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조 비만약 혁명’

    입력 : 2026.06.05 14:11:31

  • [Part 1] 치열해진 경쟁 | 비만 치료×날씬 욕망
    ‘먹는 알약’으로 경쟁 2라운드
    2026년은 비만약 업계에선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비만약의 대명사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특허 만료와 함께 먹는 비만약이 출시됐기 때문. 실제 올 초 출시된 ‘먹는 위고비’가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저렴한 복제약의 확산, 그리고 알약 하나로 살을 뺄 수 있는 편의성은 비만약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비만약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을 넘어 전 세계의 경제와 사회를 뒤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클로이 르마리 골드만삭스 제약 부문 애널리스트는 비만약에 대해 “보험·피트니스·의류·노동 시장 전반의 연쇄적인 밸류에이션 재조정을 유발하는 역사적 메가트렌드”라고 진단했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비만약 복용으로 탑승객의 평균 체중이 10%(약 8kg) 감소하면 미국 내 주요 항공사들은 연간 5억8000만 달러(약 8500억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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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종서(54)씨. 100㎏을 넘어서는 체중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와 요요현상을 반복하던 그는 지난해 ‘위고비’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투약 3개월 만에 체중이 10여 kg 이상 급감한 것은 물론 우려하던 요요현상도 크지 않았다. 초기 한 달에 100만원이 넘던 약값도 최근 제약사 간 경쟁으로 월 30만원 정도로 내려갔다. 게다가 먹는 약까지 등장했다. 김씨는 “앞으로 주사제와 먹는 약을 병행하면서 평생 체중을 관리할 계획”이라며 “근손실 등 다른 건강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운동도 새로 시작했다”고 전했다.

    비만약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을 넘어 전 세계의 경제와 사회를 뒤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그런 비만약 시장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올해 초 ‘먹는 위고비’가 출시되며 비만약 대중화의 문을 연 데 이어, 오젬픽·위고비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특허가 일부 국가에서 만료되며 복제약 시장 진입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마운자로)가 양분해온 글로벌 비만약 시장에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한국인 맞춤형, 추가 기전, 투약 편의성 등 차별화 전략을 무기로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만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블랙홀이다. 비만약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체적인 지표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세계 비만약 시장 규모는 2024년 300억 달러(약 44조6500억원)를 넘어섰다. 2020년 대비 10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주요 조사기관들은 2030년 비만약 시장이 2000억 달러(약 297조6800억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7%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2030년 7000억원대 규모까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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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낮춘 복제약 등장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은 식사 후에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을 낮추는 동시에 뇌의 식욕 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킨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이 원리를 흉내 낸 비만치료제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에 비해 부작용이 현저히 낮고 효과는 커, 출시 즉시 돌풍을 일으켰다. 다만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배에 주사를 놔야 하는 주사제 형태로 주삿바늘에 대한 공포와 냉장 보관의 불편함, 비싼 가격이 ‘진입 장벽’으로 꼽혔다.

    하지만 먹는 비만약의 등장으로 이 같은 장벽이 허물어지며, 업계에서는 비만치료제 시장이 이전보다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경우, 14%가 높은 가격 때문에 중도에 투약을 포기했다는 조사도 있다. 약값 인하와 경구제(먹는 약) 보급이 본격화된다면 시장의 질서는 ‘단기 체험’을 넘어선 ‘장기 구독’ 체제로 급격히 재편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는 2031년까지 경구용 비만치료제가 전체 비만치료제 시장의 21%를 차지할 것이며, 시장 규모는 2025년 32억 달러(약 4조6500억원)에서 2031년 343억 달러(약 49조 9000억원)로 10배 이상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복제약도 가세할 전망이다. 제약시장 조사업체 파마락은 올해 인도에서만 약 50개 이상의 복제약 브랜드를 출시할 것으로 분석했다. 예상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인도 제약사 에리스 라이프사이언스와 닥터레디스래버러토리스는 지난 3월 위고비 복제약 주사제인 ‘선데이’와 ‘오베다’를 각각 출시했다. 선데이의 경우 최저 용량(2mg) 기준 월 1290루피(약 2만원)로, 위고비의 약 12% 수준에 불과하다.

    일라이 릴리가 출시한 먹는 비만치료제 ‘파운데요’.
    일라이 릴리가 출시한 먹는 비만치료제 ‘파운데요’.

    그렇다면 한국에는 언제쯤 이들 ‘먹는 비만약’이 상륙할까. 제약업계에 따르면 ‘위고비 필’은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아직 심사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반면 일라이 릴리가 2023년 파운데요의 글로벌 임상(ATTAIN-1)에 한국인 환자를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국내 출시가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통상 식약처 신청 시점 기준 1∼2년에 신약 출시가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업체의 비만약 모두 내년 이후에나 한국에서 처방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가 발표한 ‘2025년 글로벌 비만 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만치료제 매출액은 3억7700만달러(약 5000억원)를 기록하며 미국, 브라질,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랐다. 매출 성장률이 전년보다 137% 증가해 상위 5개국 중 가장 성장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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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기업들 새로운 제형으로 승부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비만약 개발 및 상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가 복제약과의 출혈경쟁을 피하기 위해 ‘혁신 제형’ 도입에 승부수를 띄웠다. 국내 비만약 시장에서는 한미약품이 선두에 있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HM15275, HM17321 등 3개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며, 2027년부터 차례로 상용화할 계획이다. 각 비만약은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에 중점을 뒀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국인 맞춤형’을, HM17321은 ‘근손실 회복’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셀트리온은 3세대를 넘어 4세대 비만약 ‘CT-G32’ 개발로 직행했다. CT-G32는 3세대의 3중 기전에 아밀린을 추가로 겨냥해 근손실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셀트리온은 오는 5월 CTG32의 허가용 동물임상에 나설 예정이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27년 임상 1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복부에 바늘을 찔러야 하는 피하주사(SC) 제제의 불편함에 주목해 투약 편의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제약사도 있다. 먹는 비만약이 대표적이다. 일동제약은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경구용 비만약 ‘ID110521156’의 초기 임상에서 유의미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삼천당제약과 디앤디파마텍도 경구용 비만약 개발을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은 마이크로니들 패치 형태의 ‘붙이는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펩트론과 인벤티지랩은 약효 지속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장기 지속형 비만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 1회 투여해야 하는 기존 비만약과 달리 한 번 주사하면 약효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분기 단위까지 유지되는 기술이다.

    주사형 체중 감량제인 위고비 <사진 연합뉴스>
    주사형 체중 감량제인 위고비 <사진 연합뉴스>

    향후 K-비만약은 ‘가격’과 ‘공급 안정성’을 바탕으로 국내 비만약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설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국산 비만약이 출시될 경우 수입산 대비 약 30~50% 저렴한 가격 책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만약은 단순히 제약사 간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비만치료제로 인한 집단적 체질 개선은 부수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2025년 11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와 직접 협상을 발표했다. 메디케어 수혜자는 월 50달러만 내면 GLP-1 약을 받을 수 있다. 2026년 중반부터 메디케어가 비만 치료를 커버하는데, 이는 메디케어 역사상 처음이다. 보험 없는 사람들도 TrumpRx 플랫폼을 통해 월 149달러에 약을 구매할 수 있다. 메디케어 수혜자 6500만 명 중 10%인 650만 명이 추가로 비만치료제 시장에 들어올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GLP-1 확산이 미국 GDP를 0.4~1% 올릴 것으로 추정했다. 1%면 약 280조원에 이른다.

    JP모건 리서치는 2030년까지 미국 내 전체 인구의 약 9%가 GLP-1 사용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평생 약을 먹는 ‘구독경제’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비만약이 흐르는 곳으로 새로운 산업지도도 그려지고 있다.

    [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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