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 활황에 머니무브

    입력 : 2026.06.01 15:59:09

  • “예금도 보험도 다 깬다”
    확 바뀐 기대수익률…재편되는 돈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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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은행 간부인 김동원(54) 씨는 얼마 전 본인이 일하는 은행에 들었던 억대 예금을 해지했다. 이 돈은 고스란히 같은 금융지주 계열의 증권사로 들어갔다. 연초부터 증권 투자를 늘리던 그가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 김씨는 “노후자금의 일부라 안전한 곳에 놔두려 했지만, 최근 증시 흐름을 보고 더 이상 투자를 미루기 힘들었다”면서 “포모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 증시의 체질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판단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증시 활황이 한국인의 자산 흐름을 바꾸고 있다. 코스피가 한때 8000선까지 치솟자 재테크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고 있다. 부동산 대기자금과 연금 자산까지 금융시장으로 흘러들며 ‘머니무브’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가파른 랠리는 포모(FOMO, 기회를 놓칠까 두려운 심리)를 키웠고, 빚투와 단기 과열 부담은 시장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돈은 다시 증시 주변에 머물고 있다. 예·적금에서 증시로,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국내 증시 활황이 한국 사회의 돈의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시중자금이 은행 예금에서 증시 주변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 은행의 만기 3년 이상 정기예금 잔액이 2년 반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주식시장 호황이 이어지면서 자금을 은행에 묶어두기보다는 증시로 이동시키는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5월 1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예금은행의 만기 3년 이상 정기예금 잔액은 27조8758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7402억원 감소했다. 예금 잔액은 지난 2023년 11월(27조3267억원)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만기 3년 이상 정기예금은 지난해 7월 33조8126억원을 기록한 뒤 8월부터 올 3월까지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 은행들이 자금 유출을 방어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소폭 올리고 있지만, 증시로의 자금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 예금, 증시 주변으로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대다수 고객이 예금 만기가 도래하면 재예치를 했지만 요즘은 투자자금으로 활용하는 추세”라며 “일부 종목이 하루 10%씩 뛰는 상황에서 연 3~4% 수준의 이자를 보장한다고 해도 자금 유출을 막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향했다. 5월 14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133조5088억원으로 지난해 말 87조8291억원보다 45조6797억원 증가했다. 증가율은 52.0%에 달한다. 같은 기간 5대 은행 요구불예금 증가율 4.4%와 비교하면 10배가 넘는 수치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계좌에 넣어둔 돈이다. 코스피 지수가 급등한 뒤에도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기보다 증권계좌 안에 남겨두면서 추가 매수 기회를 기다리는 흐름이 강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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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MA 잔액도 100조원대에 올라섰다. 14일 기준 CMA 잔액은 101조6493억원으로 지난해 말(88조6141억원)보다 14.7%(13조352억원) 늘었다. CMA는 하루 단위로 이자를 받으면서도 주식 매수 자금으로 곧바로 활용할 수 있어 대표적인 증권계좌형 대기자금으로 꼽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8일 기준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1억560만 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9829만 개에서 731만 개가 불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총 인구수(5160만 명)를 고려하면, 국민 1명당 2개 이상의 주식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4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4월 자산운용사 수신은 99조 6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수치다. 지난해 1~4월 넉 달간 늘어난 자산운용사 수신 규모(102조 7000억원)와 맞먹는다.

    박민철 한국은행 시장총괄팀 차장은 “4월 중 개인은 주식을 순매도하며 2~3월에 비해 머니무브(자금 이동)의 강도는 다소 약해졌으나, 투자 대기자금 등을 포함하면 머니무브 현상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지수펀드(ETF)로의 투자자금도 늘었다. 국내 ETF의 총 순자산이 456조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5일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한 이후 한 달도 안 돼 50조원 이상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국내 상장된 기업들에 투자하는 국내 주식형 ETF의 순자산은 212조원으로, 200조원을 처음 넘어섰다.

    반면 증시로 투자자금이 늘어나면서 개미들의 ‘빚투’ 규모는 사상 최대치로 불어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5조9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23일 사상 처음으로 35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초 27조원 수준이던 신용잔액이 4개월 만에 약 10조원 급증한 것이다.

    부동산으로 유입될까

    일부에선 코스피 활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불어난 자산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단기간 증시가 급등한 만큼 조정을 대비해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적은 부동산 자산으로 눈길을 돌리는 투자자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매수 심리가 반등 기미를 보이는 배경에 증시 고점론이 있다.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빚투’가 급증하는 등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증시 참여자들의 불안을 키운다.

    시장에서는 증시에서 불어난 자산이 부동산 매수 자금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이번에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2012년부터 2024년까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간한 ‘주식 자산 효과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의 주식 자본이득이 확대된 이후 부동산 순매입이 늘어났다.

    반면 증시 초호황으로 가계 주식 보유가 대폭 늘고 시장 참여 계층이 다양화된 만큼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란 진단도 있다. 안정적인 투자 환경이 조성되고 부동산시장의 변동성이 줄어든다면 ‘아파트 불패’ 대신 주식시장이 중장기적인 가계 자산 형성 기반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증시가 활황이라고 하나 향후 부동산으로 자산 이동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긴 어렵다”면서 “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 볼 때 주택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병수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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