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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재벌 안주인들의 비자금 쌈지…베일 속 미술시장
입력 : 2011.06.23 16: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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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왕의 귀환이 아닌 ‘여왕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의 뉴스가 화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가 삼성미술관 리움의 관장으로 조용히 복귀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2008년 6월 삼성 특검 당시 관장직에서 물러난 홍 여사가 3년 만에 돌아왔다. 또한 2007년 성곡 미술관 관장직에서 물러났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 박문순 관장 역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 노소영 씨의 경우, 1997년 시어머니인 박계희 여사가 운영하던 워커힐미술관을 맡으면서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또 2000년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계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여전히 미술계를 이끄는 주요 인물이다.
큐레이터 신정아도 요즘 이슈 인물이다. 2007년 학위 위조 파문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 실장과의 스캔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녀가 에세이집을 들고 4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선 것이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4년 동안 써두었던 일기 중 일부를 편집해 발간했다고 밝힌 신정아는 정재계를 망라한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의 과거사를 죄다 끄집어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미술이 대중화됐다고들 한다. 우리나라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백남준도 있고, 신진작가들의 위상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왠지 미술시장은 어렵고 높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미술계와 재벌가가 맺은 끈끈한 관계 속에 나타나는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대중들에게 왜곡되어 비춰지고 있는 것도 많다. 그렇다면 과연 미술계와 미술시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미술시장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또 요즘 재벌들이 주목하고 있는 돈 되는 작품들은 대체 무엇일까.
특히 우리나라 최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삼성의 수집 내력은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대부터 골동품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82년 자신의 소장품 2174점으로 동양 최대의 사립 호암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국보와 보물급 고미술이 이곳에 집중됐다면 2004년 한남동에 오픈한 리움은 그의 2세들이 수집한 현대미술 작품의 창고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규모 그룹사에서 미술관을 경영하는 것은 오너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재벌가 사모님들이 미술관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그들의 미술관 운영은 지위와 고품격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고현정은 재벌 며느리였을 당시 집안에 미술 작품들이 정기적으로 바뀌어 걸리는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작품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술 공부에 관심이 생겼고 앞으로 관련 수업을 받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종종 재벌가에서는 며느리들의 가풍 교육이 시어머니의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또한 재벌 미술관들은 국내외 우수한 작품들을 사들이는 통로가 된다. 젊은 작가들을 집중 지원하고 우리나라 미술계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 재벌들은 대형 전시를 유치하는 데 가장 큰 스폰서를 자처하고 있다. 때로는 회사 자금의 편법 유용이나 비자금 촬영의 비밀 통로가 돼 물의를 빚기도 한다. 급기야 9시 뉴스에까지 등장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은 공식 구매가가 그 무렵 시세로 93억원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 초기 작품이니 귀하기도 하지만 그 작품이 삼성의 불법 비자금에서 조달됐다는 의혹이 뒷받침되면서 <행복한 눈물>은 아름다운 미술품이 아니라 특권층의 징표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처럼 미술품이 예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가끔씩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이유는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부르는 게 값일 수 있는 데다 작고한 작가의 작품이거나 해외 작가의 경우 적정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또 세금이 붙지 않는 것도 원인이다. 미술품의 음성적 거래를 막기 위해 추진됐던 양도세 부과는 2013년으로 유예됐다.
국내 최대 컬렉터인 삼성의 경우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총체적인 파악이 쉽지 않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벌 미술관은 경쟁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회를 활발하게 열었다. 당시 미술관들은 구입 작품을 기획전으로 공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급변했고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이 이어지면서 재벌 미술관의 운영 방식이 패쇄적으로 바뀌었다.
재벌과 갤러리의 은밀한 커넥션?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 경매 현장.
이뿐이 아니다. 기업 CEO들의 사무실 리노베이션을 갤러리에서 담당하기도 한다. 재벌 안주인이 남편에게 특정 갤러리를 추천, 법인 비용으로 수억 원을 들여 사무실 단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전체 갤러리의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사례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미술시장 그렇다고 미술시장이 부정적인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미술은 최근 10년 간 양적, 질적으로 발전해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미술계가 신진작가 중심으로 서서히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견작가들 위주로 거래되는 화랑가에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해준 대안 공간은 미술계 변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아트페어, 대규모 해외 전시에서 큰 주목을 받은 신진작가들이 점점 늘면서 우리나라 미술계의 세대교체에 가속도가 붙었다.
갤러리들이 앞 다투어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것도 발전의 한 단면이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갤러리들은 베이징, 상하이 등에 지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의 비엔날레도 해마다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참여와 대중들의 호응으로 국제적으로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 전시회 유치도 미술계의 문턱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해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트페어나 롯데호텔 전시회 등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앤디 워홀은 물론이고 샤갈, 로댕, 모네 등 거장 화가들의 대규모 전시회가 모두 성공리에 진행됐다. 그러면서 이젠 꽤 많은 사람들이 “나도 작품 하나 사볼까”를 대화의 소재로 삼고 있다.
현존하는 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로 꼽히는 데미안 허스트.
올해는 로댕갤러리의 기획전 컴백과 베니스 비엔날레 등의 큰 이슈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롭게 선보이고 출품 될지,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설렌다.
[모은희 / 아트기획자 hug7428@naver.com│사진 =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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