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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세계 각국에 날아든 이란 전쟁 청구서
입력 : 2026.05.19 09: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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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이 에너지 가격을 현저히 높여 전체 물가상승률을 높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란 전쟁의 후폭풍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다시 고조된 것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면서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또 다시 오일쇼크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유가발 인플레이션 확산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가 지연되면서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경로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전 세계가 달갑지 않은 전쟁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는 것이다. 이란 전쟁의 종전과 함께 유가가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상당 기간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후유증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인플레 엄습한 美 경제전쟁 영향이 반영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보다 3.3% 급등했다. 2024년 5월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특히 전달 대비로는 0.9% 올랐다. 2022년 6월 이후 무려 4년 만에 가장 많이 오른 것이다. 3월 물가상승의 4분의 3이 유가 탓이다.
실제 미국자동차협회(ACA)에 따르면 4월 13일(현지 시간)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12달러다. 전쟁 발발 이전과 비교하면 갤런당 1달러 넘게 급등한 것이다.
전국 평균 디젤 가격은 갤런당 5.65달러로 2022년에 세운 이전 최고 기준치보다 60센트 이상 높다.
휘발유 가격과 디젤 가격의 급등은 항공료뿐만 아니라 식비와 교통비로도 확산되고 있다.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금리인하에 목매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가뜩이나 발목을 잡아온 물가를 되레 부추긴 장본인이 됐다.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는 가운데 휘발유 가격도 급등하며 미국인의 지갑도 부쩍 얇아졌다.
3월 평균 주당 인금은 0.9% 급락했다. 팬데믹 인플레가 정점을 찍었던 2022년 6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 체감경기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미 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가 4월에 전달보다 10.7% 급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올해 미국 경제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경제성장률은 1월 조사 시 2.2%에서 2.0%로, 물가상승률은 2.6%에서 3.2%로, 비농업 일자리는 월평균 6만4500개에서 4만5000개로 하향했다. 이 때문에 미국 경제의 침체 확률도 27%에서 33%로 높아졌다. 다이앤 스윙크 KPM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의 충격은 단순히 석유 충격 그 이상”이라며 “또다시 전 세계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쟁이 곧 끝나더라도 원유 수급난은 향후 수개월간 지속되며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스윙크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우려된다”고 했다.
세계 경제도 저성장-고물가
이란 전쟁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주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5.93달러를 기록했다. <사진 연합뉴스> 전쟁 후폭풍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아시아와 유럽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4월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가 평균 3.1%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3.4%)은 물론 전쟁 발발 전인 지난 1월(3.3%)보다 하향 조정된 것이다.
반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0.6%포인트 대폭 올린 4.4%로 예상했다. IMF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 금융시장 위험회피 심리 확산 등의 경로를 통해 세계 경제에 영향이 파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위축 속에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전조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100달러를 넘을 경우 세계 경제성장률이 3.1%에서 2%대로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IMF 분석에 따르면 좀 더 부정적 시나리오를 반영한 비관(Adverse) 전망에서는 2.5%, 심각(Severe) 전망에서는 2%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전쟁 당사국인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월보다 0.1%포인트 내린 2.3%로 예측했다.
피해는 주변국에게 더 가혹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성장 전망치는 0.2%포인트 낮아졌다. 영국은 0.5%포인트나 하향 조정됐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또 다른 전쟁으로 누적된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성장률은 무려 1.4%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이란의 에너지시설 공격으로 생산 차질과 수출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도 유가쇼크 영향권에 들면서 중국 성장률 전망치는 4.5%에서 4.4%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한국과 일본은 1월 전망치와 동일하게 각각 1.9%, 0.7%를 유지했다.
한국과 일본은 높은 원유 수입의존도에도 불구하고 재정투입에 따른 경기부양으로 타격을 상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유가발 인플레이션 확산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3%대였던 전 세계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4.4%로 치솟았다. 선진국 물가는 2.8%, 신흥국은 5.5%로 전망됐다. 한국의 경우 작년 10월 1.8%였던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2.5%로 껑충 뛰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상처는 경제에 뚜렷한 후유증을 남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전쟁으로 이미 페르시아만의 에너지 시설이 80개 이상 피해를 입었으며, 그중 약 3분의 1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생산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설비들이 손상돼 가동을 재개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늘 당장 전쟁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올해 원유 공급 부족 규모는 연평균 시장에서 사라진 원유량 측면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와 맞먹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충격은 1974년 석유가격파동에 비교할 만 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석유의존도가 과거와 달리 크게 낮아졌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임성현 뉴욕 특파원]