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회사 없이도 광고 만든다” 광고업계 생존전략? AI에 물어봐라
입력 : 2026.08.10 11:23:31
-
광고업계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과거 광고대행사와 제작사, 촬영팀, 디자이너가 나눠 맡았던 업무 상당 부분을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신하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영상, 카피까지 글 몇 줄 입력만으로 생성할 수 있는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광고 제작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변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생성형 AI는 광고 시안 제작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실제 상용 광고 제작 단계까지 침투하고 있다. 배너 광고와 상품 상세페이지, 숏폼 영상은 물론 모델 촬영이 필요했던 뷰티·패션 광고까지 AI가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광고업계 안팎에서는 “광고 제작의 민주화가 시작됐다”는 평가와 함께 기존 광고대행사 중심 생태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생성형 AI 플랫폼을 활용한 광고 제작 시스템을 도입한 뒤 일부 광고 제작 비용을 기존 대비 최대 95%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기존에는 촬영팀과 모델, 스튜디오 대관, 후반 편집 등을 거치며 수 주가 걸리던 작업을 AI 기반 이미지·영상 생성으로 대폭 단축한 것이다. 특히 반복 생산이 필요한 배너 광고나 소셜미디어용 짧은 영상 제작에서 효율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LG유플러스가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 광고를 선보였다. 삼성전자 역시 AI 광고 자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의 AI 기반 광고 솔루션을 활용해 삼성닷컴 마케팅 효율을 끌어올렸다. 광고 집행 예산 확대에도 광고비 대비 수익률(ROAS)을 개선하며 AI 기반 광고 운영 효과를 검증했다. DB손해보험도 AI 기반 타깃 광고 시스템을 도입해 신규 고객 유입 확대에 나선 상태다.
뷰티·패션업계 변화에 적극적뷰티·패션업계에서는 변화가 더 극적이다. 뷰티 브랜드 리필드는 신제품 광고 과정에서 모델 섭외와 촬영 대신 생성형 AI를 활용한 상품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제품 사진 한 장만으로 다양한 연출 이미지와 광고 영상을 생성해 상세페이지와 마케팅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패션 브랜드들 역시 모델 촬영 대신 AI 기반 가상 착용 이미지 제작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일주일 이상 걸리던 작업이 하루 만에 끝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광고 제작의 내부화, 이른바 ‘인하우스(In-house)’ 흐름도 빨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광고 제작을 위해 외부 광고 대행사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기업 내부 마케팅 조직이 AI 툴을 활용해 직접 광고를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패션 스타트업은 월 수백만원 규모 광고대행 계약을 종료하고 AI 기반 제작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마케팅 담당자 한 명이 카피, 배너, 영상 편집까지 직접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 변화는 광고업계의 기존 수익 구조에도 균열을 내고 있다. 한국광고총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광고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성장 과실은 제일기획, 이노션, HSAD 등 대기업 계열 인하우스 광고사에 집중되는 분위기다.
반면 중소 광고대행사들은 수익성 악화와 폐업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 디지털 광고대행사 엠포스는 지난해 25년 만에 문을 닫으며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광고업계에서는 생성형 AI가 이 같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 계열 광고사는 데이터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AI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는 반면 중소 독립 대행사는 투자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광고주들마저 직접 AI를 활용해 광고 제작에 나서면서 대행사의 역할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구글, 메타 등 광고 자동생성 기능 강화
플랫폼 기업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메타, 구글, 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광고 자동생성 기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메타는 광고주가 URL과 예산만 입력하면 AI가 광고 크리에이티브 제작과 타깃 설정, 입찰 최적화까지 수행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확대중이다. 구글 역시 AI 기반 광고 추천 기능을 고도화하며 광고 운영 자동화 수준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광고 플랫폼이 광고대행사의 역할까지 흡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재 시장 변화도 감지된다. 카피 초안 작성과 이미지 생성, 숏폼 영상 편집 등 반복 작업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하면서 단순 실행 인력 수요는 줄고 브랜드 전략과 데이터 해석 역량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일부 광고회사는 채용 과정에서 AI 활용 경험과 프롬프트 제작 역량을 평가 요소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AI 광고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해외에서는 케첩 브랜드 하인즈(Heinz)의 AI광고 캠페인이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 케첩 브랜드인 하인즈는 압도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활용해 최근 ‘It has to be HEINZ’라는 AI 마케팅을 선보였다. 하인즈는 이미지 생성 AI에 ‘케첩을 그려보라’고 요청한 결과 상당수 결과물이 자사 제품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 점에 착안했다. 이후 “AI에게 케첩을 상상하게 했더니 결국 하인즈였다”는 메시지와 함께 생성 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했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광고업계에서는 하인즈 사례를 두고 ‘AI를 잘 써서 성공한 광고’라기보다 ‘브랜드 자산을 영리하게 활용한 광고’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 자체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됐지만 결국 차이를 만드는 건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과 맥락”이라며 “하인즈는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조차 브랜드 자산으로 연결시킨 점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반면 실패 사례도 존재한다. 코카콜라는 지난해 연말 시즌 대표 광고를 생성형 AI 기반 영상으로 제작했지만 소비자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상 속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브랜드 특유의 감성적 정서가 약화됐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AI는 속도와 효율 측면에선 압도적이지만 감성이나 브랜드 맥락이 핵심인 광고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개입이 중요하다”며 “AI를 단순 비용 절감 수단으로 접근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AI를 활용한 광고 성공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교육 플랫폼 야나두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숏폼 광고 콘텐츠로 젊은 소비자층 공략에 나섰다. 짧고 강한 메시지, 밈(Meme) 문화를 접목한 콘텐츠를 빠르게 제작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높은 반응을 얻었다. 삼성증권 역시 AI 생성 콘텐츠 기반 영상 시리즈를 확대하며 유튜브 채널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수개월 단위로 진행되던 광고 제작이 이제는 수일 내 반복 테스트가 가능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는 광고회사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광고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촬영 인프라와 제작 인력, 매체 집행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생성형 AI 확산 이후에는 ‘얼마나 빠르게 광고를 만들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브랜드 문제를 정의하고 전략을 짤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광고주들 사이에서도 단순 제작 대행보다 데이터 분석과 브랜드 전략 컨설팅 역량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광고업계 안팎에서는 광고회사의 역할 역시 ‘만들어주는 회사’에서 ‘생각해주는 회사’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배너 제작, 영상 편집, 카피라이팅 같은 반복 업무가 주요 수익원이었지만 이제는 상당 부분 AI가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 전략과 소비자 분석, 성과 최적화 역량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광고회사에 맡겨야 했던 작업을 이제는 브랜드 마케팅팀 직원 한 명이 AI 툴 몇 개만으로 처리하는 시대가 왔다”며 “앞으로 광고회사의 존재 이유는 제작 자체보다 브랜드 문제 해결 능력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광고시장에서도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광고지주사 WPP는 최근 크리에이티브조직을 통합하는 대규모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비용 절감과 AI 중심 조직 재편이 핵심이다. 경쟁사 오므니콤 역시 IPG와의 합병 이후 조직 슬림화에 나서며 AI 중심 운영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광고업계의 구조조정은 단순 경기 침체가 아니라 AI 전환 과정에서나타나는 구조 변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광고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가 광고업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 광고대행사의 역할이었던 기획, 제작, 타깃팅, 성과 분석을 메타·구글·틱톡 등이 플랫폼 내부 AI 기능으로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별도 대행사를 거치지 않고도 광고 제작과 집행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실제 메타의 자동화 광고 시스템 ‘어드밴티지 플러스’는 광고 소재 제작부터 타깃 설정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며 광고 효율 개선 사례를 늘려가고 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선 생성형 AI가 광고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AI가 만든 광고들이 유사한 구도와 비슷한 문법을 반복하면서 콘텐츠 획일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 문제 역시 여전히 논란거리다. 실제 글로벌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AI 생성 이미지의 저작권과 법적 책임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광고 질적 하락 우려도그럼에도 업계의 시선은 생성형 AI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광고 제작 속도는 빨라지고 비용은 낮아지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결국 살아남는 광고회사는 단순히 광고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브랜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설계하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좋은 광고 한 편을 만드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빠르게 테스트하고 소비자 반응을 분석해 성과를 개선하느냐가 중요해졌다”며 “광고업계 역시 제조업처럼 AI 전환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