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 리츠 최초 기업회생 신청, 제이알리츠 사태 일파만파 ― 위축된 리츠 투자심리 회복은 언제쯤…

    입력 : 2026.07.14 13: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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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벨기에에 소재한 오피스에 투자하면 투자자들에게 매년 고배당을 주겠다고 선언하며 증시에 입성한 제이알글로벌리츠. 국내 최초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로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국민 리츠’라 불렸다.

    그런데 이제는 몰락의 상징이 됐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최근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상장 리츠 최초로 기업회생 신청을 했다. 주식 거래는 그 즉시 중지됐고, 2만8000여 명의 은퇴 개미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2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자산이 묶인 만큼 시장에선 파장이 굉장히 컸고, 국내 상장 리츠 전반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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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파산 위기일까?

    지난 4월 말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원인은 단기 유동성 위기, 즉 당장 쓸 현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한국투자증권 등으로부터 빌린 400억원의 단기사채를 갚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자금 조달에 실패해 결국 그 돈을 갚지 못했다. 여기에 공모사채 600억원어치의 사채 만기가 도래했는데 이 또한 갚지 못했다.

    원/유로 환율이 급등해 환헷지 정산금이 1000억원가량 발생한 상태도 악재로 작용했다. 환헤지 정산금이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막기 위해 미리 고정해둔 환율과 실제 환율만큼의 차이를 계약 만기 시점에 현금으로 주고받는 금액을 말한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벨기에 파이낸스타워를 편입한 자회사 제이알제26호리츠가 하나은행과 2023년 3억유로 규모의 장외 파생상품 거래 계약을 체결할 때 자회사에 대한 신용 보강 제공을 위해 자금보충약정을 맺었다. 그런데 원화값이 하락하면서 제이알글로벌리츠가 하나은행에 환헤지로 정산해줘야 할 금액이 생긴 것이다.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정말로 갚을 돈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해외 오피스 빌딩인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와 미국 뉴욕 7번가의 498 오피스를 운용하고 있는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해에만 16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현금성 자산도 1000억원에 달하는 등 정상적인 임대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 현지 대주단 일부가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에서 나오는 현금을 유보하면서 캐시트랩(Cash Trap)이 발동했다. 캐시트랩은 채권자 보호를 위해 대주단이 벌어들인 현금을 못 쓰게 막은 상황을 일컫는다. 즉, 번 돈도 마음대로 못 쓰는 상황인 셈이다. 리츠 시장에선 LTV(담보인정비율)가 기준치를 넘겨 담보 대출 조건을 어기면 대주단이 현금을 묶어버리는데, 제이알글로벌리츠가 딱 여기에 해당된 것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가 보유한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의 감정평가 결과 LTV가 61.02%까지 올라가면서 기준치인 52.5%를 넘기게 됐다.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전 제이알글로벌리츠는 투자자들에게 공시를 통해 알렸지만, 일부 신용평가사에서 여전히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 부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캐시트랩이 발동된 후 임대 수익금 인출이 막혔고, 제이알글로벌리츠는 흑자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채 상환과 환헤지 정산금을 위한 유동성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상장 리츠 최초로 기업회생 신청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일단 고배당을 지급하는 리츠에 믿고 투자했던 은퇴 개미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말 기준 제이알글로벌리츠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는 2만8200명이다. 리츠 상품은 개인형퇴직연금인 IRP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고, 안정적인 배당을 주기 때문에 은퇴한 퇴직자들 사이에서 생활비를 목적으로 투자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츠는 소액으로도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금융상품이다. 작은 금액으로도 고배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꽤 인기가 높은 상품인데, 제이알글로벌리츠도 2020년 증시 입성 당시 7%대 고배당률과 벨기에 정부라는 초우량 임차인이 파이낸스 타워에 입주해 있다는 걸 앞세웠고 투자자들 사이에선 한때 국민 리츠로 통했다.

    하지만 고금리로 해외 부동산 자산가치가 급락하자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의 리파이낸싱(자금재조달)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증가로 배당이 감소하기도 했다. 2024년 말 주당 195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던 제이알글로벌리츠는 2025년 6월 배당금을 주당 115원으로 확 낮췄다. 배당 규모가 40%가량 줄어든 셈이라 시장에선 충격이 컸다. 주가 역시 계속 우하향했다. 상장 이후 최고 6000원 선을 돌파했지만 거래 정지 직전엔 1182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공모가와 비교해서도 75% 이상 주가가 하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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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액주주 “유증이라도 하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액주주들은 제이알글로벌리츠를 직접 살리겠다고 나섰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를 통해 모인 제이알글로벌리츠 소액주주연대는 자발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리츠 청산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회생절차 중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한 유상증자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회생절차에서 신규 납입 자금은 기존 채무 변제에 우선 충당되는 구조여서 주주가 증자에 참여하더라도 그 돈이 채권자 몫으로 흘러갈 수 있다. 따라서 주주연대는 유상증자가 채권자와 주주 모두에게 청산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법원에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도 리츠 정상화에 힘쓰고 있다. 일단 스왑 은행인 하나은행과 약 800억원의 환헤지 정산금 만기를 내년 11월 1일로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1000억원 가운데 예금으로 납입한 200억원을 차감한 금액인데,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이번 만기 연장을 계기로 이해관계자들과 성실히 협의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캐시트랩을 해소하기 위한 돌파구로 미국 뉴욕 7번가의 498 오피스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제이알글로벌리츠가 2021년 한화자산운용으로부터 매입한 빌딩 지분 49.9%다. 매각 대금이 유입되면 벨기에 파이낸스 타워의 대출금 일부를 상환해 LTV를 낮출 수 있지만 뉴욕 오피스 지분이 예상보다 헐값에 매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는 상장 리츠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 위축으로 연결되고 있다. 현재 상장 리츠는 총 25개, 시가총액은 9조원 수준이다. 전체 자산 규모만 19조원에 달할 정도로 크다. 올 들어 국내 상장 리츠 및 인프라 펀드들의 흐름을 보여주는 KRX 부동산리츠인프라 지수는 약 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97% 가까이 상승한 것과 비교된다. 특히 해외 부동산 자산을 담고 있는 리츠들의 주가는 크게 하락한 상태다. KB스타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등은 이미 공모가를 하회하고 있으며 올 들어 주가 흐름도 좋지 못한 상태다. 국내 상장 리츠를 편입하고 있는 ETF(상장지수펀드)들도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제이알글로벌리츠 등을 편입하고 있는 TIGER 리츠부동산인프라, PLUS K리츠는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각각 7.55%, 10.38%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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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리츠들의 고군분투

    1000원 미만의 동전주로 전락한 마스턴프리미어리츠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자 국내외 주요 자산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의 자산관리회사(AMC)의 마스턴투자운용은 주주들을 대상으로 프랑스 아마존 물류센터, 크리스탈 파크 오피스를 매각할 계획이라고 서한을 통해 밝혔다. 물류센터는 임차인인 아마존의 임차 기간이 8년 남아있지만 환리스크 정산과 대출 만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 하반기 중 매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내 자산인 인천 항동 물류센터의 매각도 추진할 예정이다. 쿠팡이 저온 물류창고로 쓰고 있는 인천 항동 물류센터는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지분 약 26%를 보유하고 있다. 마스턴투자운용은 “역량을 집중해서 자산 정상화와 매각을 통한 원본 회수율 극대화에 사활을 걸겠다”며 “주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자산관리 보수 수취를 계속 이연하고 있고 자산 매각이 가시화되는 시점까지 지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자(子) 리츠를 통해 해외 부동산 펀드에 재간접 투자를 하고 있는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도 장기적 재무 안정성 강화를 위해 650억원 규모의 자금을 단기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우선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잔존 차입금 약 182억원을 전액 상환해 배당 수익률을 높이고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방침이다. 또한 내년 1월 환헤지 만기를 대비해 100억~150억원 규모의 정산금을 활용할 예정이다. 남은 금액인 300억~350억원은 국내 우량 부동산 우선주에 투자할 계획이다. 벨기에 자산에 투자하는 KB스타리츠도 벨기에 정부와 브뤼셀에 위치한 갤럭시타워의 임대차 계약 조기 연장을 마무리짓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관련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KB스타리츠 측은 주주 서한을 통해 “2024년부터 주요 임차인인 벨기에 정부와 임대차 연장에 대해 건설적인 협의를 지속해왔다”며 “책임 경영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운용 수수료 산정 방식을 기존 자산 규모 기반에서 시가총액 연동 방식으로 변경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 이후 여전히 상장 리츠 시장의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리츠가 안정적인 배당 자산으로 인식돼온 만큼 디폴트 발생 자체가 투자자들의 심리에 강한 충격으로 작용했다. 개별 리츠의 펀더멘털(기초여건)보다는 섹터 전반의 안정성 자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우려했던 섹터 전반의 유동성 위기나 조달 경색은 나타나지 않았고 개별 리츠의 리파이낸싱, 자산운용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며 “조달 환경의 안정은 리츠 시장 정상화의 선행 조건이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이어 “다만 주가 회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위축된 투자심리의 정상화 시점이 향후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초유의 회생 신청으로 리츠 시장 전반이 흔들리자 정부도 이번 회생 사태와 관련해 긴급 점검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29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부동산원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시장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시가총액 비중이 전체 시장의 3% 미만인 만큼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지만, 시장 신뢰 훼손을 막기 위해 리츠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투자자 보호 중심의 제도 개선도 검토할 계획이다. 시장 안정 조치도 병행됐다. 정부는 앵커리츠를 통한 유동성 공급을 지속하고, 시장 변동성 확대 시 채권·자금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대응 수단도 마련할 계획이다.

    [홍순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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