 크로노스위스 명작 시계들
레귤레이터
크로노스위스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집가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킨 모델들이 많다. 그중에서 크로노스위스라는 브랜드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 시계가 바로 ‘레귤레이터(Regulateur)’다. 레귤레이터는 시침이 보통 시계와 달리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시침과 초침이 겹쳐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혁신적 제품이다. 레귤레이터와 함께 초창기 크로노스위스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 시계가 ‘루나(Luna)’이다. 이 시계는 현재 독일 뮌헨에 위치한 크로노스위스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루나는 음력을 사용하는 이들을 위한 시계로 음력 표시 기능과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가진 ‘루나 크로노그래프’와 시간과 음력 기능만을 표현한 ‘루나 트리플’, 두 가지 컬렉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달 얼굴 모양의 문양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며 균형 잡힌 시계 바늘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
1. 크로노스위스 하우스 2.오푸스 무브먼트 3.카이로스 4.그랑오푸스
1996년에 나온 ‘오푸스(OPUS)’는 시계 내부가 들여다보는 스켈레톤으로 시계 감정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해당 연도에 권위있는 시계 잡지인 <Armbanduhren>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시계(Watch of the Year)’를 수여했다. 이어 1998년에는 점핑 아워 개념의 ‘델피스(Delphis)’를 선보였는데, 델피스는 그리스어로 ‘뛴다(jump)’는 의미이다. 델피스는 시계를 구성하는 시·분·초를 2분의 1 점핑 디지털 시와 아날로그 분·초를 결합한 매우 독창적인 시계이다.
시는 디지털 화면을, 분은 역행하는 화면을 그리고 초는 아날로그 서브 다이얼을 사용한다. 오퍼스와 델피스가 연속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크로노스위스는 시대가 인정하는 혁신적인 시계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지만 게르트 랑은 이미 얻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혁신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현대사회의 상징인 자동차와 바이크의 기계식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시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와 같은 착안으로 탄생된 것이 ‘타임마스터’이다. 타임마스터는 시간이 금만큼 귀중하고 중요한 자동차 경주 또는 오토바이 경주를 위한 전문가용 시계다. 44mm 빅 사이즈의 외경과 큰 다이얼 사이즈에 함께 어울리는 커다란 용두(시계 옆 손잡이)가 특징이다.
2000년에 들어서 크로노스위스는 고전의 부활과 현대의 미학을 함께 담은 시계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클래식(Klassik)’은 기계식 시계의 전통과 고전을 표현하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거쳐 탄생시킨 시계다. 날짜가 아날로그로 표시되어 만들어졌다.
2003년에는 기존 ‘레귤레이터’ 다이얼에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가진 시계 ‘크로노스코프’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2003년 바젤 워치 페어에서 선정하는 최고의 시계로 주목을 받았다. 2005년 크로노스코프는 6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시간당 2만1600번의 진동수를 완성하는 밸런스 휠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진화됐다. 또 이 시계에는 맑은 소리를 들리게 하는 2개의 ‘Wheel gong’이 있으며, 하나는 시간, 나머지 하나는 15분마다 울리는 분을 위한 휠이다. 10시 방향의 버튼을 누르면 현재 시각이 각기 다른 벨소리로 울리는 제품이다. 2006년 크로노스위스는 1990년대 이루어낸 작품들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한다. ‘델피스’는 ‘디지터(Degiteur)’로, ‘타임마스터’는 ’타임마스트 데이앤 나이트’로, ‘크로노스코프’는 ‘크로노스코프 위드 비저블 컬럼’으로 변신한다.
일례로 디지터는 사각 케이스에 맞춘 사각의 무브먼트를 자랑한다. 1933년부터 1963년까지 생산됐던 뱅크 무브먼트를 변형해 새로운 칼리버 FEF 130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다이얼을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인디케이터로 표현함으로써 현대성을 부여한 것. 디지터는 오래된 무브먼트의 희소성으로 인해 99개 한정품으로 나왔다.
2007년은 크로노스위스가 독일 뮌헨에 새 사옥과 기계식 시계 학교를 세운 해이다. 이를 기념해 ‘99 Limited Edition-Chronoscope with Gerd.R.Lang’란 사인이 들어간 크로노스코프 컬렉션을 내놨다. 이는 크로노스위스가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보여주는 동시에 희소성을 가치로 제공한다.
1.타임마스터 빅 데이트 2.퍼시픽 크로노그래프 3.퍼시픽 4.리스트(Wrist)마스터
2008년은 브랜드 재도약의 해다. 이 같은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나온 시계가 바로 ‘자이트자이헨’ 컬렉션이다. 자이트자이헨은 영어로 ‘Signs of Time’이란 의미다. 모두 5가지 테마를 가지고 테마별 33개씩만 생산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이 시계들은 브리지, 기어, 밸런스 휠과 배럴 등 내부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조각처럼 인그레이빙해 탁월한 디자인의 디테일을 담고 있는 게 특징. 단 한 개의 제품을 위해 6만 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2009년에 선보인 ‘소테렐’은 바젤 페어를 통해 크로노스위스가 대외적으로 ‘Made in Germany’를 천명한 이후 처음 탄생된 첫 번째 100% 자사(In-house) 무브먼트가 장착된 시계다. 클래식한 3 핸즈 시계와 크로노스위스의 상징적인 레귤레이터 시계 두 가지 컬렉션으로 나왔다. 다이얼 안에는 독일 매뉴팩처로 ‘Made in Germany’를 처음으로 각인했다.
2010년에는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젊은 기계식 마니아에게 초점을 맞춘 ‘시리우스(SIRIUS)’시계를 내놨다. 과거 무브먼트를 사용해 크로노스위스의 전통성을 담았고, 현대적인 베젤과 아라비안 시(hour) 표시로 젊은 컨셉트를 부각시킨 제품이다. 뿐만 아니라 지속되는 오버사이즈 트렌드에 맞춰 다이얼 크기를 직경 40mm와 44mm 사이즈로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