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보석이 자산이 되는 시대

    입력 : 2026.05.19 16:20:10

  • 미래에셋증권과 티파니의 VIP 행사에서 강연중인 필자.
    미래에셋증권과 티파니의 VIP 행사에서 강연중인 필자.

    얼마 전 미래에셋증권과 티파니가 공동 기획한 VIP 행사에서 강연을 맡았다. 주제는 ‘하이 주얼리의 자산 가치’. 증권사 VIP 앞에서 보석 이야기를 한다는 조합이 몇 년 전이었다면 어색했을 텐데 반응은 예상을 넘어섰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질문하러 오는 분들이 있었고 명함을 건네는 분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질문의 결이 달라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같으면 “좋은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골라야 하느냐”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 같은 시기에 어떤 하이 주얼리를 사둬야 가격이 유지되겠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22년째 이 시장을 지켜보고 있지만 이런 관심은 처음이다.

    금과 컬러스톤 그리고 다이아몬드
    Christie’s
    Christie’s

    하이 주얼리의 바탕에는 금이 있다. 그 금이 2020년 초 온스당 1550달러 선에서 2026년 1월 말 5595달러까지 올랐다. 6년 사이 3.6배. 최근 한두 달 변동성은 있지만 중앙은행의 구조적 매입이 이어지고 있어 장기 상승 기조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이 자산으로 주목받는 흐름 안에서 하이 주얼리에도 시선이 쏠린다. 여기에 희소한 스톤이 더해지면 자산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컬러스톤의 상승도 뚜렷하다. 불가리의 장 크리스토프 바뱅 전 CEO는 유색 보석의 평균 캐럿당 가격이 지난 15년 사이 네 배로 뛰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 해마다 주요 젬페어와 경매 프리뷰를 돌며 같은 흐름을 체감해왔다. 5년 전과 비교하면 동일 등급 컬러스톤을 확보하는 비용은 체감상 두 배 정도 올랐고 상위 품질은 매물 자체가 귀해졌다. 스위스 구블린 감정원도 비가열 루비의 감별 의뢰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주요 산지의 광산은 고갈되고 수요는 증가하는 구조, 가격의 방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다이아몬드는 이 흐름에서 비켜서 있다. 랩그로운 확산과 수요 둔화가 겹치며 2캐럿 이하 상업용 구간의 화이트 다이아몬드는 최근 몇 년간 뚜렷한 하락 압력을 받았다. 드비어스가 사이트홀더(드비어스로부터 원석을 직접 배정받는 공인 거래처)의 배정 물량을 줄이고 매입 의무를 완화했을 정도다. 반면 3캐럿 이상의 고품질 화이트 다이아몬드는 양상이 다르다. 원석에서 이 정도 크기와 품질이 나올 확률 자체가 낮고, 이 구간의 구매자는 애초에 랩그로운을 선택지에 두지 않는다. 상업용 구간에 비하면 가격도 선방하는 편이다. 최상급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 중 핑크와 블루는 경매에서 캐럿당 수백만 달러 선을 기록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명품 백에서 하이 주얼리로

    ‘착용 가능한 럭셔리’에서 자산성은 오랫동안 시계의 몫이었다. 핸드백이 그 대열에 합류하며 ‘투자형 버킨’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흐름에 균열이 생겼다. 번스타인 리서치에 따르면 에르메스 버킨과 켈리의 평균 리셀 프리미엄은 소매가 대비 2022년 2.2배에서 2025년 말 1.4배로 떨어졌다. 팬데믹 직후 과열됐던 럭셔리 슈퍼사이클이 조정기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명품백 중심의 자산 논리가 흔들리는 사이 상위 소비자의 관심은 하이 주얼리 쪽으로 이동 중이다. 한국에서는 백화점이 먼저 움직였다. 주요 백화점 VIP 라운지의 하이 주얼리 프라이빗 뷰잉 빈도가 뚜렷하게 늘었고 티파니, 불가리, 부쉐론 같은 하우스가 한국에서 여는 프라이빗 이벤트의 규모도 커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내 생일에 목걸이를 선물하려는데 추천해달라”는 상담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5캐럿 이상 다이아몬드의 향후 가치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내가 금융권 VIP 강연을 맡는 일 자체가 이러한 이동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글로벌 경매 시장에서도 미술품이 조정기에 접어든 사이 주얼리는 거래 규모를 오히려 키우고 있다. MZ세대 구매자 비중도 빠르게 느는 추세다.

    보석이라는 자산의 특성
    Christie’s
    Christie’s

    부동산은 한곳에 묶여 있다. 미술품은 감상할 뿐 착용할 수 없고, 시계는 손목 하나에 한 점이 한계다. 하지만 하이 주얼리는 이 세 가지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물론 감정과 진위 확인, 리셀 시 유동성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대신 세트를 분할해 상속하거나 증여할 수 있고 해외로 옮길 때 부피와 물류 부담이 없다. 다만 아무 주얼리나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보석 자체의 희소성이다. 최상급 유색 보석이 나오던 주요 산지는 상당수 이미 고갈되었거나 채굴이 엄격히 제한된 상태다. 공급이 늘어날 구조적 여지가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소성은 가격으로 확인된다. 여기에 하이 주얼리 하우스의 브랜드 신뢰가 결합되면 리셀 시장에서의 가격 방어력은 한 단계 더 올라간다.

    안목이 만드는 차이

    문제는 이 시장에 새로 진입한 자산가들이 구조를 읽어내는 눈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이아몬드 감정서에는 4C, 곧 캐럿·컬러·클래리티·컷 등급이 기재된다. 그런데 같은 4C 등급을 받은 스톤이라도 실물의 인상은 천차만별이다. 형광성이 어떤 조건에서 외관을 탁하게 만드는지, 내포물의 위치가 브릴리언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컷 비율이 ‘엑설런트’ 안에서도 어느 지점에 있는지. 감정서 한 장에는 담기지 않는 영역이다. 컬러스톤에서는 감별서(다이아몬드는 감정서, 컬러스톤은 감별서로 표기한다)의 역할이 다르다. 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의 가격은 무엇보다 색에서 결정된다. 산지와 처리 여부가 그 위에 프리미엄을 더하는 구조다. 그런데 감별서로도 보이지 않는 층위가 있다. 같은 ‘비가열 루비’라 해도 깊은 붉은빛과 형광이 살아 있는지, 실크(루틸 성분의 미세한 바늘 모양 내포물)가 은은한 벨벳 질감을 만드는지 투명도를 해치는지에 따라 캐럿당 가격은 몇 배까지 달라진다. 에메랄드는 내포물의 분포가 스톤의 개성이 되기도 하지만 과하면 내구성 리스크가 된다. 사파이어 역시 색의 깊이와 균형이 가치를 좌우한다. 이 차이는 감별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실물을 많이 보고 좋은 스톤과 그렇지 않은 스톤의 격차를 체감한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읽히는 영역이다. 명품백을 사듯 주얼리를 사는 것과 자산으로서 주얼리를 선택하는 것 사이에 놓인 거리를 만드는 게 결국 안목이다. 고액 자산가에게 하이 주얼리는 사치의 정점이 아니다. 시계·미술품·와인에 이미 익숙한 컬렉터들이 보석의 이동성, 분할 가능성, 희소성에 기반한 가격 구조에 눈을 돌리고 있다. 보석을 보는 눈이 곧 자산을 읽는 눈이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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