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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장기금리 상승의 역습에도 시장 관심이 여전히 반도체·AI인 이유
입력 : 2026.06.04 14: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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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 여파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8%를 기록했다.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5월 15일(현지시간)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5.1%를 넘어섰다.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이날 S&P 500은 1.2%, 나스닥은 1.5% 하락했다. 마이크론은 6.62%, 인텔과 AMD는 각각 6.18%, 5.69% 빠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좀처럼 꺾이지 않던 미국 증시의 상승 열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 수석 전략가는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5월 초 보고서에서 최근 증시 상승을 ‘붐-루프(boom loop)’라고 이름 붙였다. 정부가 돈을 풀고,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이 집중되면서 다시 AI 기업으로 돈이 몰리는 자기강화 순환이다. 그는 동시에 이 루프를 끊을 임계치로 30년물 금리 5%를 지목했다. “이 선이 강하게 돌파되는 순간이 ‘파멸의 문’이 열리는 신호”라고 했다. 그의 경고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올해 초 시장의 기본 시나리오는 단순했다. 연방준비제도가 연내 한두 차례 금리를 인하하고, 그 완화 기대가 증시 전반의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현실은 그 시나리오를 차례로 무너뜨렸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8% 상승해 2023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음 날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더 충격적이었다. 전월 대비 1.4% 급등해 2022년 3월 이후 최대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6.0%에 달했다.
물가가 내려오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크다.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국제유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재정 지출 확대도 핵심 포인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패키지는 향후 10년간 미국의 재정 적자를 최소 2조 달러 이상 확대할 것으로 추산된다.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고 방위비를 늘리는 동안에도 재정 지출은 줄지 않고 있다. 이 돈이 경제에 풀리면서 물가를 밀어 올린다.
금리 인하 가능성 낮아져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초까지 밀었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접었다. 다음 인하 시점을 2027년으로 미뤘다. 다수의 월가 금융사들이 이 같은 전망에 동참하고 있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는 지난 5월 13일(현지 시간) 보스턴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5년 이상 지속해서 목표치(2%)를 초과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내 인내심은 줄어들었다”며 “물가 상승을 2%로 복귀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 정책 긴축이 필요한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라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시장의 질문이“언제 금리가 내려갈까”에서 “과연 내려가기는 할까”로 바뀐 것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물가가 연준의 목표치인 2%로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있다. 이 변화가 장기 국채 금리를 직접 밀어 올리고 있다.
이 충격은 미국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 일본, 독일의 장기 국채 금리가 동시에 급등하는 글로벌 채권 발작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영국 10년물 길트 금리는 5.18%까지 치솟아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고, 30년물은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진보적인 후임자가 나와 재정을 더 풀 수 있다는 우려가 장기물 금리를 추가로 밀어 올렸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도 2.71%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도매물가 급등과 에너지 충격, 엔화 약세가 겹친 가운데 일본은행(BOJ)의 6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불거졌다. 이란발 유가 상승, 미국의 재정건전성 악화, 지정학적 불안이라는 삼중고가 한꺼번에 전 세계 채권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등락은 결국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기업이 실제로 벌어들이는 이익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이익에 시장이 부여하는 가치, 즉 멀티플이다. 주가수익비율(PER)로 대표되는 이 지표는 시장 전반의 유동성 환경과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강세장은 보통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개선될 때 만들어진다. 이익이 늘고, 낮아진 금리가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때 주가는 폭발적으로 오른다. 지금은 다르다. 금리가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시장이 안고 있다. 장기 성장 스토리에 높은 프리미엄을 얹어왔던 성장주 밸류에이션이 압박을 받는 이유다.
고유가발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글로벌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기술주 매도세가 번지면서 뉴욕증시가 5월 15일 약세로 마감했다. <사진 연합뉴스> 시장이 금리 인하 기대를 꺾었다면 증시는 멀티플 확장으로 오를 수 없다. 이익이 느는 것으로 주가 상승 불씨를 삼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시장은 이익 확장이 가능한 섹터로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자본 지출을 집행하고 있다. 이 돈은 결국 엔비디아의 GPU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만드는 메모리 반도체로 흘러든다. AI 인프라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속도를 반도체 공급이 따라갈 수 없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내년 이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결과 반도체 주식은 시장 전체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마이크론 주가는 연초 이후 급등했지만, 12개월 선행 PER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PER가 낮다는 것은 주가 상승 속도보다 이익 전망이 더 빠르게 늘었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 상승 배경도 비슷하다. 금리 인하 기대를 버린 투자자들은 막연한 성장 스토리에 높은 멀티플을 부여하지 않는다. 숫자로 확인되는 이익 증가가 있는 곳에만 돈을 밀어 넣고 있다.
그래서 최근 시장의 폭은 좁아지고 있다. 상승 종목 수가 넓고, 업종 간 순환매가 활발하며, 실적 개선 기대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일반적인 강세장과는 거리가 멀다. 특정 산업과 특정 기업에 대한 집중도만 높아지고 모습이다. AI라는 거대한 테마가 지수를 밀어 올리지만 금리라는 벽이 나머지 기업 주가 상승을 막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반복될 공산이 크다. 시장이 물가 부담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장기물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 반해 AI 생태계에 쏟아지는 자금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빅4 하이퍼스케일러(아마존·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의 올해 합산 캐펙스는 7000억~7250억 달러로 전년(3780억 달러 대비 약 77% 증가할 전망이다. 이 돈의 상당수는 결국 반도체 업계로 넘어간다.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2026년 630조원, 2027년 906조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장은 결국 AI 생태계에 속한 기업만이 고금리를 견디며 이익을 더 늘릴 수 있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美 정부 채권 시장 개입할까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환율 변동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반도체와 AI를 넘어 시장 온기가 넓게 퍼지려면 결국 장기 금리의 하락이 필요하다. 그 열쇠를 쥔 인물로 시장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주목하고 있다. 2022~2023년 미국 장기물 금리가 치솟을 당시, 재닛 옐런 전 재무장관은 장기물 발행을 줄이고 단기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선언하며 장기금리를 끌어내린 바 있다. 시장이 베센트에게 기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월가 베테랑 투자자인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장기금리가 오를 경우 정부가 개입해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깔려 있다”며 “채권금리 상승에 베팅하는 국채자경단 외에 시장은 정부를 또 하나의 시장 플레이어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물 국채 시장 안정을 위해 단기물 위주로 재정 적자를 충당하고, 은행권의 추가 레버리지 비율(SLR) 규제를 완화해 시중은행이 국채를 더 많이 사들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준 의장 교체도 변수다. 제롬 파월 의장 대신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새 의장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의장직에 오른 워시가 장기물 금리를 직접 통제하는 수익률곡선통제(YCC) 같은 극단적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행정부가 무리하게 장기금리 하락을 시도할 경우 달러 신뢰 하락 등 여러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어 실상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홍장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