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s Letter] 도시 유랑민

    입력 : 2011.05.20 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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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라고 하면 당연히 모든 세대가 가정집인 줄 알았습니다. 비록 1층은 각종 공구류와 기계부품을 판매하는 상가가 차지하고 있지만 2층부터 7층까지의 각 세대는 당연히 살림집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삿짐을 들고 3층 복도로 들어섰을 때 힘겹게 깜박거리는 형광등 불빛이 복식건물 내부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복도 양쪽으로 길게 줄을 선 세대별 현관의 문패는 모두 소규모 봉제공장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래도 아파트라며 전화 한 통으로 전세 계약한 대학 신입생 아들의 첫 서울집이었습니다. 지금은 철거된 청계천 7가의 삼일아파트입니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 옛일입니다.

    이후 일곱 차례의 전세를 전전하다 내 집으로 입주하는데 꼬박 20여년이 걸렸습니다. 그나마 도심에서 떨어진, 교통 불편한 외곽지역입니다. 결국 4년 만에 다시 전세생활을 선택했습니다.

    조만간 또 이사를 해야 합니다. 서울에서만 꼭 10번째입니다. 계약만기일을 앞두고 임대인으로부터 무려 8000만원의 전세금 인상을 통보받았기 때문입니다. 임대인은 8000만원 인상이 어렵다면 현재의 전세금에 월 50만원의 월세만 추가해 달라고 친절을 베풉니다. 처음 들어보는 반전세라고 합니다. 이사할 수밖에요.

    서울생활에서 집은 서민들에게 영원한 딜레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채권자가 되어 하우스푸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내 집을 가지지 못한 세입자들은 2년마다 도시를 유랑하는 철새로 살아야 합니다. 유랑생활도 도심에서 외곽으로 전전하다 서울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의 저서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에 등장하는 근대 초 유럽 서민의 주거생활과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지요. 당시 아돌프 브랑키를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자와 박애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위해 주택개량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입주를 원하는 노동자들은 주택기금 형식으로 분양을 받아 평생 대출금을 갚도록 했습니다. 집이라는 소유물을 갖는 대신 평생 주택기금의 노예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주택기금의 노예를 거부하면 유랑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전염병과 범죄를 이유로 마을이 불태워지거나 폐쇄되면 이사를 해야 했고, 옮겨간 마을은 얼마가지 않아 또 전염병과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됩니다. 결국 주택기금에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경은 다르지만 하우스푸어와 2년 주기의 철새가 돼버린 서울 서민들의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서민이 주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십 년을 들어왔지만, 그래도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전세 대책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한정곤 Luxmen 편집장 jkha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호(2011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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