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ing] “쫄깃한 것이 꼭 겨울꼬막 맛이시”

    입력 : 2011.05.20 16: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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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가 외서댁과 관계를 맺고 나서 내뱉는다. “흐흐흐, 내 눈이 보배는 보배여. 보기 존 떡이 묵기도 좋드라고, 외서댁을 딱 보자말자 가심이 찌르르 허드란 말이여. 고 생각이 영축 읍이 들어 맞어 뿌렀는디, 쫄깃쫄깃한 것이 꼭 겨울꼬막 맛이시.”

    외설도 이쯤 되면 우리 말뽄새의 한 전통을 이룰 것 같다. 어쨌든 염상구가 극찬(?)한 겨울 꼬막의 맛이 기막히긴 기막히다.

    J가 차를 몰아 여수와 순천을 돌아 당도한 곳은 벌교였다. 자그마한 읍내의 한길가에 요란한 현수막에 내걸렸는데 ‘1박2일 소개’ ‘케이비에스, 엠비씨에 나온 집’ 따위의 선전 문구가 가득했다. 바야흐로 겨울 꼬막의 계절이었다. J는 담배를 빼어 물곤 혼자 중얼거렸다.

    “꼬막은 여자들이 몸으로 밀고 가서 캐는 조개지. 그게 예삿일이 아니고, 그래서 꼬막을 보면 나는 슬퍼져. 벌교 사람들의 몸과 살은 벌교 여자들 수고인 셈이지.”

    꼬막은 저 너른 ‘뻘’에 여자들이 널빤지를 타고 진정 몸으로 밀면서 캔다. 그 고단한 수고와 노동을 보면 정말 J처럼 숙연해질 것이다.

    조개는 대개 봄에 맛이 든다. 산란을 앞두고 한껏 먹어둔 영양이 차곡차곡 살 속에 쌓인다. 씹으면 진하고 고소한, 유식한 말로 아미노산이 가득한 감칠맛이 우러나온다. 서해안이면 바지락, 동해안이면 비단조개로 국을 끓이면 진득한 감칠맛이 국물에 배어 나와 혀가 아리기까지 하다. 그게 봄 조개의 맛이다. 마늘 한 쪽, 파 한 줌 넣을 필요 없이 조개 몇 개로 한 그릇의 국 맛을 완성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꼬막은 겨울에 제맛이 올라온다. 꼬막 말고는 홍합 정도가 겨울에 맛있는 조개일 것이다. 2월 이르게 새조개가 시중에 풀리지만 야들야들하고 진한 맛은 아직 품어내지 않는다. 그러니까 겨울 조개의 왕은 꼬막인 셈이다.

    꼬막은 서해안에도 있지만 벌교와 순천 등의 남서해안가 것을 최고로 친다. 갯벌이 잘 발달해 먹이가 풍부하고 유기물이 꼬막 속에 충분히 배어들어 맛이 좋다. 특히 벌교 일대의 참꼬막은 일품이다. 서울에서는 대개 골이 가늘게 배열된 새꼬막이 풀리고, 전라남도 일대나 가야 참꼬막을 많이 볼 수 있다. 골이 울퉁불퉁 깊고 옹골찬 조선 기왓장 꼴이다. 마치 먼 길 떠나는 스님이 쓴 주름진 삿갓 같기도 하다. 보기에도 일품이고 맛도 있어 보인다.

    꼬막의 맛은 뭐랄까, 바다의 맛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벗어나는 무엇이 있다. 잘 삶은 꼬막은 살이 터질듯이 팽팽한데 도톰한 살집 밖으로 한껏 부푼 막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막 속에 짜고 고소하며 감칠맛 도는 ‘액체’가 들어 있다. 바닷물과는 사뭇 다르고, 그렇다고 미더덕이나 멍게 속의 체액 같지도 않은 어떤 것이다. 그 액체는 약간의 비린 맛이 있어서 혀를 휙 감고 돈다. 아릿한 맛 뒤에 천천히 저 개펄의 뒷맛을 전해준다.

    J가 고른 집은 강호동의 얼굴 사진도, 하다못해 ‘방송에 전혀 안 나온 집’이라는 장난스러운 글귀조차도 없이 먼지 이는 길가 구석에 소복하게 엎어져 있는 낮은 지붕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는 자못 1970년대 풍으로 돌아가는 기운이었던 것이다. 드르륵 끼익, 미닫이가 늘 그렇듯이 한번쯤 레일 위에서 비틀거렸고 그 소리에 스웨터를 입은 아주머니를 일으켰다. 그녀는 뜨끈한 방에 앉아 하염없이 무얼 까고 있었다. 무엇이겠는가, 꼬막이지. 숟가락을 맵시 있게 쥐어 들고 커다란 왕꼬막의 뒷꼭지를 열어 연신 꼬막을 열었다. 뚝뚝, 핏물 같은 꼬막 속즙이 흘렀다. 워메, 이게 꼬막보다 몸에 더 존 것이여. 아주머니가 속즙을 마시라는 시늉을 하고 웃었다.

    평생 꼬막을 캤고, 이젠 허리가 굽어 식당에 앉아 꼬막을 깐다. 그리고 우리 같은 외지인에게 이른바 ‘꼬막정식’을 팔아 생계를 한다. <1박2일>이 그녀의 삶을 좀 윤택하게 해준 것일까. “없어. 뭔 경기. 다 깍쟁이들이라 그냥 그렇구만.”

    흐흐, 그녀가 웃었다. 그럴 것이다. 텔레비전이 몰아주는 반짝 인기는 그야말로 ‘1박2일’이기 십상이다. 전파처럼 흘러가면 그만인 것이다.

    꼬막은 캘 때는 고되고 삶을 때는 신경을 좀 써야 한다. 꼬막 잘 삶으면 시집도 예쁘게 간다고 한다. 뭔가 비결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끓는 물에 찬 물 한 바가지를 넣고 꼬막을 우르르 넣었다. 밤톨만한 꼬막들이 수북하게 솥에 들어앉는다. 그리고 불을 천천히 올리고 꼬막을 주걱으로 저었다. 반드시 한쪽 방향으로만 젓는다. 그래야 꼬막이 잘 까진단다. 침침한 먹물 같은 꼬막의 체액이 흘러나와 물색이 탁해진다. 다시 물이 끓기 전에 불을 끈다. 꼬막이 입을 벌리지 않았는데.

    “입 벌리믄 꼬막은 이미 찔겨부러. 못 먹어.”

    꼬막은, 읍내에서 만난 벌교 사람들처럼 입이 무거운 모양이다. 묵묵하게 다문 입속에 살이 알맞게, 촉촉하게 익었으니. 삶은 꼬막은 상온에서 살짝 식혀서 그대로 까서 먹는다. ‘정식’에는 꼬막으로 전도 부치고 무침도 하지만 그냥 ‘숙회’가 가장 맛있다. 쇳내 나는 묘한 향과 탱탱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꼬막 살이면 그만이지 무슨 요리를 하겠는가. 꼬막 살 구석구석을 씹으니 ‘뻘’의 질감이 다가온다. 갯바람 속에서 그 꼬막을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인다.

    [박찬일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 / 사진 = 정기택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호(2011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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