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라스베이거스가 예고한 주얼리 시장의 새 좌표

    입력 : 2026.07.07 09:52:10

  • 해마다 5월 말이면 글로벌 주얼리 시장의 시선은 일제히 라스베이거스로 쏠린다. 전 세계 보석 업계가 한자리에 모이는 이 시기, 한 해 시장의 향방을 가장 먼저 가늠할 수 있어서다. 윈 호텔의 ‘쿠튀르(COUTURE)’와 베네시안의 ‘JCK’. 일주일간 쏟아지는 여러 박람회 중에서도 두 곳은 빼놓을 수 없다. 쿠튀르가 엄선된 디자이너 브랜드의 독창성을 겨루는 무대라면, JCK는 1800여 개 업체가 참여하는 북미 최대 규모의 마켓이다. 세계 다이아몬드 주얼리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인 만큼, 두 쇼장의 공기는 그해 글로벌 마켓의 풍향계가 된다. 올해 박람회장은 전년보다 붐볐으나 온전히 밝은 기운만 감돌지는 않았다. 시장을 흔들고 있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탓이다. 지난 수년간 가격이 가파르게 폭락하면서 한때 평생 한 번 마주할까 싶던 거대한 스톤조차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접근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됐다. 현장에서 만난 한 미국 소매상은 이를 ‘필요악’이라 불렀다. 1캐럿 반지를 마련하려 돈을 모으던 시절의 설렘과 낭만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었다. 이러한 여파는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의 양극화, 즉 ‘K자형 회복’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냈다. 2캐럿 이상의 하이 주얼리급 스톤은 견고한 수요를 유지한 반면, 한때 예물 시장의 기준선이던 1캐럿 이하의 영역은 상당 부분 랩그로운으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천연석의 반격과 유색석의 약진
    Jared Lehr
    Jared Lehr

    이제 천연 다이아몬드는 규격화된 등급 경쟁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인공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수십억 년의 세월’을 고유한 가치로 내세운다. 인공으로도 화려한 색을 만들어내는 시대라지만, 대자연이 우연히 선사한 희소한 컬러야말로 천연석의 가치를 증명하는 독보적인 영역이다. 아름다운 색과 광채를 동시에 지닌 컬러 다이아몬드는 극소수에 불과한데, 올해 쇼장에서는 특히 옐로 다이아몬드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쿠튀르에서 만난 뉴욕의 디자이너 제이드 트라우(Jade Trau) 역시 천연석이 지닌 역사와 서사를 강조했다. 광산개발이 보츠와나 같은 아프리카 산지국의 경제를 지탱한다는 윤리적 책임감도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보츠와나는 전체 수출의 80%가량을 다이아몬드에 의존한다. 다만 천연석의 이 같은 명분은 주로 거대한 캐럿에서 힘을 얻는다. 멜리(Melee-0.1 캐럿 미만) 사이즈를 비롯한 소형 스톤 시장에서는 여전히 랩그로운의 영토 확장이 매섭다. 천연석의 반격에는 유색석의 가세도 한몫했다. 스피넬, 루벨라이트, 만다린 가닛을 비롯해 미국 몬태나산 사파이어처럼 채도 높은 유색석들이 전통적인 5대 보석의 자리를 채운 지 오래다. 올해는 유독 청록빛의 틸(Teal) 사파이어가 쇼장을 가득 메웠다. 유색석은 같은 광물이라도 저마다의 스펙트럼을 지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유일무이함, 그것이 지금 유색석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산지’라는 가장 확실한 보증서
    ASHNA MEHTA
    ASHNA MEHTA

    생산지가 아닌 태생적 출처를 뜻하는 ‘산지’는 오직 천연석에만 허락된 개념이다. 드비어스는 자체 산지 추적 프로그램인 ‘오리진(Origin)’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미국의 유서 깊은 소매상 ‘런던 주얼러스(London Jewelers)’의 행보도 흥미로웠다. 보츠와 나산 63캐럿 원석을 현지에서 직접 연마해 20캐럿대 D 플로리스(D/Flawless)의 최고 등급 나석으로 완성하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원석이 주얼리로 태어나기까지의 여정을 낱낱이 기록해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추적 시스템의 중심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다. 드비어스의 디지털 플랫폼 ‘트레이서(Tracr)’에는 이미 500만 점 이상의 원석이 등록되어 있는데, 1캐럿 이상이면 산지 특정까지 가능하다. 이번 JCK에서는 GIA(미국보석감정연구소)가 트레이서의 지분 30%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보석의 출처를 명확히 안다는 것은 자산으로서의 신뢰이자 윤리적인 확신이다. 시장이 투명해질수록 소비자의 선택은 더 과감해지기 마련이다.

    고금(高金) 시대를 역행하는 골드의 볼륨
    Uniform Object
    Uniform Object

    보통 금값이 치솟으면 주얼리의 부피는 얇고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은 정반대였다. 묵직한 체인과 대담한 펜던트, 손목을 감싸는 커프 팔찌까지, 골드를 볼드하게 사용한 디자인이 전면에 나섰다. 한때 화이트 골드와 로즈 골드에 밀려났던 옐로 골드가 확고한 주류로 돌아온 모양새다. 옐로 골드는 올해 트렌드로 떠오른 유색석들을 한층 깊고 풍부한 톤으로 받쳐주며 시너지를 냈다. 물론 연초 최고가를 경신한 금값에 대한 대안도 공존했다. 브랜드의 시그니처 라인을 슬림하게 변주하거나, 취향대로 조합하는 참(Charm) 장식을 활용해 가격 부담을 낮췄다. 묵직한 골드 체인 대신 세련된 가죽끈이나 유색석 비즈를 매치한 위트 있는 디자인들이 오히려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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