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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혁명 시대 ― 韓·美·中 휴머노이드 경쟁
입력 : 2026.09.04 15: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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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공장에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탑재한 제조 설비가 인간 없이도 스스로 생산 라인을 책임지고 돌발 상황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물류센터에서는 로봇이 돌아다니며 재고를 나르고 부품을 조립한다. 가정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빨래를 개고, 노인 돌봄을 돕는다.
이 같은 풍경이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배경에는 키워드 ‘피지컬 AI’의 부상이 있다.
피지컬 AI는 말 그대로 물리 세상 속에서 동작하는 AI를 말한다. 자율주행차, 카메라, 로봇 등 AI를 탑재한 다양한 하드웨어에서 인간처럼 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특히 2022년 챗GPT 등장 후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의 시대가 열린 뒤, 이제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같은 현실 세계 속 AI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생성형 AI와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기술 경쟁이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작업하는 ‘피지컬 AI’로 확장되면서다.
휴머노이드의 기본은
물리 세상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AI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챗GPT, 클로드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생성형 AI로 불린다. 프롬프트가 요청하는 내용에 따라 결과물을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형식으로 생성해내기 때문이다. 만약 LLM이 텍스트를 입력받으면, LLM은 사전 학습된 내용과 신경망을 통해 다음 문장에 올 가장 적절한 텍스트를 추론하고, 이를 통해 답을 생성한다.
피지컬 AI는 이 같은 사용자의 명령 외에도,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바라보는 주변 세계를 입력받아 이해해야 하며 로봇이라면 자신의 상태 또한 파악해야 한다.
물론 이전에도 생산 라인의 로봇처럼 AI 기반으로 자동화된 설비들은 존재했다. 다만 이런 설비들은 사전에 입력된 규칙 기반의 제한된 작업만 수행했다면, 현재 업계가 바라보는 피지컬 AI는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추론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의 AI다.
미국의 휴머노이드 스타트업인 피규어AI는 로봇과 인간의 택배 분류 대결을 진행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기업의 로봇인 ‘피규어 03(F.03)’은 택배 분류라는 요청 사항에 기반해 택배 박스를 집어올리고, 바코드 위치를 파악해 바코드가 아래를 향하도록 박스를 정렬해 컨베이어벨트에 놓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로봇의 두뇌가 되는 AI 모델은 요청 이해는 물론 현실 세계 파악, 로봇 하드웨어의 보행과 조작까지 통제해야 한다.
GPT, 클로드와 같은 똑똑한 LLM을 로봇에 탑재한다고 해서 피지컬 AI가 완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물리 세계를 파악해 빠르게 다음 행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두뇌 역할의 AI부터 해당 AI를 학습하기 위한 현실 데이터, 그리고 AI의 판단을 현실 세계로 옮길 수 있는 하드웨어가 모두 필요하다.
피지컬 AI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배경에는 이미 현실 세계에서 효용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피규어AI가 진행했던 택배 분류 대결에서는 인간 직원이 휴머노이드 로봇보다 빠른 속도를 보이긴 했으나, 피규어AI의 별개 실험에서 3대의 로봇들은 잠도 안 자고 교대로 200시간 연속 작업을 수행하며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임을 보여줬다.
휴머노이드 기술 구성도피지컬 AI 기술이 완성되기 위한 층위는 크게 AI 모델, 데이터, 하드웨어로 구분된다.
로봇의 두뇌인 모델단으로 들어가면 ‘비전언어행동(VLA) 모델’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월드 모델’ 등 다양한 개념이 등장한다.
우선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RFM은 로봇의 범용 두뇌 역할을 하는 AI 모델을 의미한다. 대규모 사전 학습 과정을 거쳐 다양한 작업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의 로봇 AI는 특정 작업에 국한해 모델을 최적화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RFM은 다양한 환경과 하드웨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RFM이 큰 갈래라면 VLA 모델은 이를 구현하는 현재의 주류 방식이다. LLM이 텍스트를 입력받아 텍스트를 출력한다면, VLA는 시각 정보인 비전(Vision)까지 이해하고, 행동(Action)까지 생성해내는 모델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장에 배치된 기존 로봇들은 다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정확하게 입력된 행동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제는 그런 식으로 구현할 수 없는 작업들까지 해내는 것이 VLA”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식탁에 사과가 놓여 져있는 거실 공간에 대한 이미지와 식탁에서 사과를 집으라는 명령을 입력받으면, 모델은 명령과 공간을 동시에 이해한 뒤 ‘앞으로 다섯 걸음 간 다음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사과를 집어 올린다’와 같이 필요한 행동을 적절히 출력하는 것이다.
구글,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와 피지컬 인텔리전스, 피규어AI와 같은 로보틱스 스타트업들이 만드는 모델들이 대표적인 VLA다. 구글의 경우 지난해에 모델 ‘제미나이 로보틱스 1.5’를 선보였는데, 시각 정보를 이해하고 지시를 받아 로봇의 동작 명령으로 변환하는 VLA 모델이다. 제미나이 로보틱스 1.5는 복잡한 명령 수행을 위해 두 개의 모델이 협업하는 구조인데, 하나의 모델이 두뇌 역할을 맡아 로봇 행동을 총괄한다면 다른 모델은 앞선 모델의 지시를 받아 구체적인 행동을 실행하는 식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로봇이 현실 세계에서 복잡한 다단계 작업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두 가지 새로운 AI 모델인 ‘제미나이 로보틱스 1.5’를 공개했다. 로봇 모델의 표준을 노리는 엔비디아는 ‘그루트(GR00T)’ 모델을 개발하는데, 자사의 월드 모델 플랫폼인 코스모스를 통해 생성한 학습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엔비디아는 로봇을 가상으로 훈련하고 검증할 수 있는 개발 플랫폼인 ‘아이작 심(Isaac Sim)’도 제공하면서 로봇 기술 생태계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피규어AI는 모델 ‘헬릭스’를, 구글 딥마인드 출신들과 학계 석학들이 뭉친 피지컬 인텔리전스는 ‘파이제로(π0)’라는 이름의 모델을 개발한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인 리얼월드, 컨피그인텔리전스 등이 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메타 수석과학자 출신인 얀 르쿤 뉴욕대 교수가 강조하는 개념인 ‘월드 모델’은 접근법이 다르다. 앞선 모델들이 시각 입력과 지시를 기반으로 다음 행동을 도출한다면, 월드 모델은 특정 행동 이후 외부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까지 예측하는 것에 집중한다. 르쿤 교수가 창업한 AMI 랩스도 이 월드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플랫폼인 코스모스도 미래 장면을 생성하고 예측하는 월드 모델로 분류된다.
이 같은 모델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LLM은 온라인상 존재하는 다양한 텍스트를 긁어 학습에 활용했지만, 피지컬 AI 모델을 위한 행동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 특히 로봇의 경우 행동 지시뿐만 아니라 물건을 쥘 때 손가락의 움직임과 힘, 미끄러짐 같은 물리적인 데이터까지 필요하다.
수집 방식은 크게 세 갈래다. 사람이 로봇을 원격 조종해 작업을 진행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텔레오퍼레이션 기술이 있으며, 사람이 작업을 진행하는 영상을 로봇 학습용 데이터로 변환해 활용하기도 한다. 사람이 직접 시간을 들여 수집해야 하는 병목을 보완하기 위해, 가상 세계에서 특정 상황을 만들어 데이터를 얻는 합성 데이터 기법도 있다.
데이터로 모델을 완성했다면 다음 과제는 이를 탑재할 하드웨어다. 가장 먼저 상용화된 피지컬 AI로 볼 수 있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카메라, 센서 등이 탑재된 자동차가 하드웨어인 셈이다. 최근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인간이 작업하고 생활하는 공간이 인간 구조에 맞게 설계된 만큼, 이를 인간처럼 활용할 수 있는 형태의 로봇이 주목받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필요한 하드웨어 기술의 종합체다. 모델의 추론을 수행하는 AI 반도체부터 세상을 지각하는 센서, 로봇 관절을 동작하는 액추에이터, 하드웨어를 구동하는 배터리 등이 모두 탑재된다.
국가 차원 전력 투구 양상
지난 1월 현대자동차와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아틀라스 로봇이 무대 위에 서 있다. <사진 연합뉴스> 휴머노이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한 영역으로 꼽힌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50년 5조 달러(약 7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기존의 공장 로봇을 넘어서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2040년까지 전 세계에서 수십억 대가 운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2026년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넘어 공장과 가정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는 ‘양산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도 따른다. 이에 한국과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기술 안정화와 상용화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 선점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인간과 피지컬 AI의 새로운 공존 시대 개척을 위한 이른바 한·미·중 ‘휴머노이드 삼국지’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와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상용화 경쟁을 이끌고 있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옵티머스(Optimus)’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옵티머스가 장기적으로 자동차 사업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테슬라는 자사 공장에 옵티머스를 투입해 반복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실증 작업을 진행 중이며, 향후 대량생산 체계 구축에도 나설 계획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앞세워 산업 현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 아틀라스를 그룹 생산 거점에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휴머노이드 부품 공급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상용화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추격도 무섭다.
중국은 강력한 내수 부품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가격 파괴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가 내놓은 저가형 휴머노이드 ‘R1’의 본토 출시가는 단돈 2만9900위안(약 670만원)에 불과하다. 수억원을 호가하던 기존 서구권 로봇의 가격 공식을 완전히 깨뜨린 셈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스텔라 리 BYD 부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라고 밝히며, BYD의 자동차 딜러 네트워크를 활용한 판매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BYD는 2024년부터 로봇 분야 연구 인력 채용을 확대해왔다. 유니트리, 유비테크, 애지봇 등 중국 로봇 기업들도 정부 지원과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양산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휴머노이드 보급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빠르게 양산에 돌입해 출하량 면에서 미국을 앞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은 약 1만3000대 수준이었는데, 중국 기업이 상위 5위까지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리딩 제조기업들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정밀 부품 자산을 결집해 미·중 틈새를 파고드는 ‘피지컬 AI(Physical AI)’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현대차그룹이 있다. 자회사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에 구글 딥마인드의 최신 AI를 이식하고, 현대모비스가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를 공급하며, 현대차·기아 공장이 최종 수요처를 맡는 완벽한 내부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아직 로봇 시장에서는 기술 개발과 실제 사업성 사이에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휴머노이드의 경우 복잡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제어·조작 기술을 확보해야 하고 가격과 안전성, 대량생산 능력도 갖춰야 한다. 기술 시연을 실제 수익 사업으로 연결하는 것이 향후 경쟁의 핵심인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경쟁도 특정 로봇 제품을 먼저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AI와 데이터, 핵심 부품, 제조 역량을 함께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피지컬 AI 시대에 얼마나 빠르게 시장을 선점할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김병수 기자 ·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