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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세종시 이주 앞둔 공무원들의 착잡함
입력 : 2011.06.23 15: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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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정부과천청사의 부처들은 단계적으로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올해가 되고 나서 서서히 마음이 급해지고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솔직히 왜 우리가 제일 먼저 가나라는 생각도 든다. 2013~14년에 이주하는 부처의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그들 부처에 ‘설마 우리까지 가겠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12년 이전 예정인 국토해양부 한 직원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공무원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또 이전 대상자들과 이전하지 않아도 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희비가 교차되고 있다. 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무원 중에는 표정관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도 나돈다.
9부2처2청 36개 기관 2014년까지 세종시로공무원시험 응시생들의 긴 행렬.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배우자의 직장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있는 공무원이나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공무원들로서는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애써 공부해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획득한 공무원 자리를, 세종시로 내려가기 싫다는 이유로 함부로 내놓을 수도 없다. 결국 큰 변화가 없는 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한 공무원은 “질병관리본부나 식약청 등 이미 내려가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며 “비록 그들은 세종시로 이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그나마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해양부 등보다 1년 늦은 2013년 이전이 예정돼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지만 벌써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이전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그나마 아이가 아직 없어 다른 공무원들처럼 자녀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아내의 직장 문제가 큰 고민거리다”라고 털어놨다.
식품의약안전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충북 청원군 소재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으로 이전했다. 이 때문에 과천청사에 있는 공무원들이 식약청 동료들에게 먼저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식약청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듯하다.
식약청 한 직원은 “아직까지 인프라가 거의 없어 거주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직원은 “교육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의료시설이 전무한 상태”라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절반 정도 직원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지금도 서울에서 출·퇴근한다”고 전했다. 이들을 위한 교통비 지원은 물론 없다. “교육시설도 초등학교 하나, 중학교 하나뿐”이라며 “현재 고등학교를 짓고 있으나 학원 등이 없어 자녀 교육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식약청 또 다른 직원은 “그만둔 사람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식약청 직원들의 말은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있는 공무원들이 들으면 한숨부터 나올 얘기다.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무원들은 식약청 직원들처럼 마음 놓고 그만둘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전한다. 기획재정부 한 직원은 “식약청이나 질병관리본부 직원 중에는 약사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라며 “그들이 제약회사 등으로 많이 옮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하지만 우리같이 달리 할 게 없는 평범한 공무원들은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토했다. 또 국토해양부 한 직원은 “닥쳐봐야 알겠지만 퇴직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분들 중에는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올해 1월21일부터 2월18일까지 국무총리실이 이전 예정인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전원(1만11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1만179명, 응답률 91.2%)의 87%가 세종시로 이주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3%는 현재 거주지에서 출·퇴근할 것이라고 답했다.
“혼자 가겠다”는 의견 갈수록 높아져세종시 첫마을 아파트 공사현장 / 2008년 3월 정부 조직 개편으로 과천청사 공무원들이 이사에 분주한 모습. 내년부터는 아예 과천을 떠나야 한다.
게다가 이주 희망자 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단독 이주’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행안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족과 함께 세종시로 이주하겠다’고 답한 공무원은 전체 응답자 중 52.6%, ‘혼자 세종시로 이주하겠다’고 답한 공무원의 비율은 35.4%였다. 하지만 올해 국무총리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두 답변에 대해 각각 46%(가족 동반 이주), 41%(단독 이주)로 나타났다.
여기서 허투루 지나치면 안 될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가족과 함께 이주하겠다는 답변이 줄어든 반면 혼자 이주하겠다는 답변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말해 세종시 이전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공무원들이 ‘주말부부’, ‘기러기아빠·엄마’를 불사하고서라도 혼자 내려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자녀 교육 문제 탓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행안부 조사에 따르면 세종시로 이주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로 공무원들은 첫째 자녀교육 문제(42.9%), 둘째 배우자 직장 문제(40.3%), 셋째 생활편의시설 부족 문제(5.8%) 순으로 꼽았다.
올해 실시한 국무총리실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사실도 이 같은 점을 뒷받침한다. 세종시로 단독 이주할 것이라고 답한 41%의 구성 비율을 보면 기혼자가 30%였고 나머지 11%가 미혼자의 답변이었다. 즉 자녀와 배우자가 있는 기혼자들은 가족과 함께 세종시로 내려가기를 많이 꺼려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히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가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은 자녀 교육과 배우자 직장 문제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이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울한 초상 중 하나다.
현재 세종시에는 교육시설이나 생활편의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분양한 세종시 첫마을 1단계 아파트가 올해 말 완공, 입주 예정에 있을 뿐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세종시에는 현재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부터 내려가야 하는 해당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당장 아이들 교육 문제와 배우자 직장 문제가 큰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기획재정부 한 사무관은 “기획재정부는 안 갈 수 없는 부처다”며 “인프라 구축이 미비한 점을 가장 불만스럽다”고 털어놨다. 최영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대변인은 “교육시설과 관련해서는 수요조사를 이미 다 마쳤고 개교하는 데 차질이 없을 것”이라며 “특목고 등 유인책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건설청에 따르면 2013년 3월이면 3개 유치원, 초·중·고 각 2개교 등 9개 학교가 개교한다. 9개교 중에는 외고도 1개교 포함돼 있다.
세종시 이전 않는 이유로 기피 부서가 인기 부서로 탈바꿈지난해 10월 25일 세종시 첫마을 1단계 분양설명회 모습.
이 공무원의 말마따나 자녀 교육 문제 못지않게 세종시로 이주하는 데 또 하나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배우자의 직장 문제다. 대부분 배우자의 직장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있기 때문에 가족과 동반 이주하기가 매우 모호한 실정이다. 세종시로 동반 이주한다면 부부 중 한쪽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말부부의 길을 선택하려는 공무원이 많은 것이다.
여성 공무원 입장에서는 이마저 곤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자녀들을 아빠에게 맡기고 혼자 세종시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차라리 남편을 서울에 혼자 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세종시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심적으로 훨씬 안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정부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이주정착을 지원해 가족 동반 이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구체성을 띤 것은 ‘부부공무원 전보 지원’ 정도다. 그밖에 문화활동 지원, 취업 알선 등과 같은 지원책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에서 출·퇴근하겠다는 공무원이 차차 늘고 있는 추세다. 국무총리실의 한 직원은 “처음과 달리 출·퇴근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출·퇴근 셔틀버스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측은 “현재로서는 셔틀버스는 주말만 운행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는 부서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혹시 계획이 또 변경돼 추가로 내려가는 기관은 없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측은 “이전 예정인 36개 기관 외에 추가로 중앙행정기관의 이전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래서인지 금융위원회와 신설되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이 ‘인기 부처’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관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두 위원회는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는다. 특히 금융위의 경우 그동안 공무원들 사이에 기피 부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직원 수에 비해 업무량이 많다고 소문난 부서여서 금융위를 지원하는 공무원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알려질 만큼 기피 대상이었다는 것.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즉 금융위를 지원하는 공무원이 갑자기 많아졌다는 것이다. 기피 부서가 인기 부서로 탈바꿈한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 금융위가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신설된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지원하는 공무원도 많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2012년 이전 예정인 국토해양부 한 주무관은 “직원들이 동요는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며 “공무원 전·출입업무를 지원하는 행안부 심사임용과 직원들이 최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으로 바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귀띔했다.
그만큼 전·출입 희망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안부 심사임용과 이인호 과장은 “세종시 때문에 특별히 바빠진 건 없다”며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전·출입은 정기인사와 같은 특정 시기와는 관계가 없다. 전·출입 지역의 티오(T/O)가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쉽게 말해 두 지역 간 맞교환 상대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 가장 먼저 세종시로 내려가는 기획재정부 인사과 측은 “다른 곳(세종시로 내려가지 않는 부처나 부서)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며 “공무원 전·출입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첫마을 아파트 투자가치는 회의적지난해 11월 8일 과천 정부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공무원 대상 첫마을 분양설명회.
게다가 “혹시 과천처럼 큰 수익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반영돼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크게 인정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김일수 씨티프라이빗뱅크 부동산팀장은 “정확히 말하자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며 투자가치로서 의구심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김 팀장은 “첫마을 아파트는 실수요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에 임대사업을 하기는 좋겠지만 투자가치를 보고 들어가기는 힘들다”며 “그 지역에서 3.3㎡당 640만원은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분양가”라고 털어놨다. 과천이나 대전과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김 팀장은 “도시 접근성과 생활편의시설, 편리한 교통수단, 우수한 교육환경 등 많은 면에서 세종시를 과천이나 대전에 빗대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라고 말했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 역시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학군 등이 좋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요소들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과천과 비교할 순 없다”고 말했다.
첫마을 아파트의 분양가가 주변 시세에 비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세종시 첫마을 1단계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640만원. 인근 연기군의 아파트 평균 분양가가 500만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비싼 분양가다.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성택)의 불만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2단계 분양가는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 작정이냐’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첫마을 아파트 분양가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비싼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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