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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Walking] 전북 임실 옥정호 물안개길 | 사계절 나들이 명소 된 옥빛 호수
입력 : 2026.06.01 10: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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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투어전북>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서 왔어요. 옥정호가 유명하다고 해서 오랜만에 모임서 왔는데 교통이 너무 불편하네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두 번이나 연달아 어디서 오셨냐니. 툭 던지듯 내놓은 셔틀버스 기사님의 질문에 새벽부터 서둘러 왔다는 일곱 명의 아주
머니 중 한 분이 찰떡처럼 답한다.
“전주역에서 택시 타고 들어왔어요. 여기까지 버스가 다니질 않는가 봐요.”
“버스가 들어오긴 하는데 시간이 좀 떠요. 그래도 봄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에요. 마침
비 올 때 잘 오셨네.”
부실한 질문에 비해 충실한 답변이 겸연쩍었는지, 기사님 말투가 한결 부드럽다. 그런데 이번엔 아주머니가 반격한다.
“날 좋을 때 오는 게 좋지, 비 올 때 좋은 게 뭐 있어요.”
기사님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 둘레길 이름이 물안개길이거든요. 호수에 핀 물안개를 보려면 비 오는 날이 딱이죠. 출렁다리 넘어가면서 안 보셨
나? 저기 산등성이 한번 보세요. 산허리 타고 넘는 물안개가 아주 멋져요.”
“보긴 봤는데, 그래도 벚꽃이 먼저예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통에 사진도 몇 장 못 찍었네.”
“허허, 잘 모르시는 소리. 벚꽃이 환하게 빛날 때가 비 올 때라니까요. 그러니 사진도 더 잘 나와요. 주말 피크타임에 비해
사람도 한산하니 구경하기도 편하고 좋잖아요. 해가 없어서 서운하긴 한데, 하나 포기하면 열이 편해요. 운치도 있고.”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한다.
“그렇게 보니 또 그런 것도 같네요. 하나 포기하니 다른 게 편하긴 하네….”
3만8000여 명이 즐긴 벚꽃축제
옥정호를 찾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 지표는 봄에 치러지는 벚꽃축제다.
올해는 4월 11일부터 이틀간 진행됐는데, 전국 각지에서 3만800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임실군 측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3000여 명(약 9%)이나 늘었다. 출렁다리 개통 이후 열린 벚꽃축제 중 역대 최대 기록이다. 사람 많은 곳에 이야기도 많은 법. 옥정호(玉井湖)는 그 이름부터 남다르다. 옥빛 우물 같은 호수라는 뜻인데,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숨어 있다. 조선 중기에 이 땅을 지나던 한 스님이 “머지않아 이곳이 맑은 호수, 곧 옥정이 될 것”이란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이 일대가 옥정리라 불렸고, 훗날 댐이 들어서며 생긴 인공호수가 그 이름을 이어받았다. 수백 년 전의 예언이 현실이 된 셈이다.
옥정호의 역사는 196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섬진강 협곡에 다목적댐 건설을 결정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호남평야로 흐르는 동진강은 늘 물이 부족했고 가뭄이 오면 곡창지대 전체가 메말랐다.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으로 돌리기 위해선 댐이 필요했다.
그리고 1965년 12월, 섬진강댐이 완공된다. 높이 64m, 길이 344.2m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다목적댐이었다.
총저수량은 4억6600만t, 만수위 때의 수면 면적은 26.51㎢에 이른다. 먹고살 식량이 절박하던 시절, 이 댐은 국가의 미래였다. 하지만 물은 주변 풍경을 삼켰다. 그 아래 숨 쉬던 임실, 정읍 일대 5개 면, 28개 마을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논과 밭, 집과 우물, 조상 묘와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함께 잠겼다. 수몰민은 충분한 생계 대책도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훗날 부안군 계화지구 간척지로 이주 정착이 이뤄졌지만 고향을 잃은 상처를 완전히 덮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고즈넉한 둘레길, 북적이는 붕어섬
댐이 들어서고 물이 차오르자 마을에 우뚝 솟았던 봉우리는 섬이 됐다. 사람들은 그 섬을 붕어섬이라 불렀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붕어 한 마리가 호수 위를 노니는 모습이다. 옥정호 주변에 조성된 물안개길은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 정류장에서 시작해 육모정, 못지골을 거쳐 용운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13㎞의 수변 산책로다. 모든 구간을 걷는 데 4시간 반가량 걸리는데, 대부분 한 시간여 주변을 돌아본 후 붕어섬으로 이어지는 출렁다리로 향한다. 곳곳이 나무 데크로 마무리된 산책로는 전 구간이 완만하다. 편한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평탄한 길이다. 길 중간에는 임실군이 조성한 생태숲도 있다. 금낭화, 꽃무릇, 물양귀비 등 19종, 5000여 본의 초화류와 산딸나무, 노각나무 등 11종, 100여 주의 교목류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걷다 보면 국사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해발 475m의 국사봉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시야가 탁트였다. 편도 20여 분이면 오를 수 있다.
둘레길의 마지막 코스는 옥정호 출렁다리다. 2023년 3월에 정식 개통한 이 다리는 길이 420m, 폭 1.5m, 주탑 높이가 83m나 된다. 비상하는 붕어의 형상을 본뜬 두 개의 주탑이 좌우로 솟아 있고 그 사이 현수교 케이블이 하늘을 가른다. 입장료 4000원(성인 기준)을 내고 한발 내딛으면 스틸 그레이팅 사이로 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물안개가 깔린 날이면 발밑이 구름 위처럼 아득하다. 바람이 불면 다리 전체가 함께 진동하는데, 실제로 꽤 흔들린다. 다리 중간의 전망대에선 또 다른 각도의 옥정호를 만날 수 있다. 국사봉에서 내려다보는 탑 전망과는 달리, 이곳에선 수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호수를 가로지른다.
출렁다리는 붕어섬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다. 오랫동안 배로만 닿을 수 있었던 섬은 출렁다리 개통 이후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수많은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다리 입구의 요산공원에는 양요정과 망향탑도 자리했다. 특히 망향탑은 섬진강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수몰민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 장소다. 어쩌면 옥정호의 아름다움은 이처럼 기억과 상실을 함께 품고 있을 때 더 깊어진다.
[글 · 사진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