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AI | PartⅢ] 인재 확보 전쟁 | ‘SK는 학력을 버렸다’ AI가 바꾼 반도체 인재의 조건

    입력 : 2026.08.10 17:57:48

  • 학벌과 스펙 중심의 채용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 능력과 학습 역량, 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학벌과 스펙 중심의 채용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 능력과 학습 역량, 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반도체 산업의 경쟁 공식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더 미세한 공정을 확보하고 더 많은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이제는 AI 반도체를 설계하고 첨단 공정을 구현할 핵심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 여부와도 맞닿아 있다. 첨단 팹과 연구시설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시대에는 설계와 공정, 패키징,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핵심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양성하느냐가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채용 전략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학벌과 학점, 어학 점수 등 정형화된 스펙보다 직무 역량과 프로젝트 경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엔비디아, TSMC, AMD,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채용 방식은 물론 산학협력과 연구개발(R&D), 사내 교육까지 전면 재편하며 인재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AI 시대 반도체 패권 경쟁의 중심에는 더 이상 공장과 장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을 먼저 확보하는 기업이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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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의 파격… 학력보다 역량 선택

    SK하이닉스는 올해 신입사원 채용에서 반도체 인재 확충 전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모집요강에 명시했던 ‘4년제 학사 이상’ 학력 요건을 삭제하고 지원 자격을 직무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다. 반도체 설계와 소자, 공정, 연구개발(R&D) 등 핵심 기술직은 물론 일반 직군까지 학력 제한을 없애고 직무 수행 능력과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기로 했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더 이상 학벌이나 학점 같은 정형화된 기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변화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지원 자격을 완화한데 그치지 않는다.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는 회로 설계 능력뿐 아니라 AI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 프로그래밍 역량,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와 협업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인재가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채용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지원자의 학력이나 전공보다 실제 프로젝트 수행 경험과 연구 실적, 문제해결 능력, 프로그래밍 역량 등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는 추세다. 대학에서 어떤 과정을 이수했는지보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기술을 구현했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채용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 셈이다. 반도체 산업이 AI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업들의 채용 기준도 자연스럽게 실무 역량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역량 중심 채용 자체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1995년 ‘열린 채용’을 도입하며 신입사원 공채 지원 자격에서 학력은 물론 국적과 성별, 나이, 출신 지역 등 형식적인 제한을 없앴다. 특정 배경보다 지원자의 잠재력과 직무 역량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철학을 30년 가까이 유지해온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메모리 산업에서는 공정 기술과 생산 효율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AI 시대에는 HBM과 첨단 패키징,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시스템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회로 설계와 공정, 패키징, 소프트웨어, 시스템 아키텍처를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만큼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졌다.

    반도체 기업들이 찾는 인재도 더 이상 ‘좋은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다양한 분야를 연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형 인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조성될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중요한 과제다. 첨단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설계와 공정, AI, 첨단 패키징 분야의 핵심 인재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지역에서 양성할 수 있는 생태계를 갖춰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비디아·TSMC까지 글로벌 인재 확보 나서

    AI 반도체 패권 경쟁은 이제 기술과 생산능력을 넘어 사람을 확보하는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차세대 공정과 생산시설 투자만큼이나 핵심 엔지니어 채용을 미래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십과 신입 채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컴퓨터 아키텍처와 회로 설계, AI 소프트웨어, 로보틱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AI 컴퓨팅 플랫폼과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미래 개발자 생태계를 확대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는 인재 부족을 가장 큰 경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웨이저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현재 회사가 가장 부족한 것은 인재”라고 밝히며 숙련 엔지니어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독일 등으로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지만 첨단 공정을 운영할 숙련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글로벌 생산 확대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인재 확보 경쟁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전통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주로 경쟁했다면 이제는 엔비디아와 AMD,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 등 AI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는 빅테크 기업까지 동일한 반도체 인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용 맞춤형 반도체 개발이 확산하면서 컴퓨터 아키텍처와 칩 설계, AI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이해하는 엔지니어의 몸값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AI 반도체 경쟁이 심화될수록 우수 인재 확보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도 대학도 고급 인력 확보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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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인재 부족은 이제 개별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AI 시대에는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할 고급인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주요국들은 인재 양성을 산업정책의 핵심 과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생산시설 유치와 연구개발(R&D) 지원을 넘어 교육과 산학협력, 전문 인력 육성까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생산시설 투자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반도체 교육, 인력 양성에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기반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산업을 유지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다.

    일본도 차세대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 등을 중심으로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와 기업, 대학이 공동으로 차세대 공정과 설계 기술을 연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주요 대학과 협력을 확대해 반도체 전문 인력 육성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을 보유한 대만 역시 오랜 산학협력 시스템을 기반으로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꾸준히 공급하며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주요 대학들이 계약학과와 반도체 특성화대학, 기업 맞춤형 대학원 등을 확대하며 인재 양성 기반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도 대학과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사내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산업계에서는 여전히 고급 연구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AI 시대 반도체 패권 경쟁은 기업 간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가 얼마나 우수한 인재를 꾸준히 길러내고 산업 현장에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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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회로 설계나 공정 기술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엔지니어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이제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함께 이해하는 융합형 인재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반도체 성능 경쟁이 개별 칩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다양한 기술을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설계와 공정, 패키징이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이제 반도체 엔지니어는 자신이 맡은 분야뿐 아니라 제품이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까지 이해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정부는 반도체 특성화대학과 반도체 아카데미를 늘려 반도체 인력 10만 명 양성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반도체 특성화대학과 반도체 아카데미를 늘려 반도체 인력 10만 명 양성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사진 연합뉴스>

    AI는 엔지니어의 역할 자체도 바꾸고 있다. 회로 검증이나 반복적인 설계 작업은 AI가 상당 부분 자동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새로운 시스템 구조를 설계하거나 제품 전체를 최적화하는 창의적인 업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반도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보다 AI를 활용해 더 나은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도 더 이상 장비와 설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면서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며 AI를 활용해 혁신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고 성장시킬 수 있느냐가 기업은 물론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소라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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