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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60억원 시대’ 초럭셔리 시니어 레지던스 등장
입력 : 2026.08.26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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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60억원에도 13.4대1 몰려… 월 1000만원의 노후는 무엇을 파나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초럭셔리 시니어 레지던스’를 내건 새로운 주거상품이 등장했다. ‘소요한남 by 파르나스’는 111실 모집에 1483명이 신청해 평균 13.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시행사 측은 전용 108㎡ 6실에는 339명이 몰려 경쟁률이 56.5대1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최고 보증금이 60억원을 넘고 1인 기준 월 기본 부담이 1000만원을 웃도는 상품에 자산가 수요가 몰린 셈이다. 이 숫자는 한국의 고급 실버타운이 외곽의 전원형 주거에서 도심의 호텔·의료·생활관리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요한남이 내세운 것은 넓은 집만이 아니다. 한남동이라는 주소와 호텔식 서비스, 건강관리, 입주민 전용 커뮤니티를 하나의 장기 거주상품으로 묶었다. 다만 가격이 높아질수록 계약서가 답해야 할 질문도 많아진다. 60억원 대 보증금은 얼마나 안전한지, 2029년 입주 이후에도 서비스 품질이 유지될지, 병원과 가까운 것이 실제 의료 경쟁력으로 연결될지를 따져봐야 한다. 소요한남의 청약 흥행은 부유층 노후 소비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인 동시에 초고가 시니어 주거가 검증받아야 할 과제를 앞당겨 보여주는 사건이다.
60억원의 문턱 앞에 1483명이 섰다소요한남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730번지 일원에 들어서는 60세 이상 대상 임대형 시니어 레지던스로, 전체 111가구이며 입주는 2029년 2월로 예정돼 있다. 전용 99㎡ 표준형 보증금은 48억5900만~54억5800만원, 전용 108㎡는 52억6600만~60억6700만원이다.
월 임대료 264만원에 1인 생활비 780만원을 더하면 월 기본 부담은 1044만원이다. 2인이 거주하면 생활비와 임대료를 합친 기본 비용이 월 1154만원 수준으로 올라간다. 식사와 일부 선택형 서비스는 별도여서 실제 지출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상품은 일반 아파트처럼 소유권과 향후 매매차익을 얻는 구조가 아니라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고 거주권과 생활 서비스를 구매하는 임대형 상품이다. 입주자는 자산 가격 상승분 대신 가사와 식사, 건강관리, 여가, 커뮤니티 서비스를 얻고 운영사는 장기간 입주율과 서비스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소요한남 전경 조감도. 업계는 소요한남 흥행의 핵심 배경 중 하나는 한남동이라는 입지를 꼽는다. 한남더힐과 나인원한남 등 고급 주거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살던 자산가들이 기존 생활권과 인간 관계를 크게 바꾸지 않고 노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과 리움미술관, 한남동 상권이 가깝다는 점도 외곽형 실버타운과 다른 요소다.
다만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니어 레지던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요한남이 입지와 하이엔드 서비스를 갖춘 단지임에도 현재 존재하는 경쟁 업체나 인근 아파트 단지와 비교해도 높은 가격 수준”이라며 “순천향병원이 바로 인접해 있어서 의료 서비스 측면에서는 크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가 숙제”라고 지적했다.
집 한 채가 아니라 24시간의 운영을 산다소요한남의 상품 구조는 일반 공동주택보다 호텔에 가깝다. 파르나스 호텔이 24시간 컨시어지와 주간 버틀러, 하우스키핑, 다이닝 서비스를 맡고 차움·차헬스케어가 건강관리 서비스를 결합한다. 주간에는 버틀러 한 명이 6~7가구를 담당하고 컨시어지는 24시간 운영되는 방식으로 소개됐다. 세대 내부에는 문턱과 단차를 줄인 설계, SOS 호출 장치, 낙상과 심박·호흡 이상을 감지하는 생활 센서 등이 적용될 예정이다.
건강관리 부문에서는 주간 전문의와 24시간 교대 간호 인력, 차움의 건강검진 및 관리 프로그램, 순천향대 서울병원과의 의료협력 등이 제시됐다. 입주민 전용 커뮤니티에는 수영장과 수중 트레드밀, 사우나, 골프연습장, 라운지, 영화관, 취미 공간 등이 들어선다. 다이닝은 매달 일정 횟수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의무식보다 입주자가 필요할 때 선택하는 방식에 가깝게 설계됐다.
소요한남 커뮤니티 시설 예시 결국 입주자가 구매하는 것은 부동산 면적보다 생활의 마찰을 줄이는 운영 시스템이다. 청소와 식사, 예약, 건강 확인, 문화생활, 이웃과의 교류를 한 건물 안에서 해결하는 대가로 높은 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시니어 주거의 품질은 시설 개수보다 서비스가 끊기지 않는 시간에서 갈린다. 야간에 누가 응답하는지, 간호 인력이 어디까지 대응하는지, 응급상황에서 병원 이송이 어떤 절차로 이뤄지는지가 실제 생활의 안전을 결정한다. 소요한남의 경쟁력 역시 준공 당시의 인테리어나 시설보다 입주 5년, 10년 뒤에도 같은 인력 밀도와 서비스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남·건대·용인, ‘3대장’의 가격표는 왜 이렇게 다른가
더클래식 500 전경. 소요한남 등장 이전 대표적인 하이엔드 시니어 레지던스로 비교되는 곳은 서울 광진구의 더클래식500과 경기도 용인의 삼성노블카운티다. 가격표를 나란히 놓으면 소요한남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더클래식500의 2026년 3월 공식 비용표상 보증금은 10억원이며 계약기간은 3년이다. 1인 기준 월 이용료 175만원, 공동관리비 267만6000원, 평균 세대 공과금 약 30만원, 의무식 20끼 32만원을 단순 합산하면 월 기본 부담은 약 504만6000원이다. 공과금과 식사량, 부가서비스에 따라 실제 지출은 달라진다.
삼성노블카운티 일반 세대의 전액 보증금형은 평형에 따라 5억8000만~15억8000만원이다. 1인 월 생활비는 212만~360만원이고 월 90식 식비 95만원을 더하면 약 307만~455만원이다. 프리미엄 세대는 보증금 6억 8000만~10억3000만원이며 1인 생활비와 식비를 합친 월 부담은 약 426만~512만원이다.
이에 비해 소요한남 표준형 최고 보증금 60억6700만원은 더클래식500 보증금의 약 6배, 삼성노블카운티 일반 세대 최고액의 약 3.8배에 이른다. 1인 월 기본 부담 약 1044만원도 두 시설이 공개한 비용의 상단을 넘어선다. 다만 이 비교를 단순한 가성비 순위로 읽기는 어렵다.
소요한남은 서울 핵심지의 신축 대형 주거와 높은 인력 밀도의 호텔 서비스를 가격에 포함하고, 더클래식500은 건대입구의 도심 생활권과 건국대병원 연계를, 삼성노블카운티는 넓은 부지에서 독립생활부터 의료와 요양까지 연결되는 복합단지를 각각 강점으로 삼는다. 더클래식500은 지하철과 대학병원, 백화점, 문화시설을 걸어서 이용하는 도심형 생활을 제안한다. 삼성노블카운티는 독립적인 주거생활과 건강 악화 이후의 의료·요양 서비스를 한 부지에서 연결하는 데 가깝다. 소요한남은 현재의 한남동 생활권을 떠나지 않으면서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자산가를 겨냥한다.
세 시설의 가격표는 국내 시니어 주거시장이 저소득층 지원시설과 고가 민간시설의 양 극단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중산층이 선택할 만한 도심형 상품은 부족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삼성노블카운티 커뮤니티 시설. 은행과 보험사가 노후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시니어 레지던스 경쟁의 다음 주자는 건설사와 호텔만이 아니다. 은행과 보험회사가 요양시설과 시니어 주거, 자산관리 서비스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기 시작했다. 고령 고객의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데서 나아가 어디에 살고 누구에게 돌봄을 받을 것인지까지 관계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2016년 설립 이후 요양시설과 데이케어센터, 은퇴자 주거 서비스 운영망을 확대해왔다. 다만 2025년 매출 216억원에 순손실 104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시니어 케어가 수요 증가만으로 곧바로 이익이 나는 사업은 아니라는 점도 드러냈다.
토지와 건물, 전문 인력, 식음과 의료협력에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하고 시설 가동률이 안정되기 전까지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신한라이프는 자회사 신한라이프케어를 통해 2026년 1월 프리미엄 요양시설 ‘쏠라체 홈 미사’를 열었다. 64명 정원에 전실 1인실을 적용하고 금융과 생활, 돌봄 서비스를 결합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이 시설을 “금융·주거·의료 서비스를 한 공간에 담아낸 곳”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 은평과 해운대 등으로 시설을 확대하는 계획도 제시했다.
삼성생명은 2025년 100% 자회사 삼성노블라이프를 설립했고 삼성노블카운티를 통합해 신규 시니어 사업 개발 기능을 강화했다.
삼성노블카운티 커뮤니티 시설. 하나금융 계열 하나더넥스트라이프케어도 고양 지축에 150명 규모의 시설을 착공해 2027년 9월 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주목하는 것은 시설의 입주 보증금만이 아니다. 은퇴자산 운용과 연금, 신탁, 상속·증여, 건강관리와 돌봄이 한 고객의 생애 안에서 연결된다는 점이다. 고령 고객과 수십 년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시니어 주거는 금융회사에 장기 고객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금융 브랜드가 곧 운영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요양과 주거 서비스는 금융상품 판매와 다른 노동집약 산업이며 숙련 인력의 이직률과 식음 품질, 감염관리, 야간 대응 능력이 시설의 수익성과 만족도를 좌우한다. 금융권의 진출이 공급 확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 운영 적자를 견딜 자본과 현장 서비스 전문성을 함께 갖춰야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여전히 부족한 시니어 주거시설고령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건강한 노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식사와 안전, 건강관리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주거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를 차지하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통계청은 이 비중이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요양시설을 제외한 시니어 주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요양시설을 제외한 국내 시니어 주거의 수용 규모는 전체 고령인구의 약 0.23%에 불과하다. 이를 고령인구의 1% 수준으로 높이는 데도 현재보다 약 4.3배 많은 공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정부 역시 시니어 레지던스를 고령자 친화적 주거 공간에 가사·건강·여가 서비스를 결합한 시설로 규정하고, 고령자가 건강과 소득 수준에 맞는 주거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공급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일례로 정부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사업자가 토지와 건물을 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사용권을 통해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리츠의 사업 참여와 인구감소지역의 분양형 시니어 주택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병원과 보험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실버타운 및 요양 서비스만으로는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기에 역부족”이라며 “민간 참여를 확대해 다양한 수요층의 주거 요구를 해소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이를 위해 리츠 등 자금조달 방식을 다양화하고 민간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과 설립·운영비 지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