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44) 가격인상 시대에 럭셔리 주얼리를 읽는 법 “오늘이 가장 싸다”

    입력 : 2026.09.07 11:13:51

  •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 요즘 럭셔리 주얼리 매장에서 인사처럼 오가는 말이다. 올 1월 ‘까르띠에’가 국내 주얼리와 시계 가격을 인상하면서 러브 브레이슬릿 미디엄은 970만원에서 1050만원이 됐다. 지난해에도 몇 차례 오른 뒤였는데 올해 인상은 연초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까르띠에는 5월에 시계 가격을 다시 조정했고, ‘부쉐론’은 2월에 이어 7월에도 가격표를 새로 썼다. ‘반클리프 아펠’은 1월과 3월 두 달 간격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한 해 두세 차례 오르는 일이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가격이 거듭 오르는 동안에도 주얼리 매출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7월 잇따라 공개된 럭셔리 그룹 세 곳의 실적에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주얼리의 약진

    세 그룹에서 나란히 좋은 성적을 낸 부문은 주얼리였다.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을 비롯한 리치몬트 주얼리 브랜드의 4~6월 매출은 (환율 변동을 빼면) 24% 늘어 7분기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다. ‘루이 비통’과 ‘티파니’의 모기업 ‘LVMH’도 시계·주얼리 부문 성장률이 1분기보다 2분기에 높아졌고, ‘구찌’와 ‘부쉐론’을 보유한 ‘케링’ 역시 상반기 주얼리 매출이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LVMH의 패션&가죽 부문은 상반기 역성장한 뒤 2분기에 소폭 반등했고, 케링의 간판 구찌는 12분기째 매출 감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부진 속에서도 주얼리는 팬데믹 특수가 끝난 뒤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 시장 전체를 봐도 비슷했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개인 럭셔리 상품 시장은 소폭 줄었고 가죽 제품과 신발도 고전했다. 반면 주얼리는 주요 품목 가운데 성적이 가장 좋았다. 최근 몇 년 럭셔리 업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이 ‘엘리베이션’이다. 상품 구성과 가격대를 높이고 상위 고객의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여기에 금 시세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이 겹쳤다. 하지만 리치몬트는 연차 보고서에서 가격을 선별적으로 조정했다고 설명했고,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전부 반영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실버에서 하이 주얼리로

    지난 4월, 필자는 뉴욕에서 열린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히든 가든(Hidden Garden)’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했다. 프라이빗 뷰잉 사흘째였는데 이미 판매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당수였다. 판매 완료 표시가 붙은 작품도, 고객에게 인도돼 비어 있는 자리도 여럿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티파니 하이 주얼리의 호조를 현장에서 실감했다. LVMH는 2021년 티파니를 인수한 뒤 실버 비중을 줄이고 골드와 하이 주얼리의 비중을 확대해왔다. ‘락(Lock)’ 컬렉션에서는 실버를 아예 배제했다.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히든 가든(Hidden Garden)’.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히든 가든(Hidden Garden)’.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하이엔드 고객을 유치하고 고가 주얼리 판매를 늘리는 일이 핵심이라고 블룸버그에 밝힌 바 있다. LVMH 경영진에 따르면 인수 후 4년 동안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매출은 세 배로 늘었고, 실버 매출은 3분의 1넘게 줄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전한 티파니 내부 추정치에 따르면 LVMH 인수 전 약 500달러였던 미국 고객의 평균 지출은 2024년 당시 2000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두 개의 시장

    국내에서는 국산 파인 주얼리와 백화점 럭셔리 주얼리의 성적이 크게 엇갈렸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파인 주얼리 시장은 6.9% 위축됐고, 핵심 소비층인 30대의 구매액도 감소했다. 같은 해 신세계백화점의 럭셔리 주얼리 매출은 31% 늘었다. 두 시장은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부터 다르다. 국산 파인 주얼리는 금 시세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시세가 오르면 소재 비용 상승이 판매가에 빠르게 반영된다. 럭셔리 브랜드 주얼리는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 더 복합적이다. 소재뿐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희소성, 디자인과 세공의 가치까지 가격에 포함된다. 럭셔리 브랜드는 한 컬렉션 안에서도 가격대를 세분화한다. 예를 들어 올 3월 부쉐론은 ‘아이코닉 컬렉션 콰트로’에 ‘클래식 XS(엑스트라 스몰)’ 반지를 추가했다. 폭을 줄인 이 제품의 국내 가격은 737만원으로, 1280만원인 스몰 사이즈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케링은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부쉐론의 기록적인 매출에 콰트로 XS가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최고가 제품과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의 제품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을 업계에서는 하이-로(High-Low) 전략이라 부른다. 베인앤드컴퍼니도 2024년 보고서에서 이를 주얼리의 강세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오늘이 가장 싸다’의 속뜻

    최근 몇 년 잇단 가격 인상을 겪은 소비자에게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은 꽤 현실적으로 들린다.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음 인상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구매를 고민하던 제품이라면 다음 인상 전에 결정을 서두르기 마련이다. 재판매 시장도 빠르게 커졌다. 번개장터가 올봄 공개한 지난해 거래 자료에서 주얼리 거래액은 1년 사이 381% 늘어 전체 품목 가운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불가리 비제로원 화이트 골드 목걸이’는 등록 53초 만에 거래가 성사됐을 정도다. 번개장터는 명품을 필요할 때 다시 처분할 수 있는 자산으로 여기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금 시세가 여전히 높은 만큼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가격인상이 모든 럭셔리 제품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럭셔리 업계 매출의 35~40%는 할인 판매에서 나왔다. 특히 하이 주얼리는 가격표만 보고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스톤의 품질과 희소성, 감별서, 출처와 보존 상태에 따라 재판매 가치가 크게 달라지고, 일률적인 시세표가 없어 작품마다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예술품 시장에 더 가깝다.

    주얼리가 실적 발표의 주인공이 된 여름은 흔치 않았다. 올해 실적을 다시 들여다보고 나니 매장에서 듣던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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