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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Industry] 차세대 전투기 : 8조원 건 한판 승부
입력 : 2011.09.28 18: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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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으로는 한국의 FX 사업은 굴지의 전투기 제작업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란 형태를 띠고 있다. 최신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앞세운 미국의 록히드 마틴, 구식 모델이지만 개량을 통해 스텔스 기능을 얼마정도 가미한 F-15SE(사일런트 이글)를 내세운 미국의 보잉, 여기에다 이번에는 반드시 한국 FX 사업에서 승리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역시 스텔스 기능을 가미한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내세웠다. 러시아의 수호이도 최신 스텔스기 PAK-FA(팍파)를 입찰에 참여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업체로는 4곳, 국가로는 미국, 유럽, 러시아가 한국 FX 사업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이 다음 달까지 록히드 마틴, 보잉, EADS로부터 제안서를 받고 본격적인 평과와 입찰을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FX 사업에서 승리하는 업체는 향후 10년간 세계 전투기 산업을 이끌 수 있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간택’받지 못하는 업체는 장기간 깊은 수렁 속에 빠져야 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물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한 꺼풀 벗겨 한국 내 속사정을 살펴보면 FX 사업은 더욱 복잡하다. 성능과 가격 수준을 둘러싼 논란, 전통적인 한미 관계 등 고려해야 할 변수, 일본, 중국 등 주변 국가와 북한이라는 위협요인이 뒤섞여 있다. 이 때문에 FX 사업은 3~4차 정도가 아니라 10차 방정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은 스텔스 대 비스텔스의 싸움이다. 보통 스텔스 기능이 있는 비행기라고 하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스텔기로 통하는 F-22도 레이더에 잡힌다. 다만 레이더에 잡히는 크기가 일반 전투기처럼 누가 봐도 전투기로 보일 정도로 큼지막한 대신 작은 새 정도에 불과하다.
레이더 상으로는 새인지 전투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침입을 판단할 수 없다. 한국 FX 사업에 입찰을 준비 중인 전투기 중 F-35와 팍파는 처음부터 스텔스기로 개발돼 이 기능이 강력한 반면 F-15SE와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기존 전투기에 스텔스 기능을 가미해 상대적으로 스텔스 기능이 약하다.
록히드 마틴의 F - 35
기존 북한의 전투기를 압도하고 북한 최고 지도부에 공포심을 준다는 이유 말고도 주변국의 움직임도 공군의 스텔스기 애착을 강화시킨다. 중국은 2018년 양산을 목표로 스텔스기 ‘젠-20’을 개발 중이다. F-22와 비슷한 크기로 강력한 스텔스 기능을 갖춘다는 게 중국의 목표다. 일본 역시 2018년 양산을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신신’이란 이름의 스텔스기를 개발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스텔스기를 개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먼저 스텔스기를 확보하는 것을 우려해 FX 사업을 통해 해외구매를 통해 스텔스기를 도입한다.
러시아 수호이사의 PAK - FA
공군은 하이 앤드 로우(high and low) 전략에 따라 60대의 고성능 스텔스기로 주력 전력을 갖추고 국산 전투기 개발사업인 KF-X를 통해 F-5 구식 전투기를 대체하는 비스텔스 전투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투기가 출격을 할 때 기체 아래 미사일과 폭탄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데 이게 레이더에 잘 잡힌다. 스텔스기는 기체의 외부 곡선을 가능한 매끈하게 만들기 위해 폭탄과 미사일을 기체 안에 넣기 때문에 무장에 제약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텔스기는 레이다를 피해 공격지점에서는 탁월하게 침투할 수 있지만 공격력은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가격 측면에서도 스텔스기는 약점이 있다. F-35의 경우 대당 가격이 계속 올라 현재는 14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스텔스 전투기들이 1000억원 전후라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다. 그래서 “젊은 아들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승용차를 고르라고 하면 아마도 벤츠 최신형을 고르겠지요. 그런데 돈 문제를 따지면 아무리 부자라도 그랜저 정도로 낙찰되는 게 당연할 거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나온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이 “공중통제기와 지상 전력이 적의 레이다 망을 무력화시킨 뒤 중무장이 가능한 비스텔스기가 침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전략적 측면뿐만 아니라 가격 측면까지 고려할 때 스텔스기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투기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해 가능한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방위사업청은 강조한다. 8조나 되는 사업을 하면서 기술이전, 국내생산, 추가적인 지원 등 가능한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공군이 제시한 군요구성능(ROC)에 맞추다보면 선택 대상은 F-35밖에 남지 않는다. 한 곳만이 해당한다고 미리 결정을 해버리는 셈으로 한국 측의 협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ROC는 구입하고자 하는 무기의 성능 범위를 말하는데, 이것이 결정되면 정부가 예산을 마련해 성능에 맞는 무기를 제공하는 업체들과 접촉해 구매 사업을 추진한다.
경쟁 가열시키는 선택지보잉의 F -15 사일런트 이글
스텔스와 비스텔스의 싸움이외에 무기체제 호환과 한미 동맹이란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미국의 무기체제를 사용하는 한국군이 유럽이나 러시아의 전투기를 도입했을 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투기의 전산시스템이 기존 전투기나 전략시스템과 얼마나 호환이 이뤄질 수 있을지, 기존 폭탄과 미사일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등의 의문이 남는다.
공군 관계자는 “유럽 전투기가 들어온다면 무기 역시 유럽산을 써야 제대로 된 공격력을 갖출 텐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경우 신뢰성이란 문제가 있다. 과거 차관을 갚는 대신 러시아가 한국 측에 건넨 무기들이 이래저래 문제를 일으킨 전례가 있어 과연 러시아 전투기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 강하다.
또 여전히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조건이나 가격이 좋다는 이유로 유럽 전투기를 사들이는 것은 자칫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군 당국의 고민이다.
아무튼 사업자 선정은 내년에 결판난다. 그 과정에서 이런 다양한 변수와 조건들을 둘러싼 논란들이 불거질 것이다. 하지만 일단 해외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점은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이상훈 /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 karlle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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