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환의 진짜 미국 AI 스토리] (3) 트럼프가 닫은 미국 대학 문, 한국 학생에겐 기회 될 수도

    입력 : 2026.10.07 10:48:10

  • 올해 미국 대학 입시는 이상하다. 트럼프는 문을 좁히고 있고, AI는 대학의 가격표를 흔들고 있다. 10월이면 미국 대학 입시는 본격적인 승부에 들어간다. 11월 초 Early Decision과 Early Action 마감을 앞두고 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과 부모들은 마지막 지원 전략을 짠다. 그런데 올해 한국에서 부모들을 만나면 예전과 조금 다른 질문을 듣는다. 예전에는 “어느 대학이 좋습니까?”가 많았다면, 요즘은 “지금 같은 때에도 미국 대학을 보내는 게 맞습니까?”라는 질문이 더 자주 나온다.

    여기에는 두 개의 불안이 겹쳐 있다.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이다. 학생비자를 포함한 비이민 비자 심사는 까다로워졌고, 졸업 후 미국에 남아 취업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안도 커졌다. 다른 하나는 AI다. ChatGPT가 논문을 요약하고, 코딩을 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까지 설명하는 시대에 4년 동안 막대한 돈을 들여 미국 대학에 가는 것이 과연 예전만큼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나는 두 불안을 조금 다르게 본다. 둘 다 미국 대학의 문을 닫는 사건이라기보다, 미국 대학의 ‘가격’과 ‘가치’를 다시 매기게 만드는 사건에 더 가깝다.

    숫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최근 미국 대학의 국제학생 지원은 전년보다 줄었고, 특히 아시아 지원자의 감소가 눈에 띄었다. 미국 대학에 처음 등록하는 신규 국제학생도 감소했다. 비자와 졸업 후 체류,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실제 지원 행동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버드나 스탠퍼드가 갑자기 쉬워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최상위권 대학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그러나 입시는 절대점수만의 게임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얼마나 지원하느냐에 따라 지원자 풀의 모양도 달라진다. 문이 쉬워진 것이 아니라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본과 투자 현장을 오래 보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불확실성은 위험이지만 동시에 가격을 움직인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몰릴 때보다 사람들이 겁을 먹고 물러설 때 예상하지 못한 틈이 생긴다. 입시가 투자와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지원자들의 심리가 움직이면 상대적인 기회도 움직인다. 국제학생들이 미국 비자와 졸업 후 취업을 걱정해 지원을 줄이는 순간, 충분히 준비된 학생에게는 평소라면 망설였을 한 단계 위 학교를 두드려볼 이유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올해 명문대가 쉬워졌다”는 식의 입시 컨설팅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열린 ‘자유를 위한 하버드 학생 시위’에 모인 학생들이 유학생들을 지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열린 ‘자유를 위한 하버드 학생 시위’에 모인 학생들이 유학생들을 지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AI는 대학을 죽이는가

    더 큰 변화는 AI다. 요즘 “AI 시대에도 대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유행처럼 번진다. 그러나 미국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보면 질문 자체가 조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질문은 “대학에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대학에 얼마를 내고 갈 가치가 있는가”에 더 가깝다.

    미국의 최근 대졸자 노동시장은 이미 심상치 않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안정적인 화이트칼라 직업이 보장되는 시대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AI가 당장 미국의 모든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먼저 사라지는 것은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배우던 반복적이고 초급적인 업무다. 보고서 초안을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고, 간단한 코드를 짜고, 리서치를 하던 일을 AI가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경험을 쌓는 첫 번째 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어떤 것의 가격을 먼저 떨어뜨리고 있느냐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 매뉴얼에 있는 지식,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지식은 AI가 매우 잘 처리한다. 반면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 사이에서 배우는 감각이다. 좋은 선배를 보며 익히는 판단, 협상과 설득, 실패를 통해 쌓이는 경험, 사람을 읽고 관계를 만드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에 가깝다. AI는 대학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중간한 대학의 가격표’를 공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 내용을 AI가 몇 초만에 설명해주고, 유튜브와 온라인 강의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을 거의 공짜로 배울 수 있다면 좋은 대학은 앞으로 무엇을 팔아야 할까. 나는 그것이 ‘기회의 밀도’라고 생각한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어떤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는지, 어떤 창업가와 투자자를 만나게 되는지, 어느 기업에서 첫 인턴십을 하는지, 졸업 이후 어떤 동문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일하며 자본과 기업, 사람의 이동을 오랫동안 지켜본 내 눈에는 좋은 미국 대학도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처럼 보인다. 수업은 그 플랫폼의 일부일 뿐이다.

    4년에 5억~6억원, 무엇을 사는가

    이 지점에서 부모의 질문은 훨씬 현실적이어야 한다. 뉴욕과 보스턴의 주요 사립대에 자녀 한 명을 보내면 장학금이나 재정보조 없이 전액 부담할 경우 학비와 기숙사비, 생활비를 합쳐 4년에 5억~6억원이 들 수 있다. 환율과 생활비, 항공료까지 생각하면 그 이상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미국 대학이 좋은가”가 아니라 “이 대학은 과연 그 돈을 받을 만큼 좋은가”를 물어야 한다. 지식만 사는 것이라면 AI가 훨씬 싸다. 강의만 듣는 것이라면 인터넷에 더 좋은 선택지가 넘친다. 그러나 최고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좋은 교수와 연구하며,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와 졸업 후에도 작동하는 네트워크를 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대학은 AI 시대에 오히려 더 강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올가을 미국 대학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에게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무조건 악재일까.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국제학생 지원 심리가 위축되고 미국 유학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모든 사람이 똑같이 물러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교육과 네트워크가 여전히 장기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학업과 활동이 충분히 준비된 학생이라면 평소보다 한 단계 위 학교를 지원 리스트에 넣어볼 이유는 있다. 그것은 “올해가 쉬우니 질러보라”는 입시 요령이 아니다. 모두가 미국의 문이 닫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미국 내부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판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이민정책과 AI는 미국 대학의 종말을 알리는 두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대학이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드는 두 개의 충격에 가깝다. 지금 한국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 대학에 대한 막연한 낙관도, 공포도 아니다. 자녀의 4년과 5억~6억원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더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사진설명

    장준환 변호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이자 문화경제 전략가.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대학원·로스쿨을 마친 뒤, 뉴욕을 기반으로 프라이빗 웰스, 투자, 부동산, 기업 구조 자문을 해왔다. 〈장준환의 진짜 미국 AI 스토리〉에서는 미국이 먼저 겪는 AI 시대의 산업·교육·부·취업 변화를 한국 독자에게 전한다. 저서로 <K가 죽어야 K가 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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