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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CJ그룹의 변신, “식품기업 아닌 생활문화기업으로 불러달라”
입력 : 2011.11.04 17: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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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 로비의 벼 재배장.
조용히 수성에 주력하던 것 같던 그룹을 대대적으로 변신시키면서 이재현 회장도 본격적으로 경영의 일선에 나서고 있다.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한 뒤 거의 20여 년 가까이 쌓은 내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제2창업 진두 지휘 이재현 회장
삼성그룹과의 불편한 관계까지 불사하면서도 결국 대한통운 인수전의 승자가 됐기 때문이다. 이관훈 CJ(주) 대표는 “우리의 4대 사업군 중 하나인 신물류를 강화하기 위해서 대한통운은 꼭 필요했다”며 “대한통운 인수는 CJ의 미래를 위한 ‘화룡점정’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룹의 주축이자 캐시카우인 CJ제일제당을 중심으로 하는 식품기업에 다른 기업들을 붙여 사업을 다각화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CJ그룹은 지난해 이 회장이 ‘제2의 창업’을 선언한 뒤 ‘건강, 즐거움, 편리를 창조하는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미래 트렌드에 맞게 잘 구성돼 있고, 성장 가능성도 높다”며 “글로벌 CJ의 목표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확보하고 전 세계에 CJ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 여러 계열사들을 ‘식품&식품서비스’, ‘바이오 및 신소재’, ‘엔터테인먼트 & 미디어’, ‘신유통’의 네 축으로 묶어 성장가도를 달리겠다는 구상이다. 대한통운 인수는 그 가운데서 비교적 약체였다고 판단한 유통 쪽을 확실히 강화하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CJ그룹은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우선 협상자 선정 직후, “그룹 물류사업을 2020년까지 20조원 규모로 성장시켜 글로벌 7대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외유내강형의 ‘소프트파워 리더십’CJ 제일제당센터 로비
■ 이재현 CJ그룹 회장
국내 대기업에서는 최초로 1999년 복장자율화와 2000년 ‘님’ 호칭제 등을 시행하면서 기업문화 혁신을 이끌었다. 2005년에는 자신의 사재까지 출연해 CJ그룹 복지재단인 ‘CJ나눔재단’을 발족시켰다.
글로벌 CJ그룹의 4대축 엔터·유통·바이오·식품서울 중구 쌍림동에 새롭게 문을 연 CJ제일제당센터
CJ그룹은 통합 당시 “타임워너 같은 해외 글로벌 미디어그룹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향후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 효율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룹에서 CJ E&M에 거는 기대는 크다. 향후 5년간 30%이상의 영업이익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미디어 회사들이 경영실적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 셈이다.
대한통운 인수로 글로벌 물류 탄력 CJ그룹은 지난 6월 말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승리하면서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CJ그룹의 물류 회사인 CJ GLS의 지난해 매출(1조4000억원)과 대한통운의 매출 2조5546억원을 단순히 더해도 4조원 매출을 올리는 국내 2위 물류 기업이 탄생한다. CJ는 여기서 더 나아가 두 회사를 3자 물류(3PL) 전문기업으로 만들어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올리는 ‘세계 톱7 물류기업’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대한통운이 갖고 있는 풍부한 인프라스트럭처에 CJ GLS의 공급망관리(SCM) 역량을 결합하고 IT 및 첨단 물류 인프라에 지속 투자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란 게 그룹 측의 설명이다.
사실 CJ그룹의 물류사업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한 편이다. CJ GLS의 최근 M&A 행보를 지켜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CJ GLS는 2006년 삼성물산이 보유했던 HTH를 인수했고, 싱가포르 최대 민간 물류기업인 어코드(Accord)도 인수했다.
신유통의 또 다른 축인 CJ오쇼핑은 해외진출에 중점을 두고 성장하는 중이다. 중국 내 최초의 정식 홈쇼핑 방송인 동방CJ는 2008년 2100억원, 2009년 4200억원, 2010년 6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매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CJ오쇼핑은 이밖에도 중국 천진(천천CJ), 인도(스타CJ), 베트남(SCJ), 일본(CJ프라임쇼핑) 등에도 진출했다.
CJ오쇼핑은 차세대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도 늦추지 않고 있다. 2005년 12월 국내 최초의 홈쇼핑 데이터방송 상용화 서비스인 CJTmall, 휴대전화를 통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CJMmall을 오픈하는 등 T-커머스와 M-커머스 분야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 신소재’ CJ그룹의 또 다른 미래 성장축은 바이오와 신소재 산업이다. 이 부문은 CJ제일제당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가 최근 “CJ제일제당을 단순한 식품기업이 아니라 바이오와 식품 신소재를 기반으로 2015년까지 매출 15조원을 올리는 첨단 소재기업으로 변신시키겠다”고 말할 정도다.
CJ제일제당은 이미 라이신(사료용 아미노산)과 핵산(식품조미 소재) 등 바이오 제품에서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다. 2014년부턴 두 제품보다 세계시장 규모가 큰 메싸이오닌을 본격 생산할 예정. 김철하 대표는 “메싸이오닌을 생산하게 되면 발효 기반으로 라이신, 트레오닌, 트립토판, 메싸이오닌 등 4대 사료용 아미노산을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바이오 기업이 된다”며 “2015년에는 바이오 한 분야에서만 3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품 신소재는 설탕, 밀가루 등 기존 소재 식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쌀 가공 소재, 고부가 감미료, 고부가 유지 등의 신사업을 강화한다. 쌀 단백질, 코코넛셸 자일로스, 타가토스를 개발했고, 천연 코코아 버터와 유사한 초콜릿용 유지도 개발 단계에 있다.
CJ제일제당은 또 2004년 3월 제약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한일약품을 전격 인수합병했다. 현재 메바로친(고지혈증 치료제), 바난(항생제), 헤르벤(고혈압 치료제), 셀벡스(위염, 위궤양 치료제) 등 해외의 우수한 오리지날 약품 라이센스를 갖고 있다.
식품사업은 ‘해외진출’로 돌파구 열어‘슈퍼스타K’ 녹화현징인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
제품 진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일본 에바라사와의 합자법인을 통해 김치 등의 한식메뉴를 일본 대형마트 1위인 이온, 2위인 이토요카도 등 메인유통 채널에서 팔 예정이다. 또 국내 지역막걸리 제조업체가 생산한 막걸리를 일본 전역에 수출하고 있으며, 지역 어민과 함께 손을 잡고 세운 천일염을 프랑스의 명품 소금 게랑드처럼 세계적 명품소금으로 키우기 위한 중장기 비전을 짜고 있다.
CJ푸드빌은 외식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빕스’, 중식 패밀리 레스토랑 ‘차이나 팩토리’, 유럽풍 케익&카페 ‘투썸 플레이스’, 베이커리 전문점 ‘뚜레쥬르’, 비벼먹는 아이스크림 전문점 ‘콜드스톤 크리머리’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CJ그룹의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맡아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bibigo)’를 출범했다. 2010년 8월 중국 베이징에 해외 1호점의 문을 연데 이어, 9월에는 미국 LA에 오픈했다. 12월 중순에는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할 싱가포르에도 점포를 낼 예정이다.
CJ프레시웨이는 단체급식, 식자재 유통부문, 컨세션(Concession;공항, 철도역사, 문화시설 등 공공시설의 서비스 시설을 운영하는 사업)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계열 분리18년 만에 17조로 성장9월16일 CJ제일제당센터에 진행된 우수 R&D 석박사 채용설명회. CJ가 초청된 석박사들이 선배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일제당 주축으로 종합식품회사로 발돋움 이 와중에 식품 분야에서의 사업영역 확대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1958년 제분사업 진출, 1963년 조미료 국산화, 1979년 식용유 제조, 1980년 육가공사업 진출 등으로 계속 사업을 확대했다. 소득 탄력성이 낮은 이들 소재식품은 상대적으로 경기를 덜 타 CJ가 창립 이래 한 번도 100대 기업에서 탈락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효자구실을 했다.
CJ그룹은 1984년엔 조미료 생산과정에서 축적한 발효기술을 바탕으로 제약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에는 생활화학사업, 1994년엔 외식 및 단체급식시장에 진출하면서 명실상부한 종합식품회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어느 회사나 그렇듯 기업의 고정된 이미지는 어느 순간부터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국내 최대의 식품회사라는 이미지가 CJ그룹의 성장에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1993년 7월 제일제당(주), 제일제당건설(주), 제일씨앤씨(주), 제일냉동식품(주), 제일선물(주) 등 5개 회사가 삼성그룹과 분리되면서 제일제당그룹(구 CJ그룹)이 출범했다.
미디어 사업 진출하며 생활기업으로 변신 삼성으로부터 독립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아 CJ그룹은 일대 도박을 감행했다.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등이 설립한 할리우드 벤처영화사인 드림웍스(DreamWorks)의 2대 주주로 참여하며 무려 3억 달러를 투자한 것. 이재현 현 회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투자협상을 가진 이 일은 당시만 해도 ‘엄청난 도박’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일제당그룹은 드림웍스의 아시아 배급권과 국내영화 투자를 통해 국내 영화업계의 1위 회사로 떠올랐다. 대기업이 영상사업을 하면 실패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굳건한 지위를 확보한 셈이다.
2002년엔 사명을 CJ그룹으로 바꾸며 본격적인 변신에 나섰다. 식품회사 이미지가 강한 기존의 그룹이름으로는 영화·홈쇼핑·생명공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 생활문화기업’의 특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M&A 통해 사세 키워
2007년 9월 1일에는 투자와 사업의 분리를 통한 경영효율화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CJ주식회사의 사업부문을 별도 회사로 분리해 완전히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한 것. 식품 및 제약, 사료 등 사업부문은 과거 ‘제일제당’의 사명을 붙여 CJ제일제당이란 신규법인으로 설립했다.
그룹이 커가면서 매출도 성장을 지속해 1998년 3조2635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액이 2010년에는 17조 4800억원으로 늘어났다. 계열사 수도 1998년 32개에서 2010년 147개로 크게 증가했다.
[손동우 / 매일경제 기자 sdw821209@gmail.com│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3호(201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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