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한국의 고택] ⑪ 강릉 초당 허난설헌·허균 생가 | 조선시대 人材들의 숨결을 느낀다

    입력 : 2026.05.22 14:34:38

  • 사진설명

    강릉 초당 고택은 조선 선조 때 문신인 허엽(許曄·151 7~1580년)이 살던 집으로,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허엽이 강릉 김씨 김광철의 딸과 혼인하면서 김광철이 사위 허엽을 위해 지어준 것으로 생각된다. 허엽의 딸이며 조선시대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년)이 태어난 곳인 동시에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생가로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인재 집안
    안채 마당
    안채 마당

    허난설헌과 허균은 당시 최고의 명문인 양천 허씨 집안 출신이다. 증조부는 철저한 배불론을 주장했던 우의정 허종(許琮)이며, 종증조부는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든 좌의정 허침(許琛)이다. 조부 허한(許瀚)은 벼슬은 비록 군자감 봉사에 머물렀으나 글씨와 그림이 뛰어났고 그 시대에 이름 있는 선비였다. 아버지 허엽(許曄)은 서경덕의 문인으로 성균관 대사성, 부제학, 경상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되었을 당시에는 동인의 영수가 되었다. 허엽은 첫째 부인 한숙창의 딸 청주 한씨와 혼인하여 딸 둘과 허성을 낳았으며, 둘째 부인 예조참판 김광철의 딸 강릉 김씨와 사이에서 허봉, 허초희, 허균 등 삼 남매를 낳았다. 첫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딸 가운데 장녀는 박순원에게 출가했으며, 차녀는 우성전에게 출가하였다. 우성전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 대사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큰형 허성(許筬)은 허균보다 22세 연상이며 미암 유희춘의 문인으로 3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선조의 신임을 바탕으로 대사성과 대사간을 역임하고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다. 특히 동서분당으로 동인이 권력을 장악한 시기에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오고 같은 동인 김성일의 주장이 아닌 서인 황윤기의 주장에 동조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작은 형 허봉(許篈) 역시 유희춘의 문인으로 허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허균 영정
    허균 영정

    허균의 스승인 이달과 시우(詩友)였으며 사명당과도 친분이 있었다. 형보다 11년 앞서 과거에 급제해 서장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와 기행문 <하곡조천기>를 썼다. 이조정랑을 역임하고 창원 부사로 있을 때 병조판서 이이가 군정을 소홀히 한다고 탄핵하였다가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3년 뒤에 영의정 노수신의 노력으로 풀려났으나 벼슬살이를 거절하고 백운산, 금강산 등을 유랑하다가 금회에서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작은 누님 허난설헌은 해동에서 최고 가는 시인으로 허균과 함께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8세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 白玉樓 上樑文)’을 지을 정도로 신동이었다. 안동 김씨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2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시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으로 건너가 격찬을 받았다. 특히 신선과 꿈을 노래한 시, 즉 유선시(遊仙詩)는 오빠 허봉과 동생 허균조차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허난설헌은 우리나라 최고의 유선시 시인이었다. 이처럼 허균의 양천 허씨 집안은 학문적으로 화담과 퇴계의 학통을 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동인과 남인의 리더 영수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학적으로 탁월한 능력이 있었으며, 아버지 허엽과 아들 허성, 허봉, 허균 그리고 사위 우성전과 김성립 모두가 문과에 급제한 인재의 집안이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중국과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와 국제적인 감각까지 지닌 당대 최고의 가문이었다.

    대문
    대문

    강릉 초당 고택은 격동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고난을 겪었다. 허엽이 살면서 허난설헌이 탄생하고, 외갓집인 사천 애일당에서 태어난 허균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허균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면서 고택의 주인은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당 노송밭에 자리 잡은 고가의 집터가 영동 8곳 명당 자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기에 때문에 주인이 바뀌면서 고택의 명맥은 유지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허엽이 살았을 당시 명당의 집터는 연꽃터 또는 열두대문집이라고 불러왔다. 주인이 강릉 김씨, 강릉 최씨, 초계 정씨로 바뀌면서 택호도 바뀌었다. 강릉 김씨일 때는 안초당댁, 강릉 최씨일 때는 최위관집, 초계 정씨 주인일 때에는 댓골집으로 불리었다. 특히 초계 정씨로 주인이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양양군수를 지낸 정호경이 구입하여 집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69년 한국 건축학계의 원로이신 이광노(李光魯)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매입하여 관리하면서 강원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강릉시가 ‘허균 허난설헌 유적지’를 조성하기 위해 고택을 구입하였다. 이광노 교수와 최안분 소유 토지를 매입한 후 건물 12동과 주변 토지를 추가 매입하여 주차장 등 시설을 갖추었다. 생가터와 솔숲을 포함하여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이라 명명하고, 진입로를 준공하여 난설헌로라고 했다.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집
    겨울 생가
    겨울 생가

    강릉 초당 고택은 참으로 아름다운 집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집다운 풍수지리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주변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미인송의 숲이다. 가장 한국적인 나무인 소나무 숲속에 가장 한국적인 우리의 집 한옥이 자리하고 있다.

    집안에는 푸른 하늘로 올라가는 당당함과 어머니의 품 안 같은 아늑함이 함께다.

    멀리 한반도의 큰 줄기 백두대간은 웅비하는 기상을 솟아나게 하고, 바로 앞의 들판은 따사로운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내외담
    내외담

    행랑 및 대문간채는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3칸의 광이 있고 좌측으로는 행랑방과 마굿간이 있다. 본채는 중앙의 솟은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본채는 두 대문을 두어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다. 사랑채 출입은 솟을대문을 통하여 남자들이 주로 하며, 측면의 협문으로는 여자들이 안채에 출입할 때 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내외담이 있어서 남성 공간과 여성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팔작기와지붕의 장혀수장집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으며 우측에 대청 2칸이 있다.

    솟을 대문
    솟을 대문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은 두리기둥으로 멋을 냈다. 사랑채의 좌측 끝은 상노인방으로 안채 출입문간에서도 출입이 가능하고 협문과 공간을 구분하는 담장이 전면에 있다. 사랑대청은 창호로 둘러싸여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상부의 판대공과 대들보는 툇간만큼 전면으로 돌출되면서 노출되어 있다. 특히 사랑채는 경포호 주변에 있던 경호당를 옮겨온 것이다. 사랑채 기둥이 둥근 원기둥으로 되어 있는 것과 익공이 잘려 있는 것은 정자를 옮겨와 지었기 때문이다. 한편 경호당(鏡湖堂)은 강릉 김씨 김충각(金忠慤, 1578~1650)이 초당마을에 살면서 생전에 경포호수 부근에 건립하여 그의 별당 겸 강정(江亭)으로 삼았던 건축물이다.

    5문장 시비
    5문장 시비

    안채는 겹집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안방,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팔작기와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집이다. 안채는 부엌, 방, 마루로 되어 있고 안채방은 두 짝 세살문과 용자창호의 2중문으로 이루어졌다. 마루는 네 짝 분합문으로 짜여 있으며 마루방의 바닥은 장마루로 뒤쪽 방의 바닥이 마루보다 30㎝ 낮게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곡간채, 중간채, 문간채, 방앗간 등 다양한 건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택 담장은 어머니 품 안처럼 집 안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것은 공간을 분할해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안채 후원과 정면의 마당이 넓게 자리 잡아 오히려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사랑 마당의 담장은 사람의 눈높이를 넘지 않게 하여 바깥 경관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반면 안채 후원의 담장은 높게 하여 안채 뒷마당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하여 여성 해방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집 전체를 둘러싼 붉은 흙담은 오히려 그것을 배경을 피어나는 숱한 꽃들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 조경이 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지만 집 안 구석구석에선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았던 집은 그 주인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차장섭 강원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조선사연구회 회장, 강원대 도서관장, 기획실장, 강원전통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강원대 자유전공학부 명예교수로 한국사, 미술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