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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국의 고택] (12)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 | 고택에 깃든 충절과 청렴의 가풍
입력 : 2026.06.04 17: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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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다. 두 가문이 5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경주 손씨는 적개공신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와 그의 아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을 구심점으로 후손들이 양동마을에 터전을 마련하고 세거하였다. 여강 이씨는 회재 이언적(李彦迪)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양동마을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다. 이언적은 관직이 최고위직까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성리학자로서 문묘 18현에 배향되었다. 이처럼 현달한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는 경쟁과 상생을 통해 지속적인 마을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충절과 청렴의 가풍
안채 경주 손씨 입향조인 손소(孫昭)는 류복하의 사위가 되어 양동마을에 정착하였다. 손소는 본래 지금의 청송군인 안덕현(安德縣)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이 어머니 안동 권씨 부인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손사성(孫士晟)은 어머니 안동 권씨와 혼인한 후 줄곧 처가인 안덕에서 살면서 장인 권명리(權明利)의 은택을 받았다. 따라서 안덕은 손소에게는 외가이고, 아버지 손사성에게는 처가였다. 손소는 양동마을 류복하의 무남독녀 풍덕 류씨와 25세에 결혼하였다. 그리고 류복하가 양동마을에 축적해놓은 사회·경제적 기반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양동마을에 정착하였다. 손소는 적개공신 책봉을 통해 가문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입지를 확고하게 마련하였다. 손소는 적개공신 2등에 책봉됨으로써 선대의 관직을 두 계급씩 높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적장자가 자신의 녹봉을 대대로 세습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많은 돈과 노비는 물론 100결에 달하는 전답을 새롭게 확보하였다. 나라에서 초상화를 그려 보관하게 하였고 그의 공적을 기린 비석을 세워 찬양하였다. 공신 책봉에 감사드리는 사은(謝恩) 자리에서 국왕으로부터 백금 25냥을 하사받은 것을 비롯하여 회맹이나 잔치가 있을 때마다 후한 상을 받았다. 현재 서백당에 전해지고 있는 소위 송첨삼보(松簷三寶)도 이런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다. 봉작제도에 따라 계천군(鷄川君)이라는 봉호(封號)를 받았으며 사후에는 양민(襄敏)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리고 영원히 제사를 모시는 불천위(不遷位)가 되어 부조묘(不祧廟)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침내 손소는 양동마을 경주 손씨 가문의 입향조인 동시에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공신의 자손답게 국가에 대한 충절(忠節)을 가풍으로 계승했다. 손중돈은 손소의 둘째 아들로 서백당(書百堂)에서 태어나 부친과 동방 급제한 김종직 문하에서 배웠다. 그리고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치던 중 연산군의 난정을 바로잡으려다 파직당했다. 중종반정 이후 부임한 상주에서 선정을 베푸니 백성들이 감읍해 생사당을 세웠다. 이조판서·세자시강원 빈객을 지낸 후 도승지와 대사간을 지냈고, 각지의 관찰사를 지낸 후 우참찬에 이르렀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됐다. 손중돈의 청렴(淸廉)은 후손들에게 또 다른 가풍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그의 유학 사상은 외조카 이언적에게 계승되어 조선 성리학이 이론적으로 완성되었다.
양동마을 경주 손씨의 대종가
사랑채 서백당(書百堂)은 경주 손씨의 대종가이다. 경주 손씨 양동마을 입향조인 손소(孫昭)가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으로 지은 고가(古家)이다. 청송부 안덕현에서 나고 자란 손소는 1457년(세조 3년) 풍덕 류씨(豊德柳氏) 류복하(柳復河)의 사위가 되어 처가가 있던 양동마을로 이주하였다. 서백당은 그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손소는 오랜 벼슬살이로 주로 서울과 지방관 부임지 등에서 생활하였지만 5남 3녀의 자녀들은 이곳에서 나고 성장하였다. 따라서 서백당은 류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50여 년간 양동마을 경주 손씨 집안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서백당은 손소와 류씨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대종가의 자리를 관가정(觀稼亭)에게 넘겨주었다. 손소의 맏아들 손백돈(孫伯暾)은 우계 이씨(羽溪李氏) 이형수(李亨秀)의 딸에게 장가들어 처가가 있는 양동의 동쪽 이웃 마을인 유금리로 이주하여 살다가 후손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관가정으로 분가해서 살고 있던 둘째 아들 손중돈(孫仲暾)이 종손으로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손중돈은 1510년 류씨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인 1514년(중종 9년) 관가정을 짓고 분가하였다. 그리고 1527년(중종 22년) 부친 손소가 양민(襄敏)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아 불천위(不遷位)에 오르자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인 부조묘를 관가정 동편에 지으면서 관가정이 명실상부한 경주손씨 대종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반면 서백당은 셋째 아들 손숙돈(孫叔暾)마저 서백당 북쪽에 지금의 낙선당인 새집을 지어 분가하면서 넷째 아들 손계돈(孫季暾)이 거주하는 경주 손씨 유곡공파(柳谷公派)의 파종가(派宗家)가 되었다.
서백당이 경주 손씨 대종가의 지위를 회복한 것은 1924년이다. 400여 년간 서백당에 거주하던 손계돈의 후손들이 고택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서백당은 양동마을 경주 손씨 가문의 상징이며 뿌리였기에 관가정에서 서백당을 구입하여 대종가를 서백당으로 옮겼다. 대종가를 관가정에서 서백당으로 옮기면서 서백당의 동편에 사당을 신축하고 관가정 영당에 모시고 있던 손소의 신위(神位)를 이곳으로 옮겼다. 한편 손소의 영정(影幀)은 관가정의 영당(影堂)에 그대로 모시면서 관가정은 서백당 대종가의 별채가 되었다.
삼현지지의 명당
사랑채 마루 서백당은 대종가다운 위엄이 있다. 서백당은 ‘勿(물)’자 형국의 양동마을에서 가장 깊숙한 안골의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고택의 좌향은 남동쪽으로 흐르는 설창산 산록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해 자연스럽게 서남향이 되었다. 특히 서백당은 산록을 따라서 흐르던 경사가 봉긋하게 솟은 곳에 터전을 마련해 풍수지리적으로 길한 곳으로 평가된다. 서백당은 세 사람의 현인(賢人)이 태어날 명당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세 명의 훌륭한 인물이 나올 ‘삼현지지(三賢之地)’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 현인은 1463년(세조 9년)에 태어난 우재 손중돈이다. 손소가 문예시(文藝試)에 장원급제하여 병조좌랑에 임명되던 해에 서백당의 머릿방 산실청에서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하면서 양동 마을 경주 손씨의 기반을 다진 둘째 아들 손중돈이 탄생한 것이다. 두 번째 현인은 회재 이언적이다. 1491년(성종 22년) 손중돈의 누이동생과 결혼한 여강 이씨 이번(李蕃)이 첫째 아들을 서백당 산실청에서 낳은 것이다. 이언적은 종묘와 문묘에 함께 배향된 조선 성리학의 태두(泰斗)로서 동방오현(東方五賢) 가운데 한 분이다. 경주 손씨는 서백당에서 세 번째 출중한 인물이 태어날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서백당에서는 외손인 이언적이 태어난 이후에 세 번째 현인의 탄생을 외손에게 내어주지 않기 위해 시집간 딸들이 애를 낳기 위해 친정에 와도 해산만은 반드시 다른 친척 집으로 보내는 관습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불천위 제사 서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류주택은 고려 말인 1330년(충숙왕 17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맹씨행단이다.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 알려진 이 한옥은 충청남도 배방면 중리에 위치한다. 그러나 안채와 사당채만 남아 있으며 그나마 안채는 방향을 바꿔 다시 지어져 온전한 살림집의 모습을 전하지 못한다. 따라서 격식을 갖춘 온전한 한옥으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은 서백당이다. 서백당의 건립 연대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1461년(세조 7년)에 건립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손소가 결혼하여 처음 양동마을로 왔을 때는 이석정 씨 집 근처에 있던 처가에 살다가 4년 정도 지난 1461년(세조 7년)에 서백당을 신축하였다는 것이다. 손소는 양동마을로 이주한 지 2년이 지난 1459년(세조 5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이런 경사가 있을 경우 재산을 별급(別給) 하거나 집을 지어주어 기념하는 일이 흔하게 있었다. 따라서 서백당은 그가 문과에 급제한 이후인 1461년(세조 7년)에 건립되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차장섭 강원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조선사연구회 회장, 강원대 도서관장, 기획실장, 강원전통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강원대 자유전공학부 명예교수로 한국사, 미술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