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스바겐 10만 명 자른다” ‘중국 포비아’ 덮친 글로벌車업계

    입력 : 2026.09.03 16:39:54

  • 독일 ‘국민기업’ 폭스바겐은 최대 10만 명 감원, 독일 내 공장 4곳 폐쇄 등을 골자로 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독일 ‘국민기업’ 폭스바겐은 최대 10만 명 감원, 독일 내 공장 4곳 폐쇄 등을 골자로 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세계 최대 자동차그룹 중 하나인 폭스바겐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 기로에 섰다. 중국 자동차 업체와의 경쟁 격화와 유럽 자동차 시장의 성장 둔화, 미국의 관세 부담이 동시에 덮쳤기 때문이다. 이미 독일에서 3만 5000명 이상의 인력을 줄이기로 한 폭스바겐은 추가적인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공장 폐쇄까지 검토하며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기존 구조조정에 더해 최대 5만 명가량을 추가로 줄이고 독일 공장 4곳의 폐쇄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 기존 감원 계획과 추가 구조조정이 모두 현실화할 경우 전체 감원 규모가 10만 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폭스바겐의 최대주주 측에서도 구조조정을 보다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의 구조조정 규모는 이미 상당하다. 폭스바겐그룹의 전 세계 임직원은 지난해 말 중국 합작사를 포함해 약 66만30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독일에서 근무하는 인원만 약 28만4000명이다. 독일 최대 제조업체 중 하나인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경우 독일 자동차 산업과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폭스바겐은 앞서 노조와 합의를 통해 2030년까지 독일 사업장에서 3만5000명 이상의 인력을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줄이기로 했다. 독일 내 생산능력 역시 연간 73만 4000대 줄이고 인건비와 개발비, 생산비 등을 대폭 절감한다. 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연간 150억 유로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자동차 산업 역사상 최대 구조조정

    하지만 기존 구조조정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확산하고 있다. 폭스바겐을 지배하는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투자회사 포르쉐SE도 최근 폭스바겐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이 단순한 인력 감축을 넘어 생산 규모와 제품 종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판매량 확대를 위해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모델을 정리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 핵심 차종에 투자를 집중하는 방식이다. 폭스바겐이 이처럼 극단적인 비용 절감에 나선 가장 큰 배경으로는 중국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각변동이 꼽힌다. 한때 중국은 독일 자동차 업체들의 ‘황금시장’이었다.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은 독일에서 개발한 자동차를 중국에서 판매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특히 폭스바겐은 일찌감치 중국 현지 합작사업에 진출하면서 중국 자동차 시장 성장의 최대 수혜 업체 중 하나로 꼽혀왔다.

    그러나 전기차 전환을 계기로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BYD와 지리자동차 등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이 자국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뿐 아니라 배터리와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포테인먼트 등에서도 경쟁력을 높이며 기존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업체 간 치열한 가격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막대한 생산능력을 확보한 중국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면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자 기존 글로벌 업체들도 가격 인하 압력을 받고 있다. 중국 업체와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동시에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발생한 것이다.

    독일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 앞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일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 앞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일 자동차 업체의 고민은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중국에서 판매량을 유지하려면 현지 업체들과 가격 및 기술 경쟁을 벌여야 하지만, 가격을 낮추면 수익성이 악화한다. 반대로 가격을 유지하면 시장점유율을 중국 브랜드에 내줄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공세는 이제 중국 내수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생산능력을 키운 업체들이 유럽과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 기존 완성차 업체의 안방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배터리와 부품 공급망을 자국 내에 구축해 원가를 낮추고 대규모 생산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기차뿐 아니라 PHEV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대중차 시장에서 폭스바겐과 현대차·기아, 도요타 등과 직접 맞붙고 있다.

    중국 자동차, 유럽 시장 침투 빨라

    중국 자동차의 유럽 시장 침투도 빠르다. 중국 브랜드들은 유럽에서 전기차를 중심으로 판매를 확대하면서 기존 유럽 업체들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은 현지 생산과 판매망 확대 등을 통해 유럽 공략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자동차 산업 입장에서는 과거 일본과 한국 자동차 업체가 유럽 시장에 진입했던 때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셈이다. 중국 업체들은 완성차뿐 아니라 배터리와 핵심 소재·부품까지 수직계열화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기업들은 유럽 자동차 공급망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인수한 유럽 자동차 부품 업체만 130곳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완성차 판매를 넘어 유럽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 자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은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자동차 산업이 처한 위기를 상징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부품업체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독일 주요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전기차 전환을 위한 막대한 투자 부담과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 중국 부품업체들이 생산 효율성을 높이며 비용을 낮추는 동안 독일 업체들의 비용 부담은 오히려 증가하면서 경쟁력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산업의 중심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이동한 것도 독일 업체에는 부담이다. 엔진과 변속기 등 내연기관 기술에서는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오랜 기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전기차에서는 경쟁의 법칙이 달라졌다. 배터리 가격과 전기·전자 기술,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차량 경쟁력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산업의 경쟁축이 ‘기계공학’에서 ‘배터리·전자·소프트웨어’로 빠르게 이동한 것이다. 폭스바겐 역시 전기차와 차량용 소프트웨어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왔지만 기존 내연기관 사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래 기술에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수십만 명의 직원과 대규모 생산시설을 보유한 전통 완성차 업체가 상대적으로 조직이 가벼운 신생 전기차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미국 시장에서는 관세라는 또 다른 장벽과 마주하고 있다.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생산비와 공급망 부담을 키우면서 유럽 업체들은 북미 현지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까지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에서는 점유율을 지켜야 하고, 유럽에서는 수요 둔화에 대응해야 하며, 미국에서는 관세 부담을 줄여야 하는 ‘삼중고’에 빠진 셈이다.

    폭스바겐만의 문제도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를 비롯한 독일 완성차 업체들도 잇달아 비용 절감과 조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판매량을 늘리는 것보다 수익성이 높은 차량과 핵심 시장에 자원을 집중하고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계에서도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량과 차종을 줄이면 부품 업체의 주문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 산업을 떠받쳐온 완성차-부품업체 생태계 전체가 구조조정 압력을 받는 상황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이른바 ‘중국 포비아’가 확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완성차 시장 공략에 나선 가운데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중국 자동차의 시장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고율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통해 중국 자동차의 시장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유통업계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막대한 생산능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저가 차량을 공급하기 시작하면 기존 자동차 산업의 경쟁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더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내 해외 자동차 브랜드 딜러들을 대표하는 미국 국제자동차딜러협회(AIADA)는 중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시장 진입을 장기적으로 제한하는 입법을 촉구하며 ‘노 차이나 오토스(No China Autos)’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AIADA에는 9400여 개 딜러가 소속돼 있다. 미국 자동차 딜러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다. 중국에서 전기차 생산능력이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내수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이 해외시장으로 쏟아질 경우 미국 자동차 산업도 유럽과 비슷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자동차딜러협회(NADA) 역시 중국 자동차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전에 관세와 산업 정책을 통해 진입 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대중 규제 범위 확대 나서
    사진설명

    미국 정부도 관세를 넘어 자동차의 소프트웨어와 통신 기술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러시아와 연계된 커넥티드카 기술이 적용된 차량의 수입과 판매를 제한하고 자동차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공급망에서도 중국 업체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이다.

    미국이 중국 자동차를 시장 밖에서 차단하려는 사이 유럽에서는 이미 중국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폭스바겐의 대규모 구조조정과도 맞닿아 있다. 중국 업체의 성장이 중국 내 폭스바겐의 판매 기반을 흔드는 동시에 중국산 자동차가 유럽으로 밀려들면서 본토 시장에서도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 시장이 독일 자동차 업체의 성장 동력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독일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발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된 셈이다.

    중국발 자동차 산업 재편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중국 업체가 직접 진출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에서 생산한 차량도 판매되면서 국산차와 직접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에서 생산되는 테슬라 모델Y다. 모델Y는 지난 7월 국내에서 8705대가 팔려 현대차 더 뉴 그랜저 8532대를 제치고 승용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지난 5월에도 8762대를 판매해 당시 국산차 판매 1위였던 기아 쏘렌토의 8561대를 넘어섰다.

    사진설명

    현대차도 수입 전기차의 가격 공세에 대응해 할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대차는 지난달 시작한 할인 프로모션 ‘썸머 페스타’를 이달까지 연장하면서 대상 차종을 기존 7종에서 12종으로 확대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팽창이 두 방향에서 압박으로 작용한다. BYD와 같은 중국 브랜드가 직접 국내에 진출하는 동시에 중국에서 생산되는 글로벌 브랜드 차량까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 방식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규모 공장을 확보해 생산량을 늘리고 글로벌 판매망을 확대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 원가와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 신차 개발 속도, 생산 유연성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변수로 부상했다. 수백 개의 차종과 파생 모델을 생산하는 전통 완성차 업체의 강점이 오히려 고정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폭스바겐이 제품군과 생산능력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산업 변화와 맞닿아 있다.

    특히 독일 자동차산업은 내연기관 시대에 엔진과 변속기, 정밀 기계기술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했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 공급망과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등에서도 빠른 속도로 기존 완성차 업체를 따라잡고 있다”며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느냐 보다 시장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고 수익성 있게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하느냐가 완성차 업체의 생존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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