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Z는 트렌드를 만들고 돈은 X세대가 쓴

    입력 : 2026.08.11 10: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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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에서 촉발된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논란이 뜨겁다. 한쪽에선 “그만 퇴장하라” 하고 또 다른 쪽에선 “간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어와 표현은 다르지만 양쪽 다 “기득권을 놓고 성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더 이상 민주화의 성과를 독점해선 안 된다”는 말도 들린다. 여기서 잠깐, 과연 이러한 생각과 주장이 일반적인(정치인이 아닌) 86세대에게도 보편적인 일상일까. 86세대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X세대의 삶이 궁금해진 이유다.

    데이터로 본 대한민국 50대 남자

    X세대는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태어난 세대다. 그러니까 86세대는 대한민국 X세대의 큰형님뻘이다. 정책이나 인구학적 통계 연구에선 좀 더 넓게 1964년부터 1980년생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늘날 한국의 X세대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의 나이에 생산과 소비를 지탱하는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그들 각자의 삶은 다사다난하다. 어쩌면 가장 복잡한 생애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자녀는 독립을 준비하거나 이미 독립했고, 부모 세대의 부양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본인의 은퇴 시계는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은퇴 예비군’이다. 정말 그럴까.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올 3월 국가데이터처,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살펴보면 가구주가 50대인 가구의 순자산은 5억5161만원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평균 자산 역시 6억6205만원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에서 지갑이 가장 두꺼운 세대는 여전히 50대라는 의미다. 부동산에 자산이 묶여 있으면서도 자산 총량은 가장 크고, 건강 지표는 악화되는데 건강에 지출하는 금액은 늘고 있다. 소비의 무게중심이 자녀에서 자신으로 옮겨가는 세대적 전환점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들은 단순한 은퇴 예비군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 제2막을 설계하는 능동적 소비·투자 주체’로 떠올랐다. MZ세대가 트렌드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 트렌드에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건 여전히 X세대다.

    여전히 가장 두꺼운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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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안전부가 집계하는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50대는 859만314명(전체 인구의 16.6%)으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인구 집단이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출생, X세대의 주력이 여기에 몰려 있다. 인구 비중이 큰 만큼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 앞서 언급했듯 자산 측면에서 50대의 위상은 더 뚜렷하다. 소득 구성에서도 사업소득은 50대 가구주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임금 근로 이외의 소득원을 다변화한 세대라는 특징이 확연하다. 다만 이 자산의 이면에 쏠림 현상도 도드라진다. 전체 가구 자산의 75.8%가 실물자산이다. 부동산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70%를 웃돈다. 2주택 이상을 보유한 50대의 비중은 17.9%로 전 연령 중 가장 높아 자산가이면서 부동산에 갇힌 세대라는 이중적 정체성이 눈에 띈다.

    소득 구조를 세대별로 비교하면 50대의 위치가 더 선명해진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근로소득은 40대, 사업소득은 50대, 공적이전소득·재산소득·사적 이전소득은 60세 이상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고 집계했다. 다시 말해 50대는 근로소득 중심의 40대와 이전소득·재산소득 중심의 60대 사이에서 사업소득(비법인기업의 주인이 사업체를 운영해 얻는 순수입)이라는 독자적인 소득 축을 가진 유일한 세대다. 재취업이나 은퇴보다 현역으로서 사업·부업 확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젠 나를 위한 소비…

    지난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10년 치(2014년, 2024년 자료 기준)를 분석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이란 보고서는 50대 소비 행태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녀 교육비 부담이 정점을 지난 50대는 우선 ‘자녀를 위한 소비’에서 ‘나를 위한 소비’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보고서는 이 시기의 지출이 뷰티 디바이스, 홈 인테리어, 간편식 구매 등으로 재배치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세대 간 소비 양극화도 지적하고 있다. 20~30대가 여행, 외식, 오락 등 경험 소비에 집중하는 반면 40대는 헬스장, 스크린골프 등 자기만족형 취미를, 50대는 건강과 여가에 중심을 둔 소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세대 평균소비성향이 2014년 74%에서 2024년 70.7%로 낮아지는 동안, 60대의 하락 폭(6.9%포인트)이 가장 컸던 것과 비교하면 50대의 소비 여력은 상대적으로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보건 항목 지출 비중의 확대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보고서는 이 증가분이 단순 질병 치료 목적이 아니라 상당 부분 미용 목적의 시술, 진료를 포함하고 있다고 짚었다. ‘아프지 않기 위한 지출’에서 ‘더 나아 보이기 위한 지출’로 50대 보건 소비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가계 수지에서도 이 흐름이 확인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5년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에서 교육 지출은 전년 동분기 대비 감소세를 이어간 반면 음식·숙박과 기타 상품·서비스 지출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자녀 교육이라는 고정비가 줄어든 자리를 외식, 여가, 자기관리 성격의 지출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단순한 지출 항목의 이동이 아니라 가계 재무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새로운 소비 패턴, 웰에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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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대의 지갑이 향하는 곳은 명확하다. 건강, 외모, 그리고 여가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KB골든라이프보고서’를 보면 노후 행복의 핵심 요소로 ‘건강’을 꼽은 응답이 전 연령대에서 공통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경제력보다 건강이 우선순위로 올라서는 변곡점이 바로 50대 전후에서 나타난다. 이 같은 흐름은 ‘저속노화(Slow Aging)’라는 신조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젊은 세대가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저속노화를 50대는 실제 구매력을 동반한 소비로 실행에 옮긴다. 건강기능식품, 정밀 건강검진,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피부과, 성형외과의 안티에이징 시술까지, 50대는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보기 좋게’라는 세 가지 욕구를 직접 소비로 실현하는 세대다. 취미 소비의 성격도 달라졌다. 과거 50대의 여가가 등산, 낚시 등 저비용, 정적 활동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골프, 사이클, 러닝 등 장비와 레슨이 필요한 능동형 취미로 확장되는 추세다. 50대에게 취미는 더 이상 시간을 때우는 활동이 아니다. 인생 2막을 구성하는 투자 항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전히 무대 위…

    다시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86세대 퇴장론으로 돌아가보자. 이들을 아우르는 일상의 X세대는 실제 소비와 생산이 이뤄지는 시장에서 여전히 가장 활발하게 지갑을 여는 주인공이다. ‘자녀’를 향했던 지출이 ‘나’로 방향을 돌리고,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산이 조금씩 건강과 취미로 흘러나오는 변화는 이 세대가 조용히 물러나는 대신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트렌드의 언어를 만드는 건 분명 MZ세대다. 저속노화, 웰에이징, 홈 인테리어, 필코노미 등의 단어들은 모두 젊은 세대의 화법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트렌드가 실제 시장으로, 매출로 옮겨가는 지점에는 늘 X세대의 ‘결제’가 있었다. 언어는 MZ가 만들고 문법은 X세대가 완성하는 공식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안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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