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x] 나쁜 남자의 추억…가학의 판타지

    입력 : 2011.04.22 18:02:19

  • 사진설명
    우리 사회가 점점 기존의 전통적 성의식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섹스’에 대해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공중파의 드라마에서도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던 동성애를 다루고, 변태나 정신병의 일종으로 여기던 사디즘·마조히즘(SM)이 소설이나 영화로 흔히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SM을 대중적인 영화로 끌어들인대표작은 장정일의 원작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거짓말(2000)>이다. 내 경우에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감정이입이 어려워 끝까지 보기를 포기해 버렸지만 신경질적으로 생겨 비쩍 마른 남자가 가냘픈 여고생과 함께 여관방에 들어가 냄새를 맡으며 정사를 벌이는 이 예쁜 구석 없는 영화를 좋아할 여자들은 아마 별로 없을 듯하다. 아무리 사회에 대한 비판과 관심을 두고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싶어 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당대의 이슈가 된 영화였다 하더라도 성기가 아닌 다른 신체부위를 자극하고 회초리로 서로 때려가며 상처를 내는 장면들과 익숙하지 않은 성도착 행위가 영화 내내 펼쳐지고, 조폭도 아니고 각목까지 등장하니 불편할 수밖에. 그때는 내가 SM 혐오자이기에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수년 후 <세크리터리(Secretary, 2002)>를 만났다. 같은 사도마조히즘이라도 이 영화 속의 남녀는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 이 영화의 SM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던 원동력은 남자 주인공 ‘제임스 스페이더’의 연민을 느끼게 하는 눈빛과 섹시함이라는 걸 부인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자해하는 습관 때문에 요양원에 들어갔다 나온 20대 초반의 여성 리 할로웨이(매기 질렌홀 분)는 구인광고를 낸 에드워드 그레이(제임스 스페이드 분)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다. 리의 보스가 된 중년의 근사한 변호사 에드워드 그레이는 우연히 리가 자해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보스와 비서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는 쓰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방법으로 서로 교감을 나눌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된다.

    에드워드는 리가 타이핑한 문서에서 오타가 나올 때마다 오타를 낸 글자에 빨간 펜으로 표시를 해놓고 리의 엉덩이를 때리며 벌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리는 에드워드에게 맞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에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리는 그만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에드워드가 처음 리의 엉덩이를 때렸을 때 에드워드의 행동은 ‘폭력’이기 전에 ‘사랑’으로 느껴진다.

    사진설명
    ‘폭력’ 이전에 ‘사랑’ 하지만 에드워드는 완전히 나쁜 남자가 아니다. 리의 도발에 넘어가 리에게 폭력적 가학을 되풀이하는 와중에도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져든다.

    리는 자신의 피학성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에드워드를 사랑하지만 완전히 나쁜 남자가 되지 못하는 에드워드는 자신의 비뚤어진 일탈을 견딜 수 없다. 에드워드가 리의 오타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리의 잘못을 눈감아 주자 그녀는 실망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전에 없이 무관심하게 구는 에드워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결국 에드워드는 리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해고된 리는 평범한 남자친구였던 피터와 잘 지내보려 한다. 그러나 피터의 조심스럽고 신사적인 성행위는 그녀에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 다른 파트너를 찾아도 보지만 리에겐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은 오직 에드워드뿐이다. 이쯤 되면 리에게 가해지는 매질과 처벌을 차라리 응원하게 된다.

    만일 에드워드가 리처럼 자신의 가학성을 완전히 받아들인 진정한 나쁜 남자였다면 이 영화는 긴장감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인공 남자가 가학성은 숨어있되, 그것을 혐오하는 일반남성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에 영화 속 에피소드들은 계속 묘한 긴장감을 띠고 전개된다.

    어느 날 야동을 훔쳐보던 중 여자가 눈이 가려진 채 남자의 무릎 위에 엎드려 엉덩이가 빨개지도록(애교스러운 찰싹거림이 아니라 체벌에 가까운) 맞으면서 묘한 신음소리를 내는 장면을 발견하고 페니스가 액션을 시작한다. 더 더욱 이런 섹스가 자신만 모르지 이미 남들은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상상과 혹시 이런 것들이야말로 나의 지루한 섹스라이프에 한줄기 빛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나쁜 남자를 꿈꾸는, 완전히 나쁜 남자는 아닌 적지 않은 남자들에게 묶거나 때리면서 행하는 지배적인 섹스는 로망이다. 그렇게 권태기 극복을 위한 판타지로 SM을 기웃거리면서도 원초적 가학성의 나쁜 남자로 낙인찍히기는 두렵다. 모든 여성들의 본성 깊숙이에는 묶이고 싶고 짓밟히고 싶은 매저키스트적 특성이 숨어있다고 믿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본인 내면의 가학성을 발견하고 모든 여성들은 원초적으로 매저키스트적 본능이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나쁜 남자’들이여. 여자들은 대개 SM물을 혐오스럽거나(서구 영화는 그래도 ‛동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지지만 일본 영화는 거의 강간물 수준이다. 강제와 강압은 혐오스럽다) 코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여자들을 상대로 SM을 하자고 섣불리 덤비면 안 된다. 남녀 모두 자신 안의 사드적·마조적 성향이 있다 하더라도 인정하고 살지도 않지만 이런 성향이 모든 이에게 다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욕망이 충족되면 더 큰 욕망이 생겨나듯이 SM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더 큰 가학과 피학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힘들어 한다. 모든 인간에게 조금씩은 존재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 안의 양심과 욕망이 충돌할 때 인생이 괴로워지는 것이다. 실제로 권태기 극복을 위해 SM에 빠져든 커플이 불과 몇 달 만에 부부관계를 청산하는 경우도 보았다.

    SM은 극도로 가볍고 진지하지 않은 기분으로, 그러나 사전에 진지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즐길 수 있겠다고 이해하지만 솔직히 하지 않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이미 섹스라이프에는 실제로 눈을 가린다든가, 가볍게 엉덩이를 친다든가, 손을 묶는다든가, 가슴을 살짝 깨문다든가, 키스마크를 남기는 정도의 소프트한 SM은 사용되지 않는가. 굳이 위험요소를 안고 권태기를 극복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뭘 하던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책임감을 가진다면 할 말 없다.

    [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원장 www.mizlove.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호(2010년 11월) 기사입니다]



    [화보] 포미닛 현아의 19禁 유혹, '남心 초토화'

    결혼·출산 늘고 이혼 줄고…경기가 좀 풀려서 그런가

    10만원 '뚝' 성능은 '쑥' 전략 스마트폰…내달 출시 봇물

    '무슬림女 벗은 몸' 플레이보이에 실려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백지연의 '끝장토론', 서태지-이지아 14년간의 비밀결혼 사생활 대중기만일까?

    김종서, 서태지 팬들에게 트위터 통해 "믿고 기다려보자" 격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