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제너시스 bbq | ③ 미원과 헤어질 결심

    입력 : 2026.07.09 14:25:44

  • 미국 오클라호마 1호점 매장
    미국 오클라호마 1호점 매장

    그토록 가고 싶던 자리인 중국 공장장은 물 건너갔지만 윤 회장은 지나간 일에 미련 두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막바로 새로운 일에 매달렸다.

    “당시 사료사업본부장인 서형교 씨가 마니커 사장으로 발령됐습니다. 평소 나를 많이 아껴주시고 능력을 높게 평가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상사에 대한 보답도 보답이려니와 모름지기 회사원이라면 회사의 부름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거든요. 다시 한번 능력을 인정받자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인사가 나자 이천 공장 동료들에게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마니커로 출근했습니다.”

    그가 출근하자마자 마주한 마니커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남아있는 영업직원은 단 2명. 제대로 된 현황자료도 없었다. 판매량은 하루 1만 마리도 안 됐다. 통상 평균 5만 마리 정도 되는 회사였다.

    윤 회장은 “나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편”이라며 “오히려 위기 때 특유의 승부 근성이 발휘됐다”라고 말한다. 능력과 리더십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그가 상황을 점검해 보니 영업 일선인 대리점 조직은 의외로 튼튼했다. 영업 정책만 잘 쓰면 이탈한 대리점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으리란 자신이 생겼다.

    2개월 후 그는 야심찬 업무보고를 한다.

    “2달의 시간을 달라. 5만 마리 판매를 회복하겠다. 그리고 또 2달 후에는 7만 마리. 그리고 3년 후에는 20만 마리 판매를 달성해 업계 1위가 되겠다.”

    보고를 듣고 있던 간부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영업 경험도 없고 닭고기의 ‘ㄷ’자도 모르는 신출내기가 만용을 부린다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이를 믿어준 건 서형교 사장. 그는 윤 회장의 보고가 만용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걸 알고 있었다.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연말 판매량 12만 마리. 30년간 5만 마리를 팔던 조직이 윤 회장이 영업부장을 맡으면서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12만 마리를 정점으로 매출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일찍이 예상했던 일이었다. 당시 국내 닭고기 생산량은 하루 80만 마리. 이 가운데 70% 가량이 소형 치킨점이나 호프집에서 소비된다. 나머지는 할인점, 재래시장, 육가공품 원료로 쓰인다. 결론은 단 하나, 치킨 전문점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 1995년 2월 업무보고의 핵심이었다. 맥도널드, KFC 같은 프랜차이즈 사업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유인즉, 회사 측 생각은 소형 치킨점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것. 거기다가 고만고만한 점포를 차린다는 게 모름지기 재벌 입장에서는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당시 미원은 임대홍 창업주의 아들인 임창욱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2세 경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경쟁 그룹이 KFC 같은 폼 나는 프랜차이즈를 들여와 경영하는데 변변치 않은 토종 브랜드를 하나 만든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형 치킨점에 뛰어들면 영세 사업자들과 경쟁도 해야 하는데 대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도 했다.

    “5번이나 독대를 했습니다. 그래도 회장님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보스턴 치킨 같은 브랜드를 들여오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형 점포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KFC 같은 대형 치킨점 하나 내는 데 20억원 듭니다. 소형 치킨점은 5000만원입니다. 40분의 1입니다. 대형 치킨점에서 닭을 하루에 200마리 팝니다. 소형점에서는 40마리 정도 팔 수 있습니다. 5배 많이 팔긴 하는데 효율성을 따지면 8배나 높습니다.”

    결국 윤 회장 생각대로 소형 점포로 갔다. 다만, 조건을 달았다. 미원이란 브랜드 쓰지 말아라. 그리고 그 후엔 마니커라는 이름도 쓰지 못하게 됐다. 윤 회장은 당초 마니커가 출자하는 자회사 설립을 원했지만 위장 계열사 논란이 인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본사 협조가 원만하게 이뤄질 리가 없었다. 윤 회장은 비즈니스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요체는 실행력. 최고 경영층의 의지가 없는 비즈니스는 될 턱이 없다. 사업 실패는 불 보듯 뻔했다. 결국 그는 최종 결심을 굳히고 회사에 사표를 쓴다. 1995년 7월 7일.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99.9%와 100%는 다르다

    윤 회장과 치킨에 대해 몇 마디 나눠보면 그가 얼마나 디테일에 강한 경영자인지를 알 수 있다. 닭에 관해서라면 소수점 한 자릿수까지 자신 있게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닭 소비량이 1년에 얼마냐고 물으면 바로 숫자가 나온다. 15.5kg. 이런 식이다. 그렇게 디테일을 챙기다 보니 치킨의 맛과 품질에 대해서는 0.1%의 양보도 없다. 이게 무너지는 순간 비즈니스가 무너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단 BBQ가 선택한 닭은 100% 국산 닭이다. 점포에 최적의 상태로 배송하기 위해서는 수입 닭을 쓰면 안된다. 수입은 냉동 제품일 수밖에 없다. 그는 냉동 닭을 사용한 적이 없다. 100% 냉장 닭이다. 신선도 면에서 냉장과 냉동은 비교할 수가 없다. 육질도 전혀 다르다. 얼리는 순간 맛이 뚝 떨어진다.

    그가 쓰는 닭은 10호 닭. 1kg에서 50g 넘치거나 모자라는 닭. 그러니까 950~1050g의 닭이다. 가장 맛있고 육질이 제일 좋다고 입증됐다. 그에 따르면 예를 들어 550~600g의 닭은 병든 닭이고 700~800g의 닭은 보통 삼계탕용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최적의 육질을 가진 가장 건강한 닭을 잡아 청정수로 가공한 다음 정확히 8조각을 내서 개별 포장해 냉장 상태로 배송한다. 날마다, 매일매일. 윤 회장은 “닭을 수십 마리씩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나르면 편리하고 비용도 절감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닭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0.1% 빠지는 99.9%는 용납이 안 된다 . “0.1%의 차이가 맛을 좌우합니다. 승부는 거기서 납니다. 100%와 95%의 차이에서 1등 2등이 나뉘는 게 아닙니다. 100%와 99.9%에서 나뉩니다. 우리는 그 0.1%를 채우는 데 제품개발 비용의 90%를 쏟아붓습니다. 맛과 품질은 오직 100%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올리브치킨을 개발한 것도 그런 맥락이고 그냥 올리브유를 쓰지 않고 엑스트라버진을 고집한 것도 모두 맛과 품질에서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업 초기에 막대한 적자를 무릅쓰고 냉장 차량을 구입한다. 이른바 콜드체인 시스템. 가맹점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냉장차를 운행하면 물류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전체 가맹점 수는 기껏해야 두 자릿수였고 부산이나 대구 같은 데는 가맹점이 겨우 한두 개였다. 지역본부장들이 극구 반대했다. 다른 곳도 대부분 냉동 배송하는데 왜 우리는 냉장 배송하느냐며. 윤 회장은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다른 데와 다르게 하려고 우리 사업 시작한 것 아니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계산을 해봤다. 전국 가맹점에 배송할 트럭이 몇 대 정도 있으면 될 것 같은지. 10대면 됐다. 서울에 1대 두고 전국에 9대를 깔면 됐다. 1t 트럭 한 대에 치킨 2박스 싣고 배송하기도 했다. 말이 안 되는 경영이었지만 맛과 품질이 우선이었다. BBQ 물류시스템이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은 가맹점이 200개쯤 됐을 때였다.

    그는 “어떠한 것도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다음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라면서 “가맹점주들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리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닭이 가맹점에 도착하면 일단 올리브치킨용 매리네이드 천연양념을 고기에 바르는 작업을 한다. 이걸 매리네이션이라고 한다. 양념을 겉에만 바르면 안 된다. 속살 깊숙이 배도록 손으로 정성스럽게 마사지해야 한다. 이걸 제대로 안 하면 최고의 맛이 안 나온다. 고객 입맛을 속일 순 없다. 그리고 비닐 포장해 냉장고에 넣는다. 12시간. 이게 숙성작업이다. 오랜 연구 끝에 찾아낸 가장 양념이 잘 배는 최적의 시간이다.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그런 닭을 꺼내 조리하는 것이다.

    뉴욕 맨하튼 타임스 스퀘어의 BBQ치킨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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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회장이 말하는 장사의 도리, 상도(商道)가 4가지 있다. ① 고객보다 편해선 안 된다 ② 고객을 속이면 안된다 ③ 고객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④ 고객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살벌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걸 갑질이라고도 합니다. 요즘은 본사가 갑의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가맹점이 슈퍼갑이고 우리가 슈퍼병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가맹점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철저하게 하라고 교육합니다. 쉽지 않죠. 직원들은 20~30대 젊은이들이고 가맹점주들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노회한 분들인 경우가 많거든요. 직원들이 아들뻘입니다. 그래서 가맹점주들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래도 원칙은 원칙. BBQ란 간판을 걸고 프랜차이즈를 하려면 지킬 건 지켜야 합니다. 5000만 고객을 위한 거니까요. 그걸 지키지 않는 건 고객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셈입니다.” 모든 가맹점주들이 이런 본사의 원칙을 따라주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지만 장사가 되고 고객이 찾아오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것”이라며 “가맹점이 살기 위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걸 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가맹점주들은 패밀리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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