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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업그레이드한 韓경제, 초격차 유지·산업 간 불균형 해소 관건
입력 : 2026.08.05 15: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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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제기구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번 6월 전망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3월 발표 때의 1.7%에서 2.6%로 무려 0.9%포인트 높여 발표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2.9%에서 2.8%로 낮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에 발표한 전망치에서 세계경제성장률을 1월 전망치인 3.3%에서 3.1%로 낮춘 반면, 한국은 1.9%를 유지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은 낮아지는 반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약 261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6년에는 1~5월 누계만으로 이미 약 1475억 달러(약 222조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153% 증가했다. 특히 2026년 5월 반도체 수출은 371억6000만달러(약 56조원)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전년 동월 대비 169.4% 증가해 수출 증가율이 여전히 높아지고 있다. 이는 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함께 급증한 영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기업의 이윤이 늘고 주가가 한때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실적 호조가 있다. 연초 정부 목표였던 ‘수출 5강’을 넘어 세계 4강으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 1~4월 누적 수출액에서 한국을 앞선 국가는 중국·미국·독일·네덜란드 뿐이다. 네덜란드 수출의 약 40%가 로테르담항을 거쳐 유럽 내륙으로 다시 나가는 재수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생산해 부가가치를 창출한 수출만 놓고 볼 때, 한국은 사실상 세계 4강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수출 세계 4강실제 반도체 산업의 슈퍼사이클은 상당 기간 이어질 공산이 높다. 현재 반도체 경기 확장 국면은 2023년 3월 이후 40개월 째 이어지고 있다. 이는 2000~2020년 다섯 차례 확장기의 평균 지속 기간인 29개월을 이미 넘어선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경기가 꺾이지 않은 이유로 공급보다 수요가 더 빠르게 늘고 있는 시장 구조를 꼽았다. 한은은 “AI 인프라 투자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한 반면 공급 확대 속도는 더디다”면서 “수요 측면에서 이번 확장기는 AI 확산에 따른 산업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가 기대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경쟁적인 투자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이러한 점을 근거로 “글로벌 반도체 경기는 상당 기간 확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라며 “현재 반도체 경기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호조에 힘입어 과거 확장기를 뛰어넘는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러자 정부도 주마가편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총 800조원 규모 메모리 반도체 팹 4기를 구축하는 계획을 내놓으며 지역별 역할 분담 방안을 제시했다. 서남권은 메모리 생산기지, 충청권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패키징 거점, 동남·대경권은 전력반도체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혁신 거점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생산 기반을 분산하고 인공지능(AI)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마이크론,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해외 경쟁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추격하기 위해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는 점은 부담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투자 부담이 계속 커지는 데다, 범용 반도체 수요처인 스마트폰과 PC 시장도 침체기에 접어들면 수요 타격이 불가피하다.
투자 경쟁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선 AI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은행(IB) UB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8년 상반기까지는 메모리 공급 부족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2029년부터는 완만한 다운턴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규모 설비를 구축한 후 다운턴에 접어들 경우 매년 수조원 이상 감가상각을 감수해야 한다는 우려도 적잖다.
산업 간 양극화 그늘
하지만 이 같은 호황과 투자의 이면에는 ‘양극화’의 그늘도 존재한다. 인공지능(AI) 수요 폭증에 힘입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 과실이 일부에만 집중되면서 경제 전반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의 고성장에 대해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만 고용하는 반도체 산업에만 집중된 성장”이라며 “나머지 산업과 노동자들은 AI 호황 혜택에서 소외돼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국 반도체 산업이 이끄는 외형 지표는 화려하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착시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은 가격 급등과 관세 충격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은 나날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정부 개입에도 한국 원화와 대만달러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실장은 “반도체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전체 지표만 보면 경제가 매우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반도체를 제외한 석유화학, 철강, 배터리 등은 중국과의 경쟁 심화와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반도체 호황 과실이 소수에만 집중되면서, 개인은 증시를 통해 혜택을 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개인들이 빚까지 내면서 반도체에 투자하는 배경에는 구조적 양극화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심리가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른 분배 논쟁은 이미 노동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끝에 영업이익의 10.5% 지급안에 합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노사 갈등이 AI 시대의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의 시작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 내에서도 양극화는 존재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에서는 전 세계 1·2위를 다투지만, 후공정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범용 메모리 시대 때는 전공정 중심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해왔지만,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인공지능(AI) 반도체 확대로 후공정 육성이 갈급한 과제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후공정 육성에도 자원을 쏟아부어 K-반도체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후공정 산업은 전공정에 밀려 상대적으로 발전이 뒤처졌다.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글로벌 10대 반도체 후공정 외주기업(OSAT)에는 대만 4곳, 중국 4곳, 미국 1곳이 이름을 올렸다. 국내 기업은 8위를 기록한 하나마이크론뿐이다.
일부에선 반도체 이후를 우려하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다. 1959년 북해 가스전 발견으로 횡재를 누린 네덜란드가 막대한 외화 유입으로 자국 통화 가치가 치솟자, 되레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 경제 침체에 빠진 현상이다. 핀란드의 ‘노키아 신드롬’도 다르지 않다. 한때 핀란드 국내총생산의 4%, 수출의 20%를 혼자 책임지던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다. 지금 삼성전와 하이닉스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당시 노키아 그 이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85%에서 올해 1.66%, 내년 1.52%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2013년만 해도 주요 47개국 중 10위, 2016년에는 13위였던 잠재성장률 순위가 내년에는 32위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거시경제 지표는 전례를 찾기 힘든 호조세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1.7%로, OECD 회원국 중 2위다. 그러나 이는 반도체 단일 업종의 호황이 만들어낸 착시 효과에 가깝다. 반도체 이외의 산업과 내수는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인구 고령화와 노동 공급 감소, 생산성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안고 있다. 반도체가 받쳐줄 때, 경제 구조 전체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