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열의 스테이블코인 돌아보기] (8) 가상자산 과세 잔혹사 ― ‘대혼란’ 예상 속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입력 : 2026.05.22 18:10:58
-
2026년 대한민국 가상자산 시장은 이른바 ‘과세 폭풍 전야’의 극심한 혼란 속에 놓여 있다. 수차례 유예를 거듭하며 평행선을 달려온 가상자산 소득세가 2027년 1월 1일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 가상자산 양도 및 대여로 발생한 소득 중 25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지방소득세를 포함하여 22%의 세금이 부과된다.
정치적 셈법과 ‘이중과세’ 논란의 실체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는 야당(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가상자산 과세 폐지’론이다. 1300만 명을 넘어선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겨냥하여, 야당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전격 폐지된 상황에서 가상자산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자본시장 세제 균형과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중과세’에 대한 지적이 거세다. 우리 정부는 이미 가상자산을 상속·증여세법상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재화’로 간주해 엄격히 과세하고 있으며, 거래소가 수취하는 매매 수수료에도 10%의 부가가치세를 매기고 있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을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으로 규정한 사례를 보더라도, 사실상 ‘상품’ 취급을 하며 세금을 걷으면서 소득 발생 시 별도의 소득세까지 얹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과세 폐지 움직임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산 형성 사다리가 끊긴 2030 청년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과 함께, 섣부른 과세가 국내 투자금의 대거 해외 거래소 유출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당국의 ‘속도전’과 신뢰를 무너뜨린 보안 사고정치권의 공방과 무관하게 국세청은 ‘소득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과세 강행을 향해 칼날을 갈고 있다. 전담 부서인 ‘디지털자산총괄과’를 신설하고, 약 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가상자산 통합분석시스템’을 긴급 구축 중이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을 활용해 이상 거래 패턴을 탐지하고, 연말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즉각 과세에 활용하겠다는 굳은 의지다. 하지만 당국의 호언장담은 최근 발생한 치명적인 보안 사고로 뼈아픈 신뢰 추락을 겪었다. 고액 체납자로부터 압류한 약 69억원 규모(400만 개)의 가상자산 ‘니모닉(마스터 비밀번호)’ 코드가 언론 보도자료 사진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전량 탈취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벌어진 것이다. 가상자산 지갑의 가장 기본적인 보안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과세당국이, 과연 수만 명의 복잡다단한 거래 내역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철저히 보호할 시스템을 연말까지 완비할 수 있을지 시장과 학계의 의구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 거래소’라는 환상이 깨지는 2026년투자자들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 변수는 따로 있다. 소득세 시행 유예와 별개로, 2026년부터는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 Crypto - Asset Reporting Framework)’가 본격 가동된다는 점이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48개국이 참여하는 이 시스템을 통해, 이제 바이낸스 등 글로벌 대형 거래소를 이용하는 한국인의 거래 정보가 수집되어 국세청에 자동 보고되기 시작한다. 특히 해외 거래소 이용자들은 2026년 말까지 해당 가상자산 거래소에 납세자번호(TIN, Taxpayer Identification Number)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세청은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개인의 해외 가상자산 보유 잔액과 거래 흐름을 샅샅이 파악하게 된다. 더불어 소득세와 무관하게 가상자산 상속 및 증여세는 2026년 현재도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뒤처진 ‘낡은 세법’의 한계현재 우리 세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상자산의 혁신적 특성을 무시한 채 이를 낡은 ‘기타소득’ 프레임에 묶어두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주식 등 다른 투자자산과의 양도손익 통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당해 연도의 막대한 손실을 다음 해로 넘기는 이월공제 역시 전면 불허된다. 또한 250만원이라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기본 공제액은 1990년대 기준을 차용한 것으로, 과거 금투세 논의 당시 거론된 주식 공제액(5000만원)과 비교하면 조세 형평성 위배가 심각하다. 이는 미국이 가상자산을 자본자산으로 보아 기한 없는 손익통산 및 손실 이월공제를 폭넓게 허용하고, 독일이 1년 이상 장기 보유 시 전면 비과세 혜택을 주어 건전한 장기투자를 장려하는 것과는 극명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과세 불균형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른다. 개인 투자자의 양도 차익은 기타소득으로 열거주의 과세가 적용되나, 법인 투자자의 경우 순자산증가설에 따라 이미 코인 투자 수익 전액이 법인세로 징수되고 있어 개인과 법인 간의 심각한 과세 체계 불균형이 존재한다.
마지막 ‘골든타임’을 준비하라
결국 2026년은 현명한 투자자와 정부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투자자들은 ‘취득가액 의제’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2027년 과세 시작 시, 실제 매입가와 2026년 12월 31일의 시가 중 더 유리한 쪽(높은 금액)을 취득가액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올해 말까지 여러 거래소에 흩어진 포트폴리오를 하나로 통합하여 재점검(Rebalancing)하고, 해외 거래소 거래내역 등 증빙 데이터를 꼼꼼히 보관하여 합법적인 비과세 혜택과 절세 기준점을 튼튼히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단순히 표심을 의식한 ‘무조건적 폐지’나 행정 편의주의적 ‘과세 강행’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가상자산을 독립적인 자산군으로 인정하여 이월공제를 전향적으로 허용하고, 스테이킹 및 에어드랍 등에 대한 세부 과세 가이드라인을 먼저 정립하는 ‘선(先) 정비 후(後) 과세’의 철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세금은 투명하고 정교한 인프라와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공정한 기준 위에서 거둘 때, 비로소 조세 저항의 혼란을 잠재우고 시장의 굳건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지열 한양대 교수
한국자금세탁방지연구소 소장이자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자금세탁방지(AML)와 금융범죄예방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학문적 연구와 함께 금융당국, 국제기구, 민간 금융기관 등에 자문을 하며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