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Ⅲ] 각광받는 비만 유전자 검사 “물만 마셔도 살찐다”는 속설에 유전자가 답했다

    입력 : 2026.06.08 17: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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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 헬스장 탈의실에는 두 종류의 농담이 떠돈다. 한쪽은 거울 앞에서 팔을 굽히며 말한다. “나는 조금만 해도 근육이 붙어.” 다른 한쪽은 체중계 숫자를 보고 한숨을 쉰다. “나는 물만 마셔도 찌는 체질이야.” 전자는 허세처럼 들리고, 후자는 변명처럼 들린다. 그런데 최근 유전학과 대사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 두 말 모두 과장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살찌는 체질”이라는 말에 과학이 붙었다

    물론 ‘비만 유전자’라는 이름의 스위치 하나가 몸속에 있어 누르면 살이 찌고 끄면 빠지는 식은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비만을 유전자, 수면, 스트레스, 건강 상태, 약물, 생활환경, 식습관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 만성질환으로 설명한다. 드문 단일 유전자 이상이 비만을 직접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비만은 여러 유전자가 식욕, 포만감, 에너지 소비, 지방 축적, 대사 효율에 조금씩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나는 왜 남보다 쉽게 찌나”라는 질문은 의지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몸의 설계도, 일상, 환경, 수면, 스트레스, 활동량이 겹쳐 만든 결과일 수 있다. 다이어트 시장이 ‘칼로리’ 다음으로 ‘유전자’를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러닝머신 위에서도 몸은 다르게 계산한다

    운동 효과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관찰됐다. 대표적인 연구가 HERITAGE Family Study다. 이 연구는 표준화된 유산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심폐체력, 혈압, 대사 지표 반응을 살피며 개인별 차이와 가족·유전 요인의 가능성을 추적했다. 같은 프로그램을 따라도 누군가는 산소섭취능력이 크게 좋아졌고, 누군가는 변화가 작았다. 2022년 리뷰는 HERITAGE 연구에서 최대산소섭취량 훈련 반응의 유전율이 47%에 이르렀다고 정리했다.

    이 연구를 “운동이 소용없다”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요지는 같은 운동 자극을 몸이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유산소운동을 하면 심폐 기능이 먼저 올라오고, 누군가는 근력운동에서 성취감을 빨리 느낀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초반 몇 주 동안 체중 변화가 크지 않아 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몸이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2024년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가 소개한 JAMA Network Open 연구는 이 차이를 더 일상적인 숫자로 보여줬다. 유전적 비만 위험이 높은 사람은 평균 위험군과 비슷한 체중 증가 위험을 유지하려면 하루 평균 2280보를 더 걸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BMI 22~28 구간의 고위험군은 저위험군과 비슷한 위험 수준을 만들기 위해 하루 3460~5350보를 추가로 걸어야 한다. 숫자는 불편하지만 유용하다. 같은 운동화, 같은 러닝머신, 같은 30분이라도 체중계가 다르게 답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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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 검사는 판결문이 아니라 ‘설명서’

    개인맞춤 운동·식단 시장이 주목하는 지점도 여기다. 최근 유전자 검사는 근력운동 적합성, 지구력 운동 반응, 탄수화물 대사, 지방대사, 식욕 조절, 염증 반응 같은 항목을 통해 자신의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왜 탄수화물을 줄이면 효과가 빠른가”, “나는 왜 근력운동보다 유산소가 더 힘든가”, “왜 운동 뒤 회복이 느린가” 같은 질문에 단서를 제공하는 식이다.

    다만 검사의 의미는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2025년 Nature Medicine에 실린 연구는 510만 명 규모의 유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BMI와 비만에 대한 다유전자 점수를 만들었다. 이 점수는 유럽계 UK Biobank 참여자에서 BMI 변동의 17.6%를 설명했지만, 집단별 예측력 차이도 컸다. 연구는 다유전자 점수가 조기 예방과 표적 개입에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조상집단과 생활환경에 따라 예측력이 달라질 수 있음을 함께 드러냈다.

    데이터가 운동 처방을 바꾸는 순간

    피트니스 시장에서 오래된 기준은 단순했다. 체중, 체지방률, 골격근량, 하루 섭취 칼로리, 주당 운동 횟수. 여기에 최근 유전자, 혈당 반응, 수면 점수, 심박변이도, 스트레스, 장내미생물, 식습관 설문 같은 데이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운동선수나 전문 관리 프로그램에서 나 쓰이던 지표가 일반 소비자 영역으로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변화의 핵심은 ‘정답 운동’을 찾는 것이 아니다.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근육 증가가 먼저 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피로 누적이 먼저 온다. 어떤 사람은 저녁 운동 뒤 잠을 설치고, 어떤 사람은 아침 운동을 하면 하루 식욕이 안정된다. 데이터는 이 차이를 추적하게 해준다. 유전자 검사가 출발선이라면, 웨어러블 기기의 심박수와 수면 데이터, 식단 기록, 혈액검사와 체성분 변화는 달리는 중간중간의 표지판이다.

    맞춤영양 연구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2024년 Nature Medicine에 실린 개인맞춤 영양 무작위 임상시험은 음식 특성, 식후 혈당·중성 지방 반응, 장내미생물, 건강 정보를 활용한 18주 앱 기반 프로그램을 일반 조언과 비교했다. 이 프로그램은 중성지방, 체중, 허리둘레, HbA1c, 식단 질 등 일부 지표에서 더 나은 개선을 보였지만, LDL 콜레스테롤 등 모든 지표가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이 결과는 개인맞춤 시장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아졌다고 해서 모든 답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생활 속에서 지속 가능한 처방으로 바꾸느냐다. 유전자 검사를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음식에 민감한가”, “어느 시간대 운동이 수면을 해치지 않는가”, “어떤 강도에서 회복이 늦어지는가”를 계속 조정해야 한다.

    Interview | “유전자는 변명거리가 아닌 내 몸 사용설명서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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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석 더나의원 원장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로, 현재 더나클리닉 대표원장을 맡고 있다. 엠레드클리닉 학술고문으로도 활동하며, 근골격계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유전자·대사·회복 데이터를 결합한 맞춤형 체중·운동 관리에 주목하고 있다.

    진료실 테이블 위에 놓인 유전자 검사 결과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거기에는 ‘당신은 살찔 운명입니다’ 같은 문장은 없다. 대신 근력운동 적합성, 지구력 운동 반응, 탄수화물 대사, 지방대사, 식욕 조절, 염증, 에너지 소모 같은 항목들이 조각처럼 놓여 있다. 문제는 그 조각을 어떻게 읽느냐다. 김윤석 더나클리닉 대표원장은 유전자 검사에 대해 먼저 선을 그었다. “(유전자 검사는) 내가 어떻게 타고났는지, 내 몸이 어떤 쪽으로 움직이려는지 이해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유전자는 운동을 피하기 위한 변명거리도, 최종 판결문도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운동과 식단을 설계할 때 처음 펼쳐보는 사용설명서에 가깝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운동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단순히 농담으로 넘기지 않았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근력운동 반응이 빠르고, 어떤 사람은 지구력 훈련에서 더 좋은 신호를 보인다. 다만 그 차이가 곧 한계를 뜻하지는 않는다. 유전자는 방향을 알려줄 뿐, 도착지를 확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답이었다.

    ◆ 몸은 칼로리 계산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김 원장이 가장 경계한 것은 운동 효과를 칼로리와 시간으로만 설명하는 방식이다. 같은 한 시간 운동을 해도 누군가는 지방을 에너지로 잘 끌어오고, 누군가는 포도당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쉽게 지친다. 누군가는 운동 뒤 개운해지고, 누군가는 다음 날까지 몸이 무겁다. 차이는 단순한 ‘운동량’이 아니라 몸속 연결망에서 생긴다. 그는 운동 중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혈류와 산소 공급, 포도당 사용, 간에서의 에너지 동원, 지방분해, 대사산물 처리의 연쇄 과정으로 설명했다.

    “운동을 시작하면 근육으로 피가 가야 하고, 산소도 보내야 합니다. 심장과 폐가 일하고, 근육은 포도당을 쓰죠. 근육 안 에너지를 쓰고 나면 간에서 끌어오고, 이후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연결이 어느 한 구간에서라도 매끄럽지 않으면 운동은 ‘효율적인 자극’이 아니라 ‘힘든 일’이 되는 거죠.”

    미국 CDC도 비만 위험을 유전자 하나로 좁히지 않는다. 건강행동, 스트레스, 건강 상태와 약물, 유전자, 생활환경을 함께 본다. 김 원장의 설명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유전자보다 현재 몸 상태를 더 자주 언급했다. 평소 무엇을 먹는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잠을 잘 자는지, 운동 후 회복을 어떻게 하는지가 운동 효과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 ‘근육형’이어도 무리하면 몸은 경고한다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근력형·근지구력형 같은 항목이었다. 김 원장은 근육형 성향이 있는 사람은 초반에 근력운동 비중을 높였을 때 성과를 빨리 느낄 수 있고, 근육량 증가가 기초대사량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특정 운동 반응이 낮다고 해서 그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효율이 낮을 수는 있지만, 능력 자체는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가 반복해서 쓴 단어는 “점진적 과부하”였다. 유전자 검사 결과만 보고 운동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2주 단위로 강도와 조합을 조절하고 심박수, 피로도, 통증, 회복 반응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유전자형을 참고하되, 실제 운동 설계에서는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무리하면 근육 손상뿐 아니라 심장에도 부담이 갈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 회복이 늦은 몸은 운동을 ‘스트레스’로 기억한다

    김 원장이 인터뷰 중 가장 강조한 영역은 ‘회복’이었다. 많은 사람이 운동을 ‘자극’으로만 이해하지만, 몸은 자극 이후의 회복까지 포함해 운동을 기억한다. 운동할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체온과 맥박이 올라간다. 이후 몸은 다시 안정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 맥박이 떨어지고, 체온이 내려가고, 말초혈관과 땀 분비가 조절되며, 손상된 근섬유가 회복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으면 운동은 건강한 자극이 아니라 오래 남는 피로가 된다. 그는 운동 뒤 피로가 심한 사람을 두고 “회복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력운동 적합성이 낮은 사람이 현재 영양 상태와 수면 상태에 맞지 않는 운동을 하면 회복이 더딜 수 있다. 교감신경이 높은 상태로 오래 유지되면 몸은 계속 긴장하고, 피로도는 높아진다. 운동 직후 영양 보충도 이 맥락에서 중요해진다. 김 원장은 운동 중 근육 안의 글리코겐과 혈액 속 당이 쓰이고, 운동 직후에는 근육이 영양소를 받아들이기 좋은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 단백질과 탄수화물, 전해질을 적절히 보충하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 특히 땀으로 물뿐 아니라 나트륨 등 전해질도 빠져나가기 때문에 장시간 운동이나 고강도 운동 뒤에는 수분만이 아니라 전해질 균형도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 검사보다 어려운 것은 ‘검사 이후’

    김 원장은 유전자 검사의 약점도 분명히 말했다. 결과지를 받아도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빠지면 지속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건강검진표처럼 숫자만 받고 끝나면 생활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현재 상태를 보는 지표를 함께 살핀다. 체중, 체지방, 식사 규칙성, 초가공식품섭취, 보상적 식사, 일상 활동량, 수면, 불안, 스트레스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언급한 NEAT, 즉 비운동성 활동량도 흥미롭다. 하루 한 시간 운동을 해도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앉아서 보낸다면 총 에너지 소비는 제한적일 수 있다. 김 원장은 운동량과 운동 강도뿐 아니라 평상시 얼마나 걷는지,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전자 검사는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답은 기대치를 조절하고 전략을 바꾸는 데 있다. 남보다 근육이 더디게 붙는 사람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다른 속도로 반응하는 몸일 수 있다. 쉽게 체중이 늘어나는 사람은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더 촘촘한 수면·식단·활동 설계가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

    김 원장의 말처럼 유전자는 끝점이 아니다. 몸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신호다. 중요한 것은 그 신호를 핑계로 쓰느냐, 루틴을 바꾸는 지도처럼 쓰느냐에 있다. 이제 다이어트와 운동 처방은 체중계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유전자, 회복, 수면, 스트레스, 일상 활동량을 함께 읽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지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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